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오해와 침묵 사이에서 진심을 찾는 성장소설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현주 청소년기자]
관계는 어느 때보다 촘촘해졌지만, 마음을 나눌 곳은 오히려 줄어든 시대다. 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정, 온라인 공간을 오가며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속마음을 편하게 꺼내 놓기는 쉽지 않다. 친구 사이의 오해, 가족 안에서 느끼는 거리감, 말하지 못한 서운함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조용히 쌓인다.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그런 청소년들에게 관계는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건네는 작품이다.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2016년을 사는 중학생 은유와 1982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은유는 우연처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살아가는 시간도 처한 상황도 다르다. 처음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오해하지만, 편지가 이어질수록 두 은유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 작품은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청소년소설이다.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지만, 독자의 폭은 청소년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싶은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간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가족, 상실, 애도, 오해, 화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이 소설의 힘이다.
34년의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편지
이야기는 2016년, 아빠의 재혼을 앞둔 은유가 1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작된다. "나에게. 아빠가 쓰라고 해서 쓰는 거야."라는 첫 문장은 대수롭지 않은 기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편지는 엉뚱하게도 34년 전인 1982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은유에게 도착한다.
과거의 은유는 낯선 말투와 신조어가 가득한 편지를 받고 의심한다. 현재의 은유 역시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삐걱거리며 시작된 관계는 '행운의 동전'을 계기로 조금씩 달라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놓인 시간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한다.
현재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고,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가 평생 궁금해했던 엄마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두 은유의 관계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장난을 넘어선다. 한 사람은 엄마의 부재 속에서 자랐고, 다른 한 사람은 가족 안에서 비교와 외로움을 겪는다. 서로 다른 결핍을 가진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을 알아 가기 시작한다.
가족이라고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많은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야기의 반전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오해와 침묵이 쌓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가족 안에서는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이 많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서운할 때도 있고, 표현 방식이 달라 서로를 오해할 때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낯설지 않다. 부모의 침묵, 자녀의 서운함, 형제자매 간 비교, 말하지 못한 진심은 현실의 가족 안에서도 자주 마주하는 감정이다. 작품 속에서 떠오르는 "가족이라고 다 이해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그래서 오래 남는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가까운 만큼 쉽게 상처받고 늦게 사과하게 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가족의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각자의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도록 한다. 떠난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리워하고, 몰랐던 마음을 뒤늦게라도 마주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면서 동시에 애도의 이야기이고, 관계 회복에 관한 이야기다.
관계에 지친 청소년에게 필요한 질문
요즘 청소년들이 겪는 관계의 어려움은 단순히 친구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단체 대화방의 말 한마디, SNS에서의 반응, 학교 안에서의 미묘한 거리감, 가정에서 느끼는 외로움까지 아이들의 관계는 여러 층위에서 흔들린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마음속에는 "왜 나만 이해받지 못할까", "나는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쌓일 수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그런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 과정을 보여준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은유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상처를 듣고, 고민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관계란 늘 가까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기다려 주는 태도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청소년 독자는 현재의 은유가 느끼는 답답함과 외로움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부모 독자는 과거의 은유가 성장해 가는 시간을 따라가며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 혼자 읽어도 좋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기에도 적합하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책
이 작품은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에서 좋은 독서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은유는 왜 아빠에게 서운했을까", "가족 사이에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마음이 있을까", "내가 과거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와 같은 질문은 자연스럽게 가족 간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 책은 부모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해 엇갈리는 관계는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그 엇갈림을 비난하기보다, 뒤늦게라도 마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작품의 초반부는 잘못 배달된 편지라는 설정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끈다. 중반 이후에는 두 사람의 관계 변화와 숨겨진 진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하나씩 맞물리며 독자는 두 은유의 마음을 따라가게 된다. 결말을 짐작했다 하더라도 눈물을 피하기 어렵다는 독자들의 반응은 이 작품이 가진 감정의 밀도를 보여준다.
시간을 건넌 편지가 남긴 위로
이꽃님 작가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통해 거창한 기적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일상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 말하지 못한 진심을 전하는 일,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일은 평범해 보이지만 관계를 다시 이어 주는 힘이 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한 사람에게 닿고 싶은 마음의 고백처럼 읽힌다. 그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거리일 수도 있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거리일 수도 있으며, 살아 있는 사람과 떠난 사람 사이의 거리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 거리를 따뜻하게 건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흔들리는 청소년에게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가족이어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관계, 친구라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생각했던 감정, 가까운 사람에게 차마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돌아보게 한다. 관계가 어렵고 마음을 꺼내기 힘든 청소년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위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