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왕’, 안필드와 작별…9년간 376개 공격포인트, 게임당 1개 꼴

김세훈 기자 2026. 5. 24.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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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흐. AP

‘이집트의 왕’이 안필드를 떠난다.

9년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리버풀의 상징으로 군림한 무함마드 살라흐(34)가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작별을 고한다. 리버풀 팬들에게 그는 단순한 공격수가 아니라 구단 역사의 한 시대 자체였다.

영국 BBC는 24일 살라흐의 리버풀 커리어를 조명하며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시간이 더 흐른 뒤 더욱 선명하게 평가될 것”이라고 전했다.

살라흐는 2017년 AS 로마에서 약 3400만 파운드 이적료로 리버풀에 합류했다. 과거 첼시 시절 프리미어리그 적응 실패 경험 때문에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리버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입 중 하나가 됐다.

그는 리버풀 통산 257골을 기록하며 구단 역대 득점 순위 3위까지 올라섰다. 이언 러시(346골)와 로저 헌트만이 살라흐보다 많은 골을 넣었다. 살라흐는 도움도 119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영향력은 더욱 경이롭다. 살라흐는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3만5326분 동안 376개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평균 94분마다 한 골 또는 한 개 도움을 생산한 셈이다.

살라흐는 단순히 숫자만 남긴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위르겐 클롭 감독 체제에서 리버풀 전성기의 핵심이었다.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함께 구축한 공격 삼각편대는 세계 축구 최고의 조합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세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주요 우승 트로피를 모두 들어 올렸다. 2019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우승은 살라흐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리버풀은 토트넘을 꺾고 정상에 올랐고, 이는 클롭과 살라흐가 함께 이룬 첫 메이저 우승이었다.

살라흐는 경기장 안팎에서 철저한 자기관리로도 유명했다. 클롭 감독은 BBC와 인터뷰에서 “그는 프로 선수의 기준 자체를 새롭게 만들었다”며 “훈련과 회복, 자기 투자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고 평가했다. 아이스배스, 식단 관리, 명상 등 철저한 루틴은 후배 선수들의 기준이 됐다.

리버풀 주장 버질 판데이크 역시 “말이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행동으로 팀을 이끄는 리더였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살라흐는 세밀한 부분까지 집착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선수였다. 경기 뒤 상대 골키퍼 벤 포스터에게 “페널티킥 상황이었다면 어느 방향으로 다이빙했을 것 같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해외 선수 최다골(193골)을 기록했고, 리버풀의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성기 시절에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가장 근접한 공격수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리버풀 전 주장 스티븐 제라드는 “기록과 트로피, 그리고 팀 문화까지 포함해 살라흐의 유산은 스스로 말해준다”며 “그는 리버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 반열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리버풀 레전드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 역시 살라흐를 두고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했다. 다만 마지막 시즌은 다소 씁쓸했다. BBC는 살라흐와 감독 아르네 슬롯의 관계가 시즌 후반 급격히 악화됐다고 전했다. 연속 선발 기록이 끊긴 뒤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결국 리버풀 수뇌부도 계약 조기 종료를 받아들인 분위기였다.

살라흐의 다음 행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집트 나그리그 마을에서 시작된 한 소년의 여정은 안필드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만들었고, 리버풀 팬들에게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게 됐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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