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안에 세계 반도체 시설 50%가 美 온다니 [트럼프 스톡커]
트럼프 “퇴임 때 칩 산업 50% 미국 있을 것”
안보 지렛대로 대만 압박...품목 관세 무기화
반도체 100% 예고...마이크론 300조 투자
美무역대표 “당장은 아니라도 적시에 부과”
‘中 AI 대결’ 공급망 독점 야심...수요도 폭증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 반도체의 50%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2~3년 안에 미국으로 옮기겠다며 관련 관세를 언젠가는 부과하겠다고 재차 큰소리쳤다. 인공지능(AI) 투자가 글로벌 경제 성장의 최대 원동력이 되는 상황에서 이를 떠받치는 반도체 공급망의 자국 중심 재편 야욕을 또 다시 내비친 셈이다. 물론 메모리 가격 급등의 부담을 안은 자국 AI 업계의 입장을 고려해 반도체 관세 부과 시점을 아직 확정하지는 않았다. 산업·정치·외교적 흐름을 살피다가 관세를 적시에 무기화해 한국·대만의 신규 반도체 제조시설을 미국으로 더 끌어들이겠다는 복안이다. 반도체 산업이 초호황 주기(슈퍼 사이클)를 맞은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인 무역 정책이 올해 우리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에 추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1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은 발언이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성과 얘기를 하다가 돌연 “이전 대통령들이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이 발전할 수 있었다”며 “대만은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수년 동안 훔쳤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만에 있는 반도체 제조사들이 모두 미국으로 오면 좋겠다”며 “임기를 마칠 때쯤 세계 반도체 산업의 40∼50%가 미국에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9년 1월 20일까지이고, 다음 대선일은 2028년 11월 7일이다. 퇴임 때까지는 2년 8개월이 남았다.
대만은 앞서 올 1월 15일 미국에 25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는 내용의 무역 합의를 맺은 바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합의 시점이 상당히 늦었음에도, 대미 상호관세율을 고작 20%에서 15%로 낮추는 조건으로는 상당히 가혹한 금액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대만 기업을 상대로 해당 시설이 건설되는 동안 생산능력의 2.5배까지 관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또 2.5배를 초과하는 수입분에도 우대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완공한 대만 기업의 경우는 생산능력의 1.5배까지 관세 없이도 수입을 할 수 있게끔 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여섯 곳을 완공·증설하기로 한 데 이어 무역협정 이후 공장을 다섯 곳이나 더 짓기로 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무역협정 체결 날 CNBC 인터뷰에서 “대만의 투자 규모는 직접 투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보증까지 합쳐 총 5000억 달러”라며 “수백 개 기업과 함께 대만 전체 반도체 공급망과 생산량의 40%를 미국으로 가져오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황런자오(웬들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같은 날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급 첨단 신규 공장의 30% 정도는 미국에 세울 것”이라고 동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대만의 이런 처지를 자국의 이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달 1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관련 언급도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중단·축소 검토와 중국의 침공 가능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만에 대한 추가 무기 판매를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며 “승인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나는 승인을 일시 보류하고 있고, 이는 중국에 달려 있다”며 “내가 재임하는 동안에는 중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없을 때는 대만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추정했다. 미국은 앞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2년 대만에 대해 ‘무기를 팔 때 중국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은 ‘6대 보장’을 발표한 바 있다. 사실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 이후 대만이 대미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지 않으면 44년 된 외교 원칙도 흔들 수 있다고 암시한 것이다.
압박의 본질은 안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에 대미 반도체 투자를 압박하는 표면적 명분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 관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직후부터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반도체에 100% 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내놓았다. 올 1월 14일에는 미국 상무부가 그 1단계 조치로 25%의 관세를 반도체에 부과하기 시작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부과, 수입 제한 등 조처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반도체 외에도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모두 이 조항을 근거로 삼는다.
이와 관련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 버지니아주의 마이크론 메모리반도체 공장 증설 행사에서 “반도체에 대한 전면적인 품목 관세가 당장은 없겠지만, 적절한 시점에 부과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그리어 대표는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며 “이 같은 시설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반도체 관세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수준으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어 대표는 또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산업의 오프쇼어링(자국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봤다”면서 “리쇼어링(해외 사업장의 자국 복귀) 단계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에 일정 규모의 수입을 허용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동맹국들은 반도체 호황 국면에서 관세를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무기로서 이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13~15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수행단에 합류했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계속되는 양국의 대결 구도 속에 결국 빈손으로 귀국했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가 있던 20일 CNBC 인터뷰에서 “우리가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기에 현지 반도체 기업 생태계가 잘 돌아가고 있다”며 “‘H200’의 대(對)중국 수출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자포자기했다. 이어 “화웨이는 올해 기록적인 한 해를 보낸 뒤 내년에도 놀라운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사실상 시장을 그들에게 내줬다”고 아쉬워했다.
미중 대결 속에 미국 기업들의 자국 투자 규모도 점차 느는 추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와 함께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삼분하는 마이크론도 이날 미국 내 총 투자 규모를 기존보다 300억 달러 더 많은 2000억 달러(약 300조 원)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이미 1월 16일부터 뉴욕주에 1000억 달러(약 150조 원)를 들여 미국 역대 최대 규모의 반도체 제조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모바일 시대 때부터 적응하지 못해 하향세를 겪었던 인텔도 지난해 8월 트럼프 행정부가 지분 9.9%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이후 기사회생했다. AI 칩 수요가 엔비디아 중심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중앙처리장치(CPU)까지 확산함에 따라 올 1분기에는 ‘깜짝 실적’도 내놓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인텔과 손잡고 AI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인 ‘테라팹(초대형 반도체 생산시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폭증하는 AI 수요로 반도체 부문의 경제성이 급격히 좋아지는 점도 트럼프 행정부가 이 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세계적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크리스토프 푸케 CEO는 19일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한 반도체 기술 행사에서 “AI 수요가 너무 강하게 몰려오고 있어 상당 기간 공급 부족 시장이 지속될 것”이라며 “거대 기술기업(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수천억 달러로 확대되면서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푸케 CEO는 또 “머스크 CEO의 테라팹과 ‘스타링크’ 위성 사업이 수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것”이라며 “모든 AI 기기와 로봇, 자율주행차가 결국 데이터에 연결돼야 하고 그 연결이 엄청난 칩 수요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도 22일 공장 증설 행사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올해 이후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재차 전망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 재건 야심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절반을 미국으로 들이겠다는 계획이 결국 허언으로 끝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국의 인건비와 기술 기반에도 한계는 뚜렷하다. 문제는 미국 무역 정책의 방향성이다. 미국이 반도체 관세 등을 통해 자국 중심의 무역 질서를 계속 강제할수록 한국 경제와 글로벌 시장은 다시 한번 혼돈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은 현재 대미 투자 프로젝트와 관련해 미국 행정부와 사전 협의 절차를 밟고 있다. 장중 반도체 관련 소식이 많았던 22일 뉴욕 증시에서는 엔비디아(-1.90%), 구글 모회사 알파벳(-1.21%), 브로드컴(-0.10%), 마이크론(-1.46%), 샌디스크(-4.12%) 등 하락주와 퀄컴(11.60%), AMD(3.99%), ARM(2.78%), 인텔(1.13%) 등 상승주가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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