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놀이의 진화"... 마케팅 문구에, 영상 자막에 '혐오 코드' 슬쩍

이현주 2026. 5.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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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넘어선 '혐오 밈'>
'스벅 5·18 폄훼' '노무현 조롱' 등 잇따라
'농담의 탈' 쓴 혐오, 음지서 이젠 양지로
순화된 '중의적 표현' 위장… 거부감 차단
혐오 코드 숨겼다 발각돼도 '놀이'엔 성공
청년 세대엔 '모국어'… 기성세대는 '무지'
"정치적·상업적 활용에는 일벌백계 필요"
19일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듯한 '탱크데이' 이벤트를 전날 진행한 데 대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날 사과문을 발표했다. 뉴스1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는 얼마 전만 해도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시민이 찾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프로 스포츠 구단 유튜브 채널에서, 힙합 가수 콘서트 등에서 고개를 불쑥불쑥 내밀고 있다. 음지(陰地)에서 비슷한 성향의 누리꾼들끼리 주고받던 '혐오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어느새 양지(陽地), 곧 오프라인 세계까지 침투해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 밈'의 고의적 전파는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에 기원을 둔 '일베 놀이'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특히 일베의 외부, 즉 일반 대중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직설적 형태보다는 '모호하고 중의적인' 표현으로 위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규제나 처벌은 더 힘들어진 셈이다. 극우의 혐오 밈은 어떻게 '그들만의 세상'을 넘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 영역으로까지 진입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대책은 없는지 등을 짚어 봤다.


"일베적 혐오, 일베 이름 없이 사회 중심부에"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이번에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이다.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8일, 해당 이벤트가 공개되자 박태훈 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은 엑스(X)에 즉각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일베 폐쇄 서포터즈' 단장이기도 한 박 위원장은 탱크데이 이벤트를 '일베 놀이의 일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일베 밈을 숨겨 두고 키득대는 금수들을 어찌할까"라며 "오늘 '탱크 텀블러'를 보면서 웃는 사람들은 (5.18 당시 신군부 계엄군에 저항했던) 광주 시민을 '폭도'라 부르는 이들과 같은 문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유튜브 채널 '자이언츠TV'에 11일 게시된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 영상 중 한 장면. 광주 출신인 롯데 소속 노진혁 유니폼의 '진혁' 부분 위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노란색 원)을 넣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자이언츠TV 영상 캡처

일베의 대표적 혐오 밈인 '노무현 조롱'이 최근 공공 영역에 잇따라 등장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다. 이달 11일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유튜브 채널 '자이언츠TV' 영상 속 자막이 대표적이다. 광주 출신인 롯데 소속 노진혁 선수의 유니폼에 적힌 이름 '진혁' 위치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을 덧입혀 '노무한 박수'로 읽히도록 만든 것이다. 일반 누리꾼이 아니라 '자이언츠TV' 자막 담당자가 그랬다는 점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가사로 유명해진 래퍼 '리치 이기'의 사례도 있다. 그는 아예 노 전 대통령 서거일(5월 23일)에 맞춰 본인의 첫 단독 콘서트를 준비했다. 공연 시작 시간을 오후 5시 23분으로 정했고, 티켓 가격도 5만2,300원으로 책정했다. 노 전 대통령 모욕의 의도가 짙었다. 박 위원장은 X를 통해 "농담의 탈을 쓴 혐오, 냉소와 조롱으로 위장한 정치적 적대감은 일베라는 그릇을 벗어나 유튜브로, 밈으로, 힙합 가사로 흘러들었다"며 "일베의 이름 없이도 일베적 혐오가 사회의 중심부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을 부른 ‘일베 놀이’ 주요 사례. 그래픽=김대훈 기자

'혐오 밈' 전파, 발각되든 안 되든 '성공'

문제는 모든 게 '놀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보 문구나 자막에 일부러 '혐오 코드'를 심어 놓은 뒤, 그 후 벌어지는 논란과 잡음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학계에서는 개를 부를 때 쓰는 호각을 뜻하는 '도그 휘슬(Dog Whistle)'이라는 용어로 이를 설명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평범하거나 무해하게 들리지만, 특정 집단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게끔 숨겨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하기 방식이라는 것이다.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고, 외부에는 혼란을 야기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밈과 신조어로 읽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부족주의'(2022) 논문을 쓴 박인성 부산가톨릭대 인성교양학부 교수는 "한국의 혐오 놀이는 수평적 또래 사이의 충성 시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혐오 놀이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①가벼움의 외피: 밈과 유머라는 외피를 통해 기표를 유포하기→②발각 자체의 게임화: 들키지 않으면 내부 결속, 들키면 그 또한 콘텐츠가 돼 외부의 분노가 즐거움이 됨→③해명을 통한 2차 조롱: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는 "외부에서 정색하고 비판할수록 내부 결속이 강해지는 자기 강화 회로를 갖고 있다"며 "진지한 비판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증해 주는 연료가 된다"고 분석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파문 이후 엑스(X)에 게시된 '일베 놀이'의 알고리즘 설명 이미지. X 캡처

'프로보커터: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2021)의 저자 김내훈 작가도 "밈 자체가 정치적 기능을 한다"고 짚었다. "밈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친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밈을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을 가르거나, 상대 진영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라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밈에 자극을 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왜 이렇게 발끈하냐'며 분탕질을 하는 분위기가 온라인에 이미 만연해 있다"고 덧붙였다.


'주류 침투' 위해 더 모호해지는 혐오

더욱 심각한 건 '위장된 혐오·조롱'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성된 혐오·조롱 표현이 순화된 형태로 가공돼 광고와 예능 등 주류 문화로 흘러들어 가면서 이미 청년 세대의 '모국어'가 됐는데, 기성세대는 그 어휘에 담긴 속뜻을 알아챌 해석 능력이 없다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폄훼 마케팅'이 결재 과정에서 걸러지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스타벅스 사태와 관련,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조직 전체의 감수성 부재'를 언급했다. 구 교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스타벅스코리아의 모기업) 회장의 (정치적) 성향을 따르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코리아에 모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조직 구성원들이 평소엔 멀쩡하게 일하다가도 선거철 등의 시기엔 정치적 DNA(유전자정보)를 드러내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며 "결재 과정에서 이를 걸러낼 수 있는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지로 나온 혐오 표현은 명확성이 덜하기 때문에 제재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황희두 노무현재단 이사는 "혐오 밈은 맥락을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통하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누가 코알라를 보고 웃는 사진을 게시하면, 이 코드를 이해하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이라는 걸 알지만, 당사자가 '그냥 코알라를 보고 웃은 것'이라고 주장하면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레드의 국민의힘 충북도당 계정에 게시된 글.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국민의힘 충북도당 스레드 계정 캡처

정치인 발언·대기업 마케팅 등 오염부터 막아야

'모호한, 순화된 혐오'라고 해서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작은 건 아니다. 오히려 더 광범위하게 혐오가 퍼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5·18 정신을 왜곡하거나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발언들이 희생자와 유족들, 호남인들에 대한 전반적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일률적인 '혐오 표현 규제'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혐오 표현이 노골적이지도 않은 데다, 규제 기준이 정립되면 이를 우회하려는 교묘한 수법도 계속 등장할 수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행위에는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홍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혐오가 상업적으로 이용되거나, 정치인들이 혐오를 말하기 시작하면 부정적 방향으로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온라인 하위문화를 넘어서 정치적·상업적으로 활용되는 부분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태훈 위원장 역시 △정치인의 혐오 발언 △대기업 마케팅의 혐오 표현 사용 등은 적극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 사례로는 스타벅스 탱크데이 파문 이후, 김선민 국민의힘 거제시장 후보와 국민의힘 충북도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스타벅스를 옹호하는 취지의 댓글을 단 행위를 들었다. 박 위원장은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혐오 표현에 아무 제재도 하지 않으면, 추후엔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표현'으로 인식되게 된다"며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큰 발화자들(의 혐오 표현 사용)에 대해선 일벌백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법적 제재는 쉽지 않다'는 이유로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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