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속도의 게임'에 돌입한 AI 반도체
새 계산규격 선점이 관건
정부, 차세대 R&D 밀어
저비트 AI 설계 주도해야

2026년 AI 반도체 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다. 1.58비트 기반 삼진 모델은 거대언어모델의 성능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메모리 사용량과 연산 부담, 전력 소모를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 개선이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요구하는 계산 정밀도와 데이터 흐름에 맞춰 하드웨어 구조 자체가 다시 설계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경쟁의 기준도 바꾼다. 이제 AI 반도체 전쟁은 누가 더 미세한 공정을 확보했느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누가 더 빨리 새로운 계산 규격과 아키텍처를 실제 제품으로 연결하느냐다. 미세화의 게임이 속도의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위기이자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한국은 이미 HBM과 첨단 패키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비트화가 확산되면 HBM의 중요성이 약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해석이다. AI 추론의 병목은 여전히 메모리 접근과 데이터 이동 비용에서 발생한다. 저비트 모델의 시대일수록 메모리와 연산을 얼마나 가깝게 붙이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저비트화는 HBM의 종말이 아니라 HBM의 역할 재정의를 뜻한다.
K반도체는 세 가지 전략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삼진 연산 친화형 PIM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 연산을 메모리 안쪽으로 끌어들여 데이터 이동 자체를 줄여야 한다. 둘째, 고객 맞춤형 HBM 공동설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메모리 기업이 단순 공급자를 넘어 시스템 구조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셋째, 온디바이스 AI용 LPDDR6 생태계를 선점해야 한다. 저비트 AI의 파급력은 스마트폰, 로봇, 자동차, 산업기기에서 더 빨리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승부는 냉정한 판단과 빠른 실행에 달려 있다. 기술적 완벽성을 기다리다가 시장의 규격을 남에게 넘겨줘서는 안 된다. 공정 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아키텍처 업데이트, 시제품 검증, 고객 공동개발, 조기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실행 속도가 필요하다. AI 주권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은 비트를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필요한 비트를 가장 지능적으로 다루느냐에 있다. 한국 반도체가 이 속도의 게임을 주도한다면, 1.58비트 전환은 위기가 아니라 주도권을 되찾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비트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다. 정부는 차세대 메모리와 저비트 AI 설계 분야의 공동연구개발을 과감히 밀어야 하고, 기업은 고객과 함께 규격을 만들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장의 표준은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먼저 움직이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강점은 생산 능력에만 있지 않다. 대규모 양산 경험, 공정 안정화 속도, 고객 대응력 그리고 메모리와 패키징을 동시에 묶을 수 있는 산업 구조를 함께 갖고 있다. 지금 이 강점을 저비트 AI라는 새 질서에 맞게 재편하지 못하면 기회는 곧 다른 나라의 몫이 된다. 반대로 지금 선제적으로 움직인다면 한국은 부품 공급자를 넘어 차세대 AI 시스템의 규격 설계자이자 시장 주도자로 올라설 수 있다.
[김태완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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