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렛미인' 의사들 20억대 사기..."건물 팔아 갚겠다"더니 회생절차
대출 당시 변제 의사·능력 여부가 쟁점
회생으로 수백억 탕감... "제도 취지 벗어나"

인기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렛미인'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은 의사들이 20억 원대 대출 사기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은 500억 원 넘는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건물을 팔아 갚을 수 있다"고 속여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후 개인회생 절차를 거쳐 현재는 채무 상당액을 탕감받은 상태다.
"한 달 안에 갚겠다"... 20억 원 빌리고 회생 신청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오세용)는 26일 의사 이모씨, 김모씨, 오모씨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기일을 연다. 이들은 병원 자금난으로 빚을 갚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 2016년 3~12월 대부업체 대표 정모씨에게 20억3,0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달 3일 이씨에게 징역 4년, 김씨와 오씨에게 각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구형했다.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4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씨 등은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렛미인'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으면서 2011년 12월 서울 강남 신논현의 A타워 일부 층을 매입해 성형외과를 공동 운영했다. 초창기 250억 원 이상 연매출을 올리며 '국내 3대 성형외과'로 승승장구하던 이들은 탈세로 거액의 추징금을 납부하면서 휘청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A타워 매입과 개업 비용까지 감당해야 했던 이들은 2013년 5월 은행에서 A타워를 신탁하고 300억 원을 대출받았다. 2014년엔 성형외과 신용카드 매출액까지 담보로 제공하면서 추가 대출 500억 원을 받았다. 당시 A타워 감정평가액은 약 552억 원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2016년 3월 정씨를 만나 "30억 원을 빌려주면 한 달 안에 갚겠다. 병원 채무가 70억 원 정도이니 건물 1, 2층을 매각하면 충분한 돈이 나온다"고 설득했다. 이 같은 약속을 담은 계약서와 약속어음까지 전달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까지 총 8회에 걸쳐 20억3,000만 원을 빌렸다.
단순 채무불이행 VS 사기

이들은 '대출 당시 건물과 개인 자산의 담보가치가 남아 있었고, 성형외과 순수익도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씨 측은 대출 당시 A타워는 이미 담보 가치를 모두 소진했다고 반박한다. 이씨와 김씨가 이 사건 범행 직전인 2015~16년, 또 다른 피해자 오모씨를 속여 약 16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2021년 각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의사들은 현재 9억 원 규모의 다른 사기 사건으로 고소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아울러 정씨는 이들이 돈을 빌리던 2016년 배우자나 동생의 부동산 담보를 미리 해제하고 매매하는 등 회생 절차를 준비한 정황도 있다면서 변제할 의사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씨 등은 대출 직후인 2017년 5월 개인회생을 신청해 수백억 원의 채무를 탕감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채무는 이씨 680억 원, 김씨 500억 원, 오씨 430억 원이었다. 네 달 뒤 세 사람은 채무액 중 약 70%의 면책회생인가(채무를 일부만 갚으면 나머지는 탕감해주는 것)를 받았다.
특히 오씨는 4년의 변제 유예기간이 끝난 지난해 '손목 통증'을 이유로 아예 파산을 신청했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오씨가 여전히 외제차를 타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등 이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씨 측 이동언 법률사무소 인피니티 변호사는 "의사들은 회생 제도로 빚을 털어내고 다시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나올 1심 결과는 대출 행위가 단순 채무불이행인지, 아니면 사기인지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갚을 의사와 능력이 없으면서 피해자를 속여 돈을 빌렸다면 이는 사기에 해당한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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