웃음 끝에 드러난 욕망의 민낯… 연극 ‘불란서 금고’
금고 둘러싼 다섯 인물의 심리전
블랙코미디와 긴장감 동시에 살려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를 선보인 장진 연출이 10년 만에 내놓은 새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이하 ‘불란서 금고’)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국내 최고령 배우인 구순의 신구가 성지루와 ‘맹인’을 맡아 극의 중심을 잡고, 장현성·김한결이 ‘교수’, 정영주·장영남이 ‘밀수’, 최영준·주종혁이 ‘건달’, 김슬기·금새록이 ‘은행원’으로 분했다. 극 후반부까지 베일에 가려진 ‘그리고…’를 조달환·안두호가 연기했다.
“북벽장춘이라고 했네. 깎아내린 듯 가파른 돌 절벽 가장 높은 봉우리가 북벽이었고 그 위에 오른 자가 모든 걸 가져갔다. 북벽에 오르면 아래 세상이 훤히 보였고 구름도 발아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지.”
노인의 독백으로 극이 시작된다. 장진 연출은 지난해 신구가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그와 작품을 꼭 함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극을 쓸지 줄거리도 구상하지 않은 채 신구 목소리로 듣게 될 첫 대사를 쓰며 ‘불란서 금고’ 집필을 시작했다.
무대 배경은 은행 지하 금고 앞. 노인을 비롯해 교수, 밀수, 건달, 은행원이 모여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모르지만 금고를 열겠다는 목표는 같다. 자정이 되면 전기가 끊기고, 금고를 보호하는 쇠창살의 센서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금고를 열 수 있다.

다섯사람은 자정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의도치 않게 자신의 과거와 정체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각자 개성을 살리면서도 자연스러운 호흡을 보여준다. 관객은 손에 땀을 쥐며 극에 빠져드는 동시에 장진 특유의 블랙코미디에 웃음을 터뜨린다.
성지루는 대배우 신구와 같은 역할을 맡아 실제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노인을 연기해야 했다. 성씨는 목소리와 말투, 몸짓까지 시각장애인 노인 역을 완벽히 소화한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신구 선생님을 아부지라고 부르는데 아부지와 같은 무대에서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부담이 아닌 가슴 벅찰 정도의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수 역을 맡은 장현성은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다가도 의외의 허술한 면모를 드러내며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밀수 역의 정영주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어김없이 선보이며 건달 역의 최영준은 실제 건달을 떠올리게 할 만큼 능청스럽고 껄렁한 연기를 펼친다. 은행원 역의 금새록은 어리숙하면서도 금고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극 후반부엔 ‘그리고…’ 역의 조달환이 등장하며 역할 명을 숨길 수밖에 없던 이유가 드러난다. 짧은 출연만으로도 뛰어난 대사 전달력과 존재감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극을 관통하는 주제는 욕망이다. 장진 연출은 “작품 속 금고는 각자의 욕망과 욕심이 들어 있는 공간”이라며 “우린 금고를 열기 위해 정해진 질서와 순리를 어기곤 한다”고 전했다.
‘불란서 금고’는 6월7일까지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에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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