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재서 중공업, 이젠 AI·반도체로…두산, 5조 빅딜로 DNA 깨웠다[시그널]

이충희 기자 2026. 5.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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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서 실트론 인수 사실상 확정
90년대 소비재 매각해 중공업 도약
건설 차입금 위기로 두산타워 매각
후공정·소재 등 반도체 밸류체인 강화
SMR에 피지컬AI까지 패러다임 시프트
그룹 총괄하는 정교한 경영 관리 필수

이 기사는 2026년 5월 24일 03:00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분당 두산 사옥. 코람코

두산(000150)그룹이 세계 3위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034730)실트론 인수를 사실상 확정 지으며 반도체와 피지컬 AI, 친환경 에너지를 아우르는 ‘AI 인프라 밸류체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5조 원에 달하는 빅딜인 만큼, 시장의 이목이 쏠렸던 자금 조달 작업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SK그룹과 SK실트론 경영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조만간 체결할 예정이다. 인수 대상은 SK그룹이 보유한 지분 70.6%다. 여기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29.4%까지 포함해 지분 100% 전량을 인수하는 구조로 알려졌다.

거래 규모가 5조 원에 달하는 빅딜인 만큼 두산의 자금 조달 방안도 정교하게 짜여지고 있다. 국책은행 지원과 자체 지분 유동화를 결합하는 구조다. 한국산업은행이 우리은행과 함께 2조 5000억 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지원한다. 나머지 2조 5000억 원 안팎 대금은 그룹이 자체 조달한 자금으로 충당할 전망이다. ㈜두산은 최근까지 두산로보틱스(454910) 주가수익스와프(PRS)와 자체 자산 유동화 등을 활용해 이미 2조 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SK실트론 연구소. SK실트론

이번 SK실트론 인수는 두산그룹이 미래 성장 동력을 기존 중공업에서 첨단 반도체 소재·부품 영역으로 대대적 전환하는 과정에서 내린 결정이다. 두산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DNA를 갖고 있다. 그룹이 지나온 수십년 역사 궤적과 굵직한 빅딜들이 이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두산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소비재 사업을 잇달아 매각했다. 오비맥주를 비롯해 코카콜라, 3M 지분, 버거킹(두산식품), 주류사업부(처음처럼) 등 10여 개 주력 소비재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때 확보한 막대한 현금은 2000년대 두산이 중공업 그룹으로 도약하는 강력한 자금줄이 됐다는 평가다.

실제 두산은 당시 매각 대금 등을 바탕으로 2001년 한국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을 인수했다. 이어 2004년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 2005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2006년 미쓰이밥콕(두산밥콕)을 차례로 품으며 건설과 기계, 플랜트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2007년에는 국내 기업의 해외 M&A 사상 최대 규모인 49억 달러를 투입, 미국 잉거솔랜드사의 밥캣 등 3개 사업부문(두산밥캣)을 품었다.

두산은 2020년대 들어 또다시 전환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직후 건설 경기 불황 여파로 핵심 계열사인 두산건설이 흔들렸던 게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룹은 12조 원에 달하는 차입금 문제 탓에 채권단 관리에 돌입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한번 두산의 DNA를 깨웠다. 그룹은 알짜 자산으로 꼽히던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솔루스, 클럽모우CC는 물론 동대문 두산타워까지 매각하는 뼈를 깎는 자구책을 단행했다. 그 결과 1년 10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체제를 벗어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동대문 두산타워. 두산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한 두산은 곧바로 방향키를 첨단 산업으로 돌렸다. 신호탄은 2022년 시스템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분야 기업인 테스나(현 두산테스나(131970))를 약 4600억 원에 인수한 건이었다. 위기 속 단행한 자산 매각과 과감한 인수가 결과적으로 반도체라는 미래 핵심 산업을 품는 자양분이 된 셈이다.

이번 실트론 인수도 그 연장선상에서 결정됐다. 실트론을 품게 되면서 지주사인 ㈜두산 전자BG의 기판 소재 라인업과 두산테스나의 후공정 인프라를 연계하는 반도체 밸류체인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빅딜을 통해 두산이 친환경 에너지와 첨단 반도체, 로봇 등을 핵심으로 하는 체질 개선도 공식화했다고 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

실제 두산의 현 사업 포트폴리오는 글로벌 최대 화두인 AI·데이터센터·로봇·인프라의 한복판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소형모듈원전(SMR) 제작 역량과 가스터빈 기술은 AI 시대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할 기반으로 꼽힌다. 두산퓨얼셀(336260)의 수소 연료전지 사업도 에너지 분야의 또 다른 축이 될 수 있다. 두산밥캣 등 중공업 기계 분야에서는 두산로보틱스가 추진하는 로봇 기술과의 시너지를 통해 피지컬 AI 쪽으로 사업 저변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IB 업계 전문가는 “과감한 결단으로 판을 바꿔왔던 두산의 DNA가 이번 실트론 인수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됐다”면서도 “두산이 뛰어든 산업은 막대한 자금과 시시각각 변하는 신기술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정교한 경영 관리가 꼭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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