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대신 ‘완판’ 챙긴 ‘호프’···황금종려상은 ‘분열의 시대’ 그린 ‘피오르드’

전지현 기자 2026. 5. 2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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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3일(현지시간) 열린 폐막식에서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피오르드>의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칸은 강한 신념들이 부딪히며 분열된 현재의 세계를 직시하는 영화를 택했다.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58)의 <피오르드>가 23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9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4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한국 영화인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무관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칸 영화 마켓에서 ‘완판’되는 ‘실속’을 챙겼다.

현재적 딜레마 파고든 영화에 최고상 영예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은 거장들의 범작이 주를 이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 아쉬가르 파르하디(이란) 등 유명 작가주의 감독들이 초청을 받았으나, 평이한 작품으로 평단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경쟁 부문에 오른 22개 작품 중에는 세계 1·2차 대전을 전후로 한 시대극이나 퀴어 요소가 가미된 영화가 많았다.

영화 <피오르드>의 미하이(세바스찬 스탠), 리스벳(레나테 레인스베) 부부가 다섯 남매와 함께 가족 사진을 찍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 제공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주 감독의 <피오르드>는 현시대 유럽 이야기다. 루마니아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 가족이 복지국가 노르웨이로 이주하며 벌어지는 일이다. 미하이(세바스찬 스탠)와 리스벳(레나테 레인스베) 부부에게 훈육을 위해 아이를 체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종교 공동체 안에서 자란 다섯 남매는 유튜브를 보는 대신 성경을 읽고, ‘동성애는 나쁘다’는 생각을 주입받는다. 노르웨이에선 용납받지 못할 사상에, 부부는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며 아이들을 아동 보호소에 빼앗길 위험에 처한다.

관객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뜨리는 영화다. 미하이 부부의 양육 방식은 분명 종교적으로 편향됐다. 하지만 그것을 ‘학대’라고 볼 수 있는가? 차별을 내면화하는 교육이 우려스러운 것 또한 맞다. 착하지만 고집스러운 미하이 부부가 답답한 만큼이나 노르웨이 아동보호센터의 도덕적 확신도 100% 옳다고 보기 어렵다.

문주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오늘날 분열되고 급진화된 사회에서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영화”라며 “포용과 공감 같은 아름다운 단어를 자주 말하지만, 우리는 이를 더 자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문주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건 <4개월 3주…그리고 2일>(2007)에 이어 두 번째다.

심사위원장 박찬욱 감독(맨 왼쪽)을 비롯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단이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 참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이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3일(현지시간) 열린 폐막식에 참석했다. EPA 연합뉴스

한국인 최초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찬욱 감독은 시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실 황금종려상은 누구에게도 시상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가 한 번도 받은 적 없는 상이기 때문”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활용해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줘야 하기 때문에,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좋은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피오르드>를 수상작으로 발표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예술적으로 장엄한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3일(현지시간) 열린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미노타우어>의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AFP 연합뉴스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러시아 출신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미노타우어>에 돌아갔다. 클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여자>(1969)를 재해석, 불륜을 소재로 한 고전적 이야기에 러시아 국가폭력과 그에 동조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을 녹였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이 학살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라며 “이 도살을 끝내라. 전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촉구했다.

감독상은 스페인 시인 페드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마지막 미완성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라 볼라 네그라>(블랙 볼)을 만든 하비에르 칼보·하비에르 암브로시 감독과 독일 대문호 토마스 만과 그의 딸 에리카 만(산드라 휠러)을 주인공으로 한 <파더랜드>의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이 받았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서 언어를 넘어선 우정을 연기한 프랑스 배우 비르지니 에피라와 일본 배우 타오 오카모토가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후 포옹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여우주연상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서 언어를 넘어선 우정을 연기한 프랑스 배우 비르지니 에피라와 일본 배우 오카모토 타오가 받았다. 남우주연상에는 <카워드>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사랑에 빠진 두 젊은 병사를 연기한 엠마누엘 마키아와 발런틴 캉파뉴가 호명됐다. 심사위원상은 발레스카 그리스바흐 감독의 <더 드림드 어드벤처>가, 각본상은 <노르트 살뤼>의 엠마누엘 마레 감독에게 돌아갔다.

나홍진 ‘호프’ 무관, 그러나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아쉽게도 무관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경쟁작 중 가장 오락성이 짙은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다만 후반작업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상영된 영화는 마이클 패스벤더 등이 연기한 외계인의 CG(컴퓨터그래픽)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 후반부 이야기가 초반보다 동력을 잃는다는 점이 지적됐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호프>의 나홍진 감독이 1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발 포토콜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나 감독은 올해 여름 예정된 개봉까지 후반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현재 중요한 것은 한국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남은 약 2개월의 시간”이라며 “개봉 전까지 작품의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전했다.

<호프>의 경쟁부문 초청은 박찬욱·봉준호·이창동·홍상수 감독 등 국제 영화제 ‘단골’ 감독들 이외에 나홍진이라는 이름을 국제 무대에 소개했다는 의의가 있다. 나 감독은 <추격자>(2008,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황해>(2011, 주목할 만한 시선), <곡성>(비경쟁) 등으로 전작이 모두 칸 영화제의 부름을 받았으나, 경쟁부문 초청과 칸에서 프리미어(최초) 상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호프>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높은 관심이 해외 판매로도 이어지며 칸 영화 마켓에서도 ‘완판’을 알렸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 세계 200개국에 선판매되며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의 판매액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미국 콜롬비아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진미송 감독의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라 시네프(학생 영화) 부문 2등상을 받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4인 가족 구성원이 겪는 저마다의 씁쓸한 사연을 담은 17분짜리 단편이다.


☞ ‘압도적 강자’ 없는 칸 영화제···나홍진 ‘호프’ 다크호스로 주목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211757001


☞ [속보]‘호프’ 칸영화제 무관…나홍진 “개봉 전까지 2개월, 완성도 끌어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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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칸 국제영화제 주요 수상자(작)
▲ 황금종려상: <피오르드>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 심사위원대상: <미노타우어>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 감독상: 하비에르 칼보·하비에르 암브로시 감독(<라 볼라 네그라>(블랙 볼)), 파벨 파블로코프스키 감독(<파더랜드>)
▲ 심사위원상: <더 드림드 어드벤처> (발레스카 그리스바흐 감독)
▲ 각본상: 엠마누엘 마레 감독 (<노트르 살뤼>(우리의 구원))
▲ 여우주연상: 비르지니 에피라·타오 오카모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
▲ 남우주연상: 엠마뉴엘 마키아·발런틴 캉파뉴 (루카스 돈트 감독 <카워드>)

칸 |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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