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보이기 싫은 마음에 대해 썼어요

고희진 기자 2026. 5. 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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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3년 만에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 펴낸 소설가 최은영
“가장 불편한 데까지 써보자 결심”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를 펴낸 소설가 최은영을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났다. 최은영은 “가장 불편한 데까지 써보자”는 마음으로 암 투병·이혼 등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갑상선암 투병·이혼 등 개인사
불안과 고립감 등 다양하게 담아
남들에 결핍 감추려 노력했는데
이젠 ‘알아도 돼’ 용기가 생겨

“내 취약성을 글로 썼다는 이유로 경멸당하고 조롱받고 비난받는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감추고 꾸며내며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니까.”(‘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 중)

소설가 최은영이 등단 13년 만에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를 냈다. 독자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싶었다”는 그는 이번 책에서 책 너머에 있던 자신의 삶을 포장 없이 드러낸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가장 불편한 데까지 써보자”는 마음으로 텅 빈 종이를 마주했을 그의 고민스러운 얼굴이 떠오른다. 책을 출간한 지금 그의 모습은 후련하고 시원해 보였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은영의 애독자라면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작가와 한껏 가까워졌다는 느낌과 함께 ‘작가가 이런 생각까지 했었나’라는 당혹감이 들 수도 있다. 책에는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온 외모 콤플렉스, 최근의 갑상선암 투병, 결혼과 이혼으로 이어지는 개인사를 비롯해 2016년 화제의 데뷔작 <쇼코의 미소> 이후 작가가 겪은 불안과 고립감 등 인간 최은영을 구성해온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수록된 산문 열 편 가운데 가장 먼저 쓴 것은 ‘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이다. 오랫동안 삶의 불안을 유발했던 ‘누군가에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불안은 어린 시절의 사적인 경험부터 첫 책을 내고 난 뒤에 들었던 다음 작품에 대한 공포에서 유발됐다.

그는 “책 전반적으로 부끄럽고 보이기 싫은 마음에 대해 썼다”며 “쓰면서도 내가 이런 것까지 쓰고 있구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진실하지 못할 거면 뭣하러 글을 쓰나 생각했다. 결국 내가 가장 불편한 데까지 써보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백지 앞에서>는 산문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자신의 깨달음으로 독자를 가르치려 하는’ 느낌이 거의 없다. 그는 “나는 이렇게 엉망으로 살았다는 걸 얘기하면서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그는 소설을 미리 구상하고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쓰다가 이야기를 결론 짓지 못하고 버린 것이 많다고 했다. 구성을 하지 않는 대신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상상하고 계속 가까이” 있으려 한다.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하는 과정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는 “글을 쓸 때는 그 인물과 가까이 있다가 (책을) 내고 나면 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로 2024년부터 산문집에 실을 글들을 써오다 보니 ‘12·3 불법계엄’을 비롯해 최근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들도 곳곳에 언급돼 있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 내 삶에 스트레스를 줬던 부분들을 빼고 쓴다면 사실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다뤘다”고 했다.

작가는 산문집을 내고 후련한 감정이 들었다며 “과거엔 남들이 나의 결핍을 알아챌 것 같아 두려워 이걸 감추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알아도 돼’라는 쪽으로 나갔다. 그만큼 나에게 용기가 생겼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끄럽지 않은 우리의 인생을 긍정하는 태도. 이는 그가 앞으로 써 내려갈 소설들이 나아갈 방향과 같다.

“최근 한 행사에서 ‘인공지능(AI)이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낄 때는 훌륭한 부분을 보고 그렇기도 하지만, 허점이나 약점 같은 부족한 부분에 매력을 느낄 때도 있다. 부족한 부분이 합쳐져야 한 사람의 고유한 개성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AI는 너무 매끈하다. 주저하고 실패하고 이상한 부분도 있는 것이 사람이 쓰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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