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아지고, 더 길어진 분쟁…“전쟁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다”
어린이·의료진까지 공격 대상…이란 침공도 국제법 위반

폭격으로 파괴된 예멘의 건물 잔해 사이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열 살 소년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후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구호활동을 하던 구급차는 수십발의 총탄 세례를 받고 멈춰섰다. 지난 5월 15일 서울역사박물관이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함께 개최한 ‘전쟁에도 선은 있다’ 전시에서 만난 전쟁의 참상이다.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과 이들을 돕는 인도주의 활동가와 의료진은 전쟁 중에도 공격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전시 민간인 보호는 제네바협약에 뿌리를 둔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대한민국의 제네바협약 가입 6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도 이 원칙을 다시금 상기시키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전시는 전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전쟁의 선’이 형해화됐음을 보여준다.
전쟁의 규칙이 흔들린다
제네바협약은 국제인도법의 핵심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국제조약이다. 전쟁이나 무력 충돌 상황에서 전투 능력을 상실했거나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인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체결됐다. 계기는 1859년 6월 24일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 지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였다. 당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이를 주도하던 사르데냐 왕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이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정면충돌한 전투였다.
약 30만명의 군인이 동원됐는데, 단 하루의 전투로 약 4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총기 기술의 발달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급격히 늘었지만, 부상자 구호 시스템은 사실상 없던 터라 수만명의 부상병이 전쟁터에 버려진 채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이 참상을 본 스위스의 사업가 앙리 뒤낭은 두 가지 제안을 했다. 바로 모든 국가가 전쟁터의 부상자를 돌볼 수 있는 자원봉사단체를 평화 시에 설립할 것과 모든 국가가 전쟁터에서 부상자와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을 보호하기로 합의할 것이었다.
첫 번째 제안은 현재 전 세계 191개국에 있는 적십자사와 적신월사의 기원이 됐다. 두 번째 제안은 오늘날 196개국이 비준한 제네바협약의 효시가 됐다. 먼저 1864년 육상 전장에서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린 군인, 그리고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을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제1협약이 체결됐다. 이후 전쟁의 양상을 반영해 해전 부상자(제2협약), 포로(제3협약), 전시 민간인(제4협약)까지 보호 대상이 확대됐다.
한국은 대한제국 시기이던 1903년 제네바 제1협약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당시 태동하던 국제인도법 체계에 비유럽 국가로서는 선구적으로 동참한 국가 중 하나였다. 김형은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공보관은 “당시 대한제국이 처한 내외적 상황이 매우 역동적이고 어려웠음에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선도적으로 가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지나 한국이 1949년 완성된 제네바 4개 협약에 정식으로 가입한 때는 1966년이다.
1977년에 채택된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는 ‘구별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무력 충돌 시 반드시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해야 하고, 군사 목표물과 민간 시설을 엄격히 구별해 민간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조약에 따라 적십자나 적신월 등의 표식을 부착하고 전장에서 구호 임무를 수행하는 인도주의 활동가와 의료진 역시 절대 공격해서는 안 되는 보호 대상으로 확고히 규정됐다.
최근 분쟁의 수가 늘고, 양상도 격해지면서 국제인도법은 곳곳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분쟁이 130여개에 달하는데, 15년 전과 비교하면 2배 늘었다. 게다가 20여개가 넘는 분쟁이 20년 이상 장기화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세대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전쟁터의 삶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라고 있는 것”이다.
국제인도법은 민간인과 민간 기반 시설은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담고 있다. 의료인과 응급처치 요원, 의료 시설과 수송 수단 역시 마땅히 존중되고 보호돼야 한다. 인도주의 활동가와 시설 또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선 전력과 식수, 의료 서비스 등 사람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들이 표적이 되고 파괴가 되는 일이 빈번하다. 도심에서 고폭발성 무기가 사용되며 주택과 학교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기도 한다. 구호활동가와 의료진도 적극적인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이들의 피해가 컸던 2024년을 의료진과 인도주의 활동가들에게 가장 잔인한 해였다고 평가한다.
김형은 공보관은 “적십자사나 적신월사 활동가들은 방탄조끼가 아니라 인도주의 활동가라는 표식이 된 조끼를 입고, 방탄이 되지 않는 구급차를 타고 일한다. 원래 그 표식을 보면 공격을 멈추고 보호해야 하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런 표식을 단 현장에서 더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 내 적신월사 직원들도 구호 현장에서 부상하거나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구호선단 나포
전시와 별개로 ‘전쟁의 선’을 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활동가를 태우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 구호 선단이 불법적으로 나포된 게 대표적이다. 우리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5월 19일 김동현 활동가가 탑승한 키리아코스 X호가 키프로스 인근 지중해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나포됐고, 김아현씨(활동명 해초)와 한국계 미국인 조너선 빅토르 리(활동명 승준)가 탑승한 리나 알 나불시호도 가자지구 인근 해상에서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나포 지점은 가자 해안에서 수백㎞ 떨어진 공해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지난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 영해냐”, “교전하면 제3국 선박을 나포하고 잡아가도 되냐”고 따져 물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2024년 11월 전쟁범죄·반인도범죄 혐의로 발부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체포영장의 집행 여부까지 “판단해보자”고 했다. 외국 정상을 ‘전범’으로 지칭해 외교적 파장이 예상되나 이 대통령의 발언 하루 만에 이스라엘 정부가 한국 활동가들을 구금 시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석방해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다만 국제법적 정당성은 따져볼 지점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종철 변호사는 “이스라엘의 해상봉쇄 자체가 불법이라 그 이후 행위도 전부 불법”이라면서 “봉쇄가 전쟁 수행 방법으로 정당하려면 민간인을 굶주리게 할 목적이어선 안 되고, 봉쇄로 얻는 군사적 이익과 민간인 피해를 비교 형량해 민간인 피해가 더 크면 적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봉쇄가 두 기준을 모두 어겼다고 본다. 그는 우리 외교부가 활동가의 여권을 무효로 한 조치에 대해서도 “우리가 비준한 자유권 규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해상봉쇄가 합법적인 요건을 가졌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심상민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해상이라면 결국 전쟁법상 해상봉쇄에 해당하는 얘기인데, 적법 요건이 충족됐다면 봉쇄를 회피하려는 선박을 공해에서 나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해상에서 제3국 선박을 나포한 행위는 적법하지 않다는 취지의 대통령 발언은 사실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해전법 관습규범을 정리한 1994년 산레모 매뉴얼에 따르면 합법적 봉쇄는 크게 다섯 가지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봉쇄는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하고, 모든 교전 당사국과 중립국에 통고해야 한다. 봉쇄의 개시 시점과 지속 기간, 위치, 범위를 명시해야 한다. 둘째, 실효성을 갖춰야 한다. 선언만 해놓고 실제로 봉쇄선을 유지할 군사력이 없는 이른바 ‘종이봉쇄’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셋째, 봉쇄는 모든 국가의 선박에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특정 국가 선박만 통과시키면 봉쇄의 법적 지위를 상실한다. 넷째, 봉쇄가 중립국의 항구나 연안으로의 접근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 다섯째, 인도주의적 제약이다. 봉쇄는 민간 주민을 기아 상태에 빠뜨리거나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를 박탈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거나, 민간 주민에게 예상되는 피해가 봉쇄로 얻는 구체적·직접적 군사적 이익보다 과도한 경우 위법이다. 민간 주민에게 식량·생필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경우, 봉쇄국은 인도적 구호물자의 자유 통과를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 연구위원은 “이런 조건을 충족했다고 전제하면 해상봉쇄는 적어도 전쟁법상 합법으로 봐야 한다”면서 “다만 봉쇄당한 지역으로의 의료품이나 인도적 지원을 막으면 안 되는데 구호 선단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일부는 인도적 목적으로 출발한 정황이 있어 그 조건에 이스라엘 당국이 저촉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봉쇄는 전통적으로 적대 국가 사이의 교전권에서 발전했는데,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가자지구 점령국이다. 국제법상 점령국은 점령지 주민에게 식량·의료품·전기·연료·정수 펌프를 공급할 의무가 있고, 직접 공급할 수 없다면 인도적 지원의 통과를 허용해야 한다. 그 대신 오히려 봉쇄를 부가한 건 점령국의 의무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공보관은 “인도주의 기구는 봉쇄가 구호활동에 미치는 악영향을 늘 강조한다”면서 “아프리카 등 일부 취약국은 의료 물품과 생존 필수품을 외부 공급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항로가 막히면 곧바로 인도적 위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한 해상 봉쇄가 성립하려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국제법적으로 ‘교전 당사자’여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보는 순간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한 행동이 전부 제네바협약 위반이 된다. 해상 봉쇄라는 ‘교전국의 권리’는 행사하면서 그 전제인 ‘하마스의 교전 당사자 지위’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에 빠졌다는 뜻이다.
이란 침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국제인도법과 전쟁법의 원칙도 무너뜨렸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과 레바논의 발전소와 교량, 석유 정제 시설 등을 공격했다. 이는 이란과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무장세력 하마스도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민간 시설이 일부 군사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구별의 원칙에 따라 확실하게 군사적인 이득을 제공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공격할 수 있다. 그것이 없는 한 이중 용도 시설은 민간 시설로 봐야 하고, 이를 공격하겠다는 건 사실상 국제법 위반을 자행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으나 민간 시설 공격을 공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봤다. 심 연구위원은 “미국은 ‘선제적 자위권론’을 내세워 임박한 위협이 있을 때 선제 타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데, 국제법 학자들의 중론은 그 위협은 어디까지나 ‘무력 공격의 위협’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핵을 개발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수개월 내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곧 무력 공격과 동일시 해 선제공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했을 때, 유엔 안보리는 결의 487호로 그 행위가 유엔 헌장에 합치되지 않는 위법한 무력행사라고 선언했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침략의 정의를 밝힌 유엔 총회 결의 제3314호를 예로 들어 “유엔 헌장에 합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력을 사용해 타국의 영토 보존과 주권을 침해하는 건 침략이다”면서 “레바논 침공이나 가자지구 점령, 이란 공습까지 이스라엘의 행동은 침략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 무력행사 자체가 침략이라는 점에서 미국 역시 같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심 연구위원은 “안보리가 정치적 마비 상태라 효과적 해결책을 못 내놓고, 국제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이 오히려 위반을 자행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적어도 트럼프 정부 동안 국제법 준수에 관한 기대를 많이 낮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법 위반이 수시로 벌어지지만, 그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평화와 안보 분야가 아닌 국제표준, 지식재산권 등에 관한 국제법은 여전히 잘 준수되고 있다. 국제법을 어긴 나라들이 그 법을 부정하기보다 정당성을 강조하며 ‘변명’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국제법의 힘을 보여주는 면이기도 하다.
지난 2월 28일 미군이 이란 미나브에 있는 여자 초등학교를 폭격해 최소 175명의 학생과 선생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미군은 폭격을 당한 학교가 이란의 순항미사일기지 안에 있었다고 밝혔다. 미 국방정보국(DIA)이 오래된 데이터를 사용해 공격 좌표를 설정하면서 학교를 폭격했다는 미군 책임론이 거세지자 나온 해명이다.
이기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는 ‘자위권’이라 변명하고, 미국도 미나브의 초등학교가 ‘군사 시설 안에 있었다’고 변명한다”면서 “국제법 위반은 항상 일어나지만, 국제법을 가장 잘 어기는 강대국조차 국제법을 변경하지는 못하고 그 틀 안에서 변명만 내놓는 것이 국제법의 무서운 점”이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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