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수준 인력 유지해야”…‘삼성전자 파업’에 제동 건 법원 [이인혁의 판례 읽기]

한경비즈니스외고 2026. 5. 2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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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법, 가처분 대부분 인용

[법알못 판례 읽기]

4월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 모습.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최근 몇 주간 국내 경제계에서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총파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노조 측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삼성전자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단순히 특정 기업의 노사 분쟁으로 치부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노조의 파업 시도에 제동을 걸어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수원지방법원 민사31부(재판장 신우정 수석부장판사)는 삼성전자가 노조 측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5월 18일 대부분 인용했다.

‘연속 순환 공정’이라는 반도체 제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삼성전자 측 손을 들어줘 눈길을 끌었다.

 “‘정상적’은 ‘평상시’와 같은 뜻”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42조 제2항에는 ‘사업장의 안전 보호시설에 대해 정상적인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는 쟁의행위로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정상적’이란 표현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즉 평시와 같은 상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과 동일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정상적’이란 표현을 ‘정당한’이란 단어와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문상 필수 유지 업무의 정당한 유지·운영은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으로 해석되는 반면, 안전 보호시설에 관해선 ‘정상적’인 유지·운영이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노동조합법에서 굳이 다른 용어를 사용한 이유가 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 제42조 제2항은 사람의 생명·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조항”이라며 “여기서 말하는 정상적 운영은 어떠한 위험 발생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는 안전한 상태로 해석하는 게 입법목적에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파업하더라도 안전 보호시설에선 평시와 같은 수준의 근무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노동조합법의 취지라는 해석이다.

안전 보호시설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을 예방하거나 위생상 필요한 시설을 의미한다. 사업장의 성질, 시설의 기능, 예상되는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안전 보호시설 해당 유무를 따져봐야 한다.

삼성전자는 파업 시 영향을 받게 되는 방재, 배기, 배수, 화학물질 공급, 전력 공급, 관제시설 등이 안전 보호시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삼성전자 측 해석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각 시설의 특성, 목적, 구조 등에 비춰 각 시설이 정상적으로 유지·운영되지 않을 경우 화재나 폭발사고, 유독가스 누출, 정전 등으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해 위험을 야기할 우려가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하다”며 “그렇기에 채무자(노조) 측은 쟁의행위 기간 중이라도 이 시설에 관해선 평상시와 동일한 인력, 가동시간, 가동 규모, 주의의무로써 유지·운영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안전시설 내에서도 생산 업무를 하는 근로자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재판부는 “안전 보호시설이 생산기능을 겸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기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게 가능한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며 “특정 시설 내에서 획일적으로 근로자를 ‘생산 담당’과 ‘안전 담당’으로 나눠 전자의 쟁의행위만 허용한다면 사실상 안전 보호시설의 평상시와 같은 유지·운영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안전 보호시설에 대한 정상적 운영 방해와 관련한 가처분 분쟁에선 삼성전자 측이 완승을 거뒀다.

 “회복할 수 없는 손해 가능성”

보안작업 관련한 파업을 금지해 달라는 삼성전자 측 요구가 두 번째 쟁점이었다. 노동조합법 제38조 제2항에는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보안작업)은 쟁의행위 기간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도 ‘정상적’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보안작업도 안전 보호 작업과 동일하게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 수준의 근무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보안작업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삼성전자는 설비 관리(설비 내부 배관 관리, 마스크 세정설비 약액 관리, 웨이버 배출 관리 등)와 제조 관리(웨이퍼 정체 관리), 공정 관리(공정 불량 발생 모니터링 및 후속 조치), 인공지능(AI) 센터 시스템 관리 업무 등이 보안작업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이 업무들이 평상시와 같은 수행에 미치지 못할 경우 반도체 시설의 손상이나 웨이퍼와 같은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과 개연이 충분하다”며 삼성전자 손을 들어줬다.

노조 측은 생산이 중단된 ‘대기’ 상태에선 설비 관리 업무가 불필요하다고, 나머지 작업은 모두 적극적인 생산활동을 전제로 한 업무에 해당하는 만큼 보안작업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8가지 이유를 들어 노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4시간 가동되는 연속 순환 공정의 특수성과 웨이퍼의 고유한 특성상 웨이퍼의 공정 대기 한계 시간과 정해진 보관 용량이 초과하는 경우 일정 시간 내에 후속 공정으로 진행하지 못하면 산패와 화학물질 증착, 과도한 식각 등을 원인으로 웨이퍼가 변질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채무자들의 주장은 ‘파업할 테니 일을 덜 시켜라. 그러면 문제가 안 생긴다’는 취지”라며 “이는 사용자의 조업 계속의 자유나 사업수행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보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사후적 금전배상 등을 통해 회복될 수 없는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반도체 제조 공정은 24시간 연속 운전을 전제로 설계된 것으로서, 일시적인 가동 중단조차 수율 저하와 웨이퍼 손실, 설비 재가동 비용 등 막대한 직접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나아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채권자(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시설 손상 및 원료·제품의 변질 내지 부패로 인한 생산 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관련 산업의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5월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사협상 결렬에 따른 총파업 강행 입장을 밝힌 뒤 협상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이솔 한국경제신문 기자

[돋보기]

 ‘점거 금지’는 노조 따라 다른 결정…이유는?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점거 금지’ 관련 부분도 주요한 쟁점이었다.

수원지방법원 민사31부(재판장 신우정 수석부장판사)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와 최승호 지부장에 대해선 점거 금지 신청을 인용했다. 노동조합법은 ‘생산 기타 주요 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 대해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재판부는 “생산라인(FAB) 및 연구라인, 생산 관련 업무실, 특수분석실, 구매창고(냉동고·부품·원자재), 전기·전산 또는 통신 관련 시설, 폭발위험 물질 또는 유해성 화학물질 보관·저장 시설 등은 대통령령이 정한 점거 금지 시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거나 잠금장치 설치, 근로자 출입 방해 등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과 우하경 부위원장에 대해선 점거 금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점거를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점거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따로 금지를 명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삼노는 지난 3월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원이나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 동료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일은 결코 지지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를 감안할 때 전삼노가 실제 점거 행위를 할 위험성이 있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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