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스타벅스... 이번엔 '차원' 다른 이유
정용진 회장 사과·대표 해임에도 '불신' 고조
스타벅스 불매 움직임, 신세계 계열 확산 촉각
정치권까지 가세…유통업계 긴장 최고조
[지데일리] 광주의 가슴 아픈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커피 브랜드의 할인 행사 문구 하나가 소비자 감정을 폭발시켰고, 결국 국내 최대 유통그룹 총수까지 직접 고개를 숙이는 상황으로 번졌다.

이번 사태가 유독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과 시민 희생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기억된다.
특히 올해는 5·18 46주년을 맞은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감정은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마케팅 문구가 특정 역사적 기억을 연상시키는 순간, 소비자들은 이를 우연이 아닌 감수성 부재의 결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손정현 SCK컴퍼니 대표 해임을 지시했고, 직접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정 회장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이라고 인정하며 그룹 내부의 역사 인식 부족 문제를 언급했다. 또한 행사 기획과 승인 과정 전반을 조사해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총수가 직접 나선 배경에 대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는 이번 논란이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과거 ‘멸공’ 발언으로 정치·이념 논란의 중심에 선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소비자 불매 움직임과 정치권 비판이 이어졌고, 그룹 이미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번 사건 역시 특정 정치 성향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룹 차원의 위기관리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스타벅스 문제가 아니라 신세계 브랜드 전체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비자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스타벅스 불매 인증 게시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은 이마트·신세계백화점 등 그룹 계열사 이용을 중단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과거 스타벅스는 리콜 사태, 증정품 품질 논란, 유해물질 검출 의혹 등 여러 악재 속에서도 강한 브랜드 충성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제품 품질이나 서비스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역사 인식이라는 사회적 가치 문제가 결합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품질보다 기업의 태도와 철학을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고, 기업 역시 사회적 감수성을 핵심 경쟁력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이마트 주가는 논란 직후 하루 만에 7% 넘게 하락하며 투자심리 위축을 드러냈다.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는 이마트 연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자회사다. 올해 1분기에도 7%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며 그룹 실적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불매 운동이 장기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여름 성수기가 포함된 2·3분기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거론된다.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곧 소비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권 변수도 부담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유통업계가 추진해온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 이미지 논란이 정책 환경까지 흔드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유통업계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정책 신뢰와 연결되는 시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번 논란은 한국 소비시장의 변화된 흐름을 다시 보여준다는 평가다. 소비자들은 이제 상품만 구매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함께 소비한다. 기업이 역사와 사회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소비 선택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스타벅스와 신세계그룹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단기 실적뿐 아니라 장기 브랜드 신뢰까지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이 던진 물음은 결국 하나다. 기업은 과연 사회적 기억 앞에서 얼마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