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에서 붓으로, 한 생의 마침표… 설정 지성찬 시인 별세

이민우 기자 2026. 5. 2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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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 지성찬 시인
시조시인ㆍ화가 설정 지성찬
2026년 5월 23일 별세
1980년 등단 후 시조집 발간
도시와 자연, 신앙과 노년
정형의 율격에 담다

한국 현대시조의 정형미를 지키며 도시 문명과 자연, 신앙과 노년의 성찰을 시조의 그릇에 담아온 시조시인이자 화가 설정雪庭 지성찬池聖讚 선생이 5월 23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유족과 문단에 따르면 빈소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이다.

고故 지성찬 시인. [사진 | 더스쿠프 포토] 
고인은 194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경기 안성에서 자랐다. 백성초등학교와 안법중ㆍ안법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뒷날 연세대 경제대학원 최고위경제과정을 수료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삼본물산 이사와 기영산업ㆍ미방기업 대표이사를 지낸 기업인이기도 했다. 숫자를 다루던 경영인에서 언어를 다루는 시인으로, 다시 색채를 다루는 화가로 이어진 그의 삶은, 한 사람 안에 세 개의 생애가 포개진 듯한 궤적을 그렸다.

문학과의 인연은 일찍 시작됐다. 안법고 재학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59년에는 전국 규모의 학생 백일장과 문예 현상모집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본격적인 등단은 1980년 시 전문지 「시조문학」에 이우종 시인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이후 그는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과 상임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ㆍ감사를 지내며 문단의 살림을 도맡았고, 중앙일보 지상백일장을 비롯한 각종 백일장 심사위원, 서울 지역 시조낭독회 주관, 종합문예지 「스토리문학」 주간ㆍ편집고문으로 활동했다. 라임사이버문화센터와 동아일보문화센터 등에서 현대시조 창작을 강의하고 시조창작교실을 운영하며 후학을 길러내는 데도 힘을 쏟았다.

고인은 1988년 첫 시조집 「서울의 강」을 펴낸 이래 「서울에 사는 귀뚜리야」 「하늘에서 보낸 편지」 「가을 엽서」 「대화동 일기」 「인생의 지피에스GPS」를 거쳐 2024년 일곱번째 시조집 「겨울 화석정에 올라」에 이르기까지 40년 가까이 꾸준히 시조의 길을 걸었다. 2001년에는 태학사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56권으로 시조선집 「백마에서 온 편지」를 묶어, 한국 현대시조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가운데 「서울에 사는 귀뚜리야」는 199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우수 문학작품 창작지원도서로, 「인생의 지피에스」는 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됐다. 산문집 「깨끗한 그릇」(2015년)의 표제 수필 '깨끗한 그릇'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문단 밖 독자에게도 오래 읽혔다.

지성찬의 시세계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더불어 흘렀다. 초기작 '서울의 강' 연작에서 한강과 서울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산업화와 오염, 역사의 상처가 겹친 '문명의 진단서'였다. 「서울에 사는 귀뚜리야」처럼 콘크리트 도시의 구석에서 울리는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곳도 같은 맥락이었다.

2025년 전남 진도에서 열린 설정 지성찬 특별초대전에서 지성찬 시인(가운데).[사진 | 더스쿠프, 뉴스페이퍼]
중년 이후 일산 대화동에 자리를 잡은 그는 도시도 농촌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자연과 다시 관계를 맺었다. 시조집 「대화동 일기」를 두고 평론가 오종문은 "도시와 경영의 삶을 통과한 뒤 자연과 화해라는, 지성찬식 신新귀거래사"라 평했고, 해설을 쓴 김순진은 그 바탕에 깔린 동심과 소박함, 무소유와 겸손의 정신을 읽어냈다. 도라지꽃과 황새, 호수와 달빛 같은 일상의 사물은 그의 시에서 장식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삶을 다시 배우는 '윤리의 자리'였다.

만년의 시조는 노년과 몸, 신앙으로 더 깊어졌다. 위암 수술의 체험을 '밥통'이라는 생활어로 끌어내린 「인생의 지피에스」를 두고 평론가 정용국은 "저물며 반짝이는 노을의 시학"이라 했다. 단시조 「고추잠자리」는 중앙일보 '시조가 있는 아침'에, 「목련꽃 밤은」은 조선일보 지면에 소개되며 짧은 형식 안에 귀소歸巢와 순간, 영원을 담아내는 솜씨를 알렸다.

마지막 시조집 「겨울 화석정에 올라」의 해설에서 민병도 시인은 그의 시조를 "정연하고, 정직하다"고 압축했다. 형식의 질서를 믿고, 생활 속 사물에서 존재의 가치를 캐며, 정신의 건강성을 추구한 시인이라는 평이었다.

일흔을 넘기며 그는 붓을 들었다. 한지 위에 광물성 물감을 유화처럼 쌓아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꽃과 산을 과감히 단순화하고 변형한 그의 그림은 "시조의 운율과 정서를 화폭에 옮긴 작업"으로 평가받았다.

KEPA 미술공모전 특선, 대한민국기독교미술협회전 특별상 등을 거쳐 2025년 말에는 전남 진도 시에그린한국시화박물관에서 자신의 호를 딴 '설정(雪庭)' 초대전을 열었다. 122점을 선보인 이 전시에서 그는 작품 120여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시 「백마에서 온 편지」의 한 구절처럼 "모두들 흘러가서 흐를 것이 없다"는 이치를, 그는 그림을 세상에 띄워 보내는 일로 보여준 셈이다.

2025년 전남 진도에서 열린 설정 지성찬 특별초대전. [사진 | 더스쿠프, 뉴스페이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고인은 남서울교회 동인으로 신앙시를 발표했고, 교회 원로장로로 섬겼다. 성가곡과 합창 칸타타 등 200여 편의 노랫말을 짓기도 했다. 그의 후기 시 곳곳에 배인 "사랑이 없는 인생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시와 신앙과 그림을 하나로 꿰는 마지막 화두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성채씨와 아들 주형, 딸 주예ㆍ주은 씨, 며느리 송주현씨, 사위 강승열ㆍ함용진씨가 있다.

지난해 겨울 진도에 차린 그의 '설정', 눈 덮인 뜰은 본래 올봄 춘삼월까지 관람객을 맞기로 돼 있었다. 생전 그가 노래한 "춘삼월(春三月) 오실 때에 흰 샤쓰를 걸치시면…"이라는 시구처럼, 그는 꽃 피는 봄의 문턱에서 한 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펜에서 붓으로, 끝내 한 편의 완성된 시처럼 살다 간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 더스쿠프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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