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도 런던도 파리도 아니었다… 전 세계 ‘살기 좋은 도시’ 기준, 이름값서 생활비로 이동

유진우 기자 2026. 5. 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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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올해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 카멜
글로벌 대도시 ‘이름값’ 한계
주거비 감당 가능한 중형 도시 부상
대도시권 교외가 상위권 휩쓸어
스카이라인 대신 집값·치안·자연 선호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세계 도시 브랜드 정점에 선 이름들이다. 그러나 ‘매일 살기 좋은 곳’을 묻는 순위에서 이들은 줄줄이 빠졌다. 그 자리를 인구 10만명 안팎 교외 소도시, 인구 1만명대 시골 마켓타운, 해안 휴양도시가 채웠다. 미국 시사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20일(현지시각) 발표한 2026~2027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1위는 인디애나폴리스 외곽 인구 약 10만명 규모 교외도시 카멜(Carmel)이 차지했다. 2위는 1위에 인접한 바로 옆 교외도시 피셔스(Fishers)였다. 같은 보고서를 보면 뉴욕·샌프란시스코·시카고 같은 초대형 유명 도시들은 미국 내 10위 안에 한 곳도 들지 못했다.

인디애나주 카멜 전경. /연합뉴스

카멜·피셔스 뒤로도 텍사스주 플라워마운드(약 8만명), 리앤더(약 9만1000명), 프리스코(약 23만7000명), 슈거랜드(약 10만8000명)처럼 대도시권에 속하는 교외도시들이 상위권을 채웠다. 이 평가는 미국 전역 850개 도시 가운데 250곳을 추려 주거비 부담, 고용시장, 범죄율, 통근 시간 등을 측정한 뒤 노동통계국·센서스국·연방수사국(FBI) 자료와 수천명 대상 설문을 결합해 산출했다.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올해 평가에서는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감당 가능한 비용(affordability)’ 비중이 어느 해보다 컸다”고 결과를 설명했다. 2021년 콜로라도 볼더, 2022년 앨라배마 헌츠빌, 2023년 위스콘신 그린베이 같은 중형 테크 도시가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4년부터 고소득 은퇴자 거주지 플로리다 네이플스(Naples)가 수위를 차지한 이후 3년 연속으로 대도시 외곽 소도시 강세 현상이 굳어졌다.

미국 통계국 인구 이동 자료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통계국은 “2024~2025년 사이 물가가 급등하면서 대도시 성장이 크게 둔화됐고, 일부 대형 허브 도시에서는 인구 소폭 감소까지 나타났다”고 했다. 반면 중형 도시는 국내외 이주와 신규 주택 공급이 맞물리며 대도시와 소도시 사이 이른바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 구간’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시민들이 대도시 경제권을 떠난다기보다, 같은 생활권 안에서 감당 가능한 외곽으로 거주지를 재배치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직장은 도심에 두면서 집값·학군·치안은 교외에서 해결하는 모델이다.

비슷한 흐름은 유럽에서도 나타났다. 영국 최대 부동산 포털 라이트무브가 집계한 ’2025년 해피 앳 홈 인덱스' 1위는 런던도 맨체스터도 아닌 노스요크셔 마켓타운 스킵턴이었다. 이 도시 인구는 약 1만5000명 수준이다. 스킵턴에서 거래되는 평균 부동산 매물 호가는 32만6093파운드(약 6억5700만원)로, 영국 전국 평균 36만4833파운드(약 7억3500만원)보다 12% 낮았다. 라이트무브는 “주거 만족도는 집 자체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자연환경, 필수 시설 접근성에 크게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지 선데이타임스가 72개 지역을 학교·교통·하이스트리트 활력 등으로 평가한 ’2026 베스트 플레이스' 전국 1위 역시 잉글랜드 동부 중형도시 노리치(약 14만명)가 차지했다. 인구가 몰린 런던 안에서는 리치먼드어폰템스(약 19만5000명) 자치구와 캠든(약 21만명)이 순위권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대도시 전체가 외면당하는 게 아니라, 대도시 안에서도 녹지·문화 접근성이 좋은 동네에는 수요가 집중되는 양극화 양상이 뚜렷하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리옹·마르세유 같은 상징적 대도시는 살기 좋은 도시 최상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프랑스 민간 협회가 평가한 ’2026년 살기 좋은 도시·마을' 순위에서 도시 부문 1위는 바스크 해안 휴양도시 비아리츠(약 2만6000명)였다. 2위 안시(약 13만명), 3위 앙제(약 15만8000명), 4위 바욘(약 5만3000명), 5위 로데즈(약 2만4000명)가 뒤를 이었다. 해안과 알프스 호수, 온화한 기후라는 자연 조건에 보건·치안·상업 서비스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도시들이 압도적 수도 브랜드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순위는 프랑스 본토 3만4727개 코뮌(마을 단위)을 삶의 질·안전·보건·교통·교육·환경 등 11개 범주 197개 기준으로 나눠 평가한다.

일본은 양상이 더 복잡하다. 일본경제 전문지 동양경제가 안심도·편리도·쾌적도·부유도 4개 분야 20개 공적 지표로 평가한 ’2025 살기 좋은 도시 순위' 1위는 호쿠리쿠 신칸센 연장으로 접근성이 개선된 제조업 거점 후쿠이시(약 20만명)였다. 부동산 기업 다이토켄타쿠가 실제 거주자 만족도를 누적 조사한 순위에서는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초(약 8000명)가 1위를 차지했다. 이 도시는 맑은 지하수에 기반한 생활 인프라와 경관 조례, 도시 전략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 흐름에 정면으로 반하는 예외도 있었다. 독일은 고임금 일자리와 산업 기반이 비싼 주거비를 상쇄했다. 독일경제연구소(IW)와 부동산 포털 이모스카우트24가 인구 10만명 이상 71개 대도시를 분석한 2025년 랭킹에서 1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업 대도시 뮌헨(약 150만명), 2위는 슈투트가르트(약 63만명), 3위는 자동차업체 아우디 본사가 있는 잉골슈타트(약 14만명)였다. 조사를 한 포털 이모스카우트24는 “뮌헨은 노동·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강하지만, 높은 임대료와 주택가격 탓에 인구 이동 측면에서 부담감이 동시에 드러난다”며 “뮌헨과 프라이부르크 두 도시만 현재 수준·성장 동력·인프라 세 지표 모두에서 상위 15위에 들었다”고 분석했다. 살기 좋은 도시 기준이 단순히 저렴한 주거비로 바뀐 게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만한 일자리와 인프라가 받쳐줘야 한다는 반증이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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