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제대로 보려면 앉으라고? 프라하에서 만난 ‘엉덩이 미학’

김지은 여행플러스 기자(kim.jieun@mktour.kr) 2026. 5. 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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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어디까지 가봤니 [체코②]
모든 발걸음이 목적지 ... 걷는 여행지 프라하
진짜 프라하는 엉덩이를 붙였을 때 시작된다

프라하는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목적지인 곳이다. 특정한 랜드마크를 찾아가지 않아도 거리의 모든 풍경이 시선을 붙잡는다.

카를교 위에서 본 프라하/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단순히 예뻐서만이 아니다. 체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변국들과 달리 폭격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아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남았다. 그렇게 수 세기 전 지어진 건물들이 오늘의 프라하를 이루고 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흥미로운 건 건물 자체보다 그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이다. 한국의 올리브영 격인 세포라가 들어선 건물은 한때 프란츠 카프카가 일하던 보험 회사였다. 최신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은 100년 전에도 영화관이었고, 루체르나 궁전의 순환식 엘리베이터 역시 여전히 작동 중이다. 무려 17세기에 약방으로 쓰이던 자리에는 현재도 약국이 운영되고 있다.
100년 전에도 영화관이었던 루체르나 영화관에서 한 관람객이 표를 구매하고 있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프라하를 단순히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도시의 시간은 박제돼 있지 않다. 역사와 문학, 예술, 현대의 일상이 한 건물 안에서 동시에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프라하는 잘 알고 걸을수록 더 재밌는 도시가 된다. 시내 워킹투어가 유독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라하의 건물/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그 대표적인 것이 건축 투어다. 가이드가 두세 걸음마다 멈춰 건물을 가리킨다. 고딕과 바로크, 아르누보와 기능주의, 브루탈리즘 건물이 한 도시 안에서 뒤섞인다. 몇 걸음만 옮겨도 시대가 바뀐다.

​작년 10월 개관한 디지털 아트 전시관에서 가이드는 “이 건물은 1886년에 지어졌고, 처음에는 시장과 식료품점으로 사용했다. 이후 도시가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지금의 전시 공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프라하의 워킹투어는 장소보다 시간을 걷는 경험에 가깝다.

프라하의 천문시계/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카를교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투어의 주제도 다양하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천문시계를 보고 카를교를 걸으며 중세 종교와 보헤미아 역사에 대해 배우는 역사 투어나 체코를 대표하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을 따라가는 문학 투어도 인기다.

​카프카 투어 중 들린 유대인 지구의 건물 앞에서 누군가 말했다. “옛날에는 여성이 예배를 드릴 수 없어서 저 계단으로 올라가 창문 틈으로 몰래 예배를 봤대요.”

과거 여성들은 몰래 예배를 보기 위해 이 높은 계단을 올랐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설명을 듣는 순간 텅 빈 계단 위로 검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프라하에 새겨진 오래된 이야기가 걷는 동안 살아난다.
리에그로비 사디 공원에 앉아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반면 지금의 프라하는 엉덩이를 붙였을 때 시작된다.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더 봐야 하는 여행자에게는 청천벽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멈춰 앉아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여행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프라하의 모습이다.

​프라하 곳곳에는 언덕 위에 위치한 공원이 많다. 이 공원들은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되어준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15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리에그로비 사디가 대표적이다. 일과를 마친 현지인들은 자주 이곳으로 향한다. 와인병과 빵을 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앞질러 간다.

리에그로비 사디 공원에 앉아 프라하 시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아름답다. 한번 자리를 잡고 앉은 이들은 해가 지고 도시에 불이 켜져도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비탈진 경사 잔디밭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맨 앞자리는 사치다. 사람들의 뒷모습까지 풍경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순간 공원은 야외 영화관이, 눈앞의 세상은 거대한 스크린이 된다.

날이 흐려 노을은 못 봤지만 아쉽지 않았다. 야경은 흐린 날에도 맑은 날에도 공평하므로. 저 멀리 프라하성의 불이 반짝 켜진다. 비셰흐라드나 레트나 공원도 머물기 좋은 언덕 위 공원이다.

블타바 강변의 한 비어가든/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블타바 강을 누리는 최고의 방법 또한 ‘앉기’다. 현지 교민의 추천을 받고 찾아간 차파들로 써머 테라스는 카를교 인근 블타바강 강변에 자리한 비어가든이다. 강과 거의 맞닿아 있어 멀리서 보면 작은 해변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곳을 추천해 준 김 씨는 “프라하 시민들은 큰 도파민보다는 날씨처럼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들은 비어가든에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맥주를 들고 햇빛을 맞으며 의자에 한껏 몸을 기대거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뿐이다. 이따금 지나가는 보트 탑승객에게 손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니 버스킹이 열려 선율을 더한다.

비어가든에서 본 풍경/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전망도 훌륭하다. 위에서는 볼 수 없는 구도에서 카를교와 프라하 성을 한눈에 담을 수 있고, 블타바 강에 비친 풍경까지 더해진다.
나플라브카 일대 제방을 개조한 카페/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나플라브카 일대 제방을 개조한 카페/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블타바 강을 이색적으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나플라브카 일대다. 댄싱하우스 근처 강변 제방 안벽에는 거대한 원형 유리 구조물이 연달아 박혀 있다. 심지어 중심축을 따라 회전하며 열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 공간은 과거 얼음을 저장하던 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일부는 카페로, 일부는 바와 갤러리로 활용된다. 제방 안쪽에서도 햇빛을 포기할 수 없어 거대한 원형 창을 만들었고 그 덕에 낮에도 노을 질 때에도 빛이 안쪽까지 깊게 스며든다.

​과거의 기능을 지우지 않고 재활용한 방식은 시간을 대하는 이 도시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리 렌즈 안쪽에 앉아 그 태도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카페 안쪽에서 바라보는 블타바 강 풍경/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앉는다는 것은 머무른다는 것. 이는 미술관의 작품 앞에 의자가 놓여있는 이유와 같다. 최소한의 힘마저 내려놓고 눈앞의 작품에만 집중할 때, 서 있을 땐 미처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프라하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앉아 들여다볼 때만 나타나는 모습이 있다. 수 세기 전 지어진 건물 사이에서, 몇백 년이 흘러도 회자될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땅 위에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도시를 느끼게 된다.

프라하(체코)=김지은 여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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