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일베 폐쇄·징벌배상 공론화”···사실상 ‘극우와의 전쟁’ 선포, 왜?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을 겨냥해 “조롱과 혐오를 방치·조장하는 사이트의 폐쇄와 징벌적 손해배상·과징금 등 필요한 조치를 엄격한 조건 아래 허용하는 데 대한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 희화화 논란이 잇따르자, 사실상 극우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이 직접 혐오 표현 규제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혐오 규제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에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전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이 열린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일베 회원임을 상징하는 조롱성 행동을 했다는 기사를 공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일베처럼 조롱·모욕으로 사회분열·갈등을 조장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을 포함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병존한다”며 “일베 폐쇄 논란도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 혐오 조장 사이트 폐쇄, 과징금 부과 가능성을 거론한 뒤 “국무회의에도 지시하겠다”며 “여러분 의견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스타벅스의 극우 성향 이벤트 논란 등을 계기로 혐오 표현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이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텀블러 프로모션을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비판했다. 지난 20일에는 박종철 열사 희화화 논란이 제기된 패션기업 무신사의 2019년 양말 광고 문구인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를 겨냥해 “돈이 마귀라지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엑스에 적었다.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며 “최근 광주 5·18 문제나 참혹한 피해자들에 대한 표현이나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스타벅스코리아가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2024년 4월16일에 진행했던 ‘사이렌 이벤트’를 두고 “인두겁을 쓰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악질 장사치의 패륜 행위”라며 표현 수위를 한층 높였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6·3 지방선거를 열흘 앞두고 극우 문제를 핵심 의제로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12·3 내란 이후 결집한 극우세력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것이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담은 개헌안의 국회 표결이 무산된 데 대한 국민의힘 책임론을 부각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정의로운 통합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가폭력범죄와 관련해 “과거를 적당히 봉합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직시하고 그 토대 위에 반성과 책임이 뒤따르는 정의로운 통합을 해야 한다”며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 국가폭력을 미화하고 피해자들을 조롱·모욕하는 독버섯들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가폭력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나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입법 조치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베 등 극우 사이트 제재 방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방안 검토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 5·18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외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혐오 표현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독일은 특정 인종·민족·종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거나 모욕·비방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경우 최대 3~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이용자 200만명 이상 소셜미디어 사업자가 명백한 혐오 게시물 신고를 받고도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프랑스 등 상당수 유럽 국가는 혐오표현 금지법을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 차별금지 원칙에 따라 반차별적인 제도를 마련하도록 권고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아 차별과 혐오를 규제하는 단일 법률이 부재한 상태다. 현재는 5·18특별법이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를 이유로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행동’을 금지하는 등 개별 법률에 관련 규정이 흩어져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 또한 혐오 표현 자체를 직접 규제하는 법은 아니다. 고용·교육·행정 등에서 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대통령은 국가폭력·사회적 참사 희생자나 유가족에 대한 혐오 발언을 비판해왔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특정 집단이나 사건에 대한 혐오에는 적극 대응을 주문하면서도 성별·성적지향·장애·인종 등 전반적인 차별 문제를 포괄하는 제도화에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선별적 혐오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차별금지법처럼 다양한 혐오와 차별 피해자를 포괄하는 제도는 도외시한 채 특정 사안이나 집단만 개별적으로 규제하려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며 “차별의 대상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혐오와 차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혐오·조롱 표현 자체를 규제하려고 하면 표현의 자유 침해와 적용 범위 논란이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표현 자체를 처벌하기보다 차별이나 실제 피해와 불이익, 범죄로 이어지는 지점을 규제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정당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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