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손대면 망친다” 잿더미 된 숲, 1년간 놔뒀더니…믿기 힘든 ‘충격’ 변화 [지구, 뭐래?]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초록색 수풀과 나무가 자라나고 있는 경북 의성의 한 숲. 별다른 것 없어 보이는 이 숲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약 1년 전 우리나라 국토의 1%를 태워버린 ‘대형산불’이 지나간 자리라는 것. 당시 이 숲 또한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 숲의 형체를 잃어버린 바 있다.

순식간에 푸르름을 되찾은 숲. 놀라운 점은 인간의 손길이 조금도 닿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힘이 생태계를 복원해 냈다는 것.
처음 자연복원을 시도할 당시, 일각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기도 했다. 불에 탄 나무들을 베어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 ‘인공 복원’이 주된 대응 방식이었기 때문.

하지만 그 주장이 무색하게, 산은 놀라운 회복력을 자랑했다. 심지어 다시 산불이 발생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천연 ‘방화’ 장치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의 비중은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산사태 위험 또한 줄었다.
이처럼 실질적인 자연 복원의 효과가 입증되며, 산불 피해 대응 방식이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왼쪽은 2025년 3월 31일 산불 직후의 고운사, 오른쪽은 2026년 5월 17일 산불 1년 후의 고운사.[그린피스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3/ned/20260523174208045egie.jpg)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안동환경운동연합·불교환경연대·서울환경연합·생명다양성재단 등 5개 단체 연대체와 이규송 강원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오는 22일 UN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는 역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천년고찰 고운사 사찰림도 전체 면적의 97.51%에 달하는 252헥타르 크기의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생태적 가치가 높았던 축구장 360개 크기의 숲이 그대로 ‘쑥대밭’이 돼버린 셈이다.

이후 산불 피해 복원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고운사는 주지스님(등운)의 뜻에 따라 산불 피해 지역을 있는 그대로 놔두기로 결정했다. 불교 종단이 ‘자연복원’을 공식 선언한 첫 사례이자, 대형 산불 피해 지역에서 실시되는 최초의 자연복원 실험이었다.
그로부터 400여일이 흐른 지금, 자연복원의 결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대체에 따르면 현재 산불 피해지의 76.6%에서 자연복원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위성으로 분석한 정규화 식생 지수(NDVI)는 산불 직후 0.14에서 지난 18일 기준 0.516으로 회복됐다. 1에 가까울수록 푸르다는 의미. 이는 평년의 약 70% 수준에 가까운 수치다.

단순히 푸르름만 회복된 게 아니다. 자연 복원되고 있는 숲은 이후 ‘산불’에 강한 체질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산불 직전 사찰림의 61.9%는 소나무가 대다수인 숲이었다. 불에 쉽게 타버리는 소나무의 특성 탓에, 사찰림 피해의 49.57%는 나무 꼭대기까지 타버리는 가장 강한 화재 피해를 입은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사찰림의 소나무림 비중은 58.51%에서 0.58%로 100분의 1가량 크게 줄었다. 소나무가 사라진 자리의 87%는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채우기 시작했다.

기존에 활엽수림이었던 자리에서는 강력한 회복 징후가 포착됐다. 기존 활렵수림 자리에서는 98%가 높은 식생 회복을 보였다. 침엽수림이었던 자리는 식생 회복이 40%가량 이뤄졌다. 또한 활엽수림이었던 자리는 산불 후 99%가 다시 활엽수림으로 재생됐다. 침엽수림이었던 자리는 62%가 활엽수림으로 전환됐다.
자연 스스로가 산불에 더 강한 활엽수림을 조성한 셈. 심지어 산사태에까지 강한 숲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연구팀이 국내 산림의 토양 침식 모델을 통해 ‘극단적 호우 상황’을 가정한 결과 산불 직후 약 4개월 만에 토양 침식 위험이 3.57배가량 줄었다. 토양 침식 위험 구간은 산불 직후 51.1%에서 10.8%로 약 4.7배 줄었다. 안전 구간은 7.9%에서 60.6%로 확대됐다.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을 지나가는 너구리.[그린피스 제공]](https://t1.daumcdn.net/news/202605/23/ned/20260523174209102vzcp.gif)
숲 외에도 다양한 생태계 회복 징후가 포착됐다. 특히 산불로 자리를 비웠던 동물들이 다수 포착됐다. 실제 동물 조사에서는 고운사 산림이 멸종위기종의 피난처이자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천연기념물인 수달에 더해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담비, 삵 등 법정보호종 3종이 모두 발견됐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수달은 계곡을, 담비는 능선을 이동 통로로 이용하며 산불 피해지 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며 “중대형 포유류의 회복 잠재력은 높게 나타났으나, 설치류 등 소형 포유류의 종 다양성은 일시적으로 낮은 상태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경북 의성 고운사 사찰림에서 포착된 담비.[그린피스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23/ned/20260523174209411wgtp.png)
물론 아직 완전한 회복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회복까지는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시점, 이같은 자연복원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산불 피해 대응의 새로운 해법이 제시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연구를 수행한 이규송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는 “산불 직후 진단을 통해 자연복원 가능성이 확인된 지역이라면, 인위적 개입보다 자연의 회복력에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1년의 데이터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2022년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가 2030년까지 약속한 ‘효과적인 복원(effective restoration)’의 핵심 방법 중 하나도 자연복원”이라며 “고운사 사찰림의 회복이야말로 UN 생물다양성 협약이 말해온 ‘인간과 자연의 공존’ 사례”라고 말했다.
한편 연대체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세 가지 정책 제언을 제시했다. 첫째는 보호지역 내 산림 관리는 보전 원칙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 이어 산불피해지 복구는 인공조림 기본값에서 벗어나 자연복원 가능성 진단에서 시작하는 진단 기반 복구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산주·시민·학계·정부가 함께하는 민관 거버넌스를 통해 산림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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