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은 시험운, 아차산은 연애운”… 2030 ‘운 트기 산행’ '럭키맥싱' 열풍

소민교 2026. 5.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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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연애운 찾아 산 오르는 청년들
'행운 모으기’ 소비 문화로도 확산
전문가 “불안 속 통제감 찾는 심리”

평소 등산이 취미인 대학생 김모(23)씨는 지난달 친구 권유로 서울 북한산을 찾았다. 최근 온라인에서 북한산이 사업운과 리더십에 좋다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퍼지자 자신의 운이 트이게 하기 위한 ‘개운(開運) 산행’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실제로 등반 이후 과외 두 개를 새로 시작했다”며 “산을 찾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가족과 관악산을 다녀왔다는 최모(22)씨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관악산에 세 번 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본 어머니 권유로 산에 올랐다”며 “당시 힘든 일을 겪고 있어 어느 정도는 믿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끼리 각자의 소원을 이야기하며 산을 올랐다”며 “이후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고 했다.

산마다 시험운·재물운·연애운 등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 ‘개운 산행’ 콘텐츠가 SNS에서 확산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2030세대에서 운을 트기 위해 산을 찾는 이른바 ‘개운 산행’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지난 1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한 역술가가 “운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에 가라”고 조언한 장면이 화제를 모으면서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개운 산행 인증 사진과 ‘관악산 등반 꿀팁’, ‘관악산 맛집 코스’ 등의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산의 특성에 따라 운을 분류하는 콘텐츠도 확산되고 있다. ‘관악산은 시험운·취업운’ ‘북한산은 리더십과 사업운’ ‘아차산은 연애운’ ‘청계산은 재물과 안정운’ 등 산마다 의미를 부여한 게시물이 SNS에 공유되며 수천 개의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김씨 또한 최근 등산 열풍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등산을 가면 산악회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등산복 대신 운동화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행운도 스스로 관리”…확산되는 ‘럭키맥싱’

네잎클로버, 행운 아이템, 개운 여행 등을 소재로 한 ‘럭키맥싱’ 콘텐츠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개운 산행 유행은 이른바 ‘럭키맥싱(Lucky-maxxing)’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럭키맥싱은 작은 행동이나 물건을 통해 운을 끌어올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네잎클로버 찾기, 행운 부적 구매, 풍수지리 명소 탐방 등이 대표적이다.

럭키맥싱은 등산을 넘어 소비 트렌드로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SNS에서는 사주에 맞는 색조 화장품을 추천하는 ‘운명 조색소’가 유행이었다. 또 “금전운을 높이는 식물 배치” “연애운을 부르는 침실 구조” 등 풍수와 인테리어를 결합한 이른바 ‘운테리어’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행운과 개운 요소를 접목한 마케팅 역시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직장인 이모(23)씨는 지난달 자취를 시작하며 현관문 앞에 액막이 명태를 걸었다. 그는 “새해를 맞아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서 액막이를 샀다”며 “동생 역시 올해 고3이 되며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의미로 행운의 거북이 장식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생 A(23)씨도 올해 ‘붉은 말의 해’를 맞아 붉은 말 액막이 장식을 샀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개운하라는 의미로 선물했다”고 말했다.


“기댈 곳이 필요해서”…불안한 청년들의 행운 찾기

행운과 액막이를 기원하며 집 안에 걸어둔 ‘붉은 말 액막이’(왼쪽)와 ‘명태 액막이’. 독자 제공

최모(22)씨는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개운 산행과 럭키맥싱 문화가 확산되는 이유로 ‘불안감’을 꼽았다. 그는 “요즘은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게 되는 것 같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도 생기면서 무속적이거나 운과 관련된 것들에 더 기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23)씨 역시 “사건·사고 뉴스도 많고 여성 대상 범죄 이야기도 자주 접하다 보니 혼자 사는 게 불안했다”며 “미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것들에 기대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개운 산행과 럭키맥싱 문화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통제감’을 확보하려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원래 통제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 존재”라며 “취업난이나 미래 불안 등으로 청년층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착각적 통제감(illusion of control)’은 스트레스 완화와 정신 건강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행운에만 기대선 안돼”…커지는 우려의 목소리

1일 관악산 정상 부근에 등산객들이 몰려 있는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다만 럭키맥싱 문화가 과도한 ‘행운 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 교수는 “관악산에 가면 일이 잘 풀린다고 믿는 식의 행동은 통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에 두는 방식”이라며 “불안감을 해소하고 다시 행동할 동력이 된다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행운 자체에만 의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은영 서강대 교수(사회심리학자)는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운이나 사주 같은 요소에 더 주목하게 된다”며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싶어지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악산에 다녀오면 운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행동은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과도 연결될 수 있다”며 “다만 실제 문제 해결보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 성격에 가까운 만큼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소민교 인턴기자 sohminkyo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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