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Z 신파극(新派劇)’이 될 수 있을까… 화류비련극 ‘홍도’

'신파극(新派劇)'. 근대 개혁이 한창이던 일본에서 기성 연극인 '가부키(구극)'와 구분해 서양식 연극을 지칭한 말로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성행한 장르다.
나라 잃은 설움이 만연한 시기에 들어와 당시 민중의 현실과 애환을 그려내며 인기를 끌었지만, 현대의 '막장 드라마'가 그러하듯 과한 감성 짜내기와 만들어낸 억지 비극 등으로 점차 외면받기 시작했고, 해방 후 영화와 드라마 등이 보급되며 빠른 속도로 쇠퇴했다.
극공작소 마방진 창단 20주년 기념작 '홍도'는 고선웅 연출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임선규 作, 1936년)'를 각색해 지난 2014년 초연한 작품이다.
지난달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국 순회공연을 시작한 '홍도'가 지난 22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에서 무대에 올랐다.
인터미션 없는 110분의 무대는 중간에 무대를 교체하지도, 특별한 효과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화이트톤의 무대는 모든 시간과 장소를 품으며 오직 배우들의 연기에만 집중하게 한다. 홍도가 시집가며 기생일을 그만둔 후 공중의 붉은 등이 '사람 인(人)'자 지붕으로 바뀌는 것 외에는 변화가 없다.
배우들의 등장과 동선, 배치 등 모든 요소가 극적이다. 무대 가운데의 구조물을 중심으로 대칭과 비대칭을 오가며 배우들이 자리하며, 1930년대 말투가 온전한 대사는 극적인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작품에는 뻔한 신파극의 요소를 2026년에 다시 꺼내기 위해서는 '연출'과 '연기'에 승부를 걸 수 밖에 없었던 고선웅의 고민이 짙게 배어있다.
부모를 여읜 가난한 남매, 오빠를 공부시키기 위해 기생이 된 여동생, 오빠의 부잣집 동창과 사랑에 빠지고 이어지는 집안의 반대, 남편이 유학을 떠난 뒤 시작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괴롭힘, 그리고 음모에 당해 누명을 쓰고 쫓겨나는 주인공까지.
'MZ세대'는 고사하고 환갑을 훌쩍 넘긴 노년층이 듣기에도 신물 나는 이 시놉시스를 지금의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연출과 연기가 필요했고, 고 연출은 이를 정면 돌파했다.
착하고 의로운 남매, 시기 질투심에 눈이 먼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집안 머슴 그리고 멍청하고 답답한 남편. 이 모든 게 합쳐져 칼에 맞아 죽을 사람은 칼에 맞아 죽고, 감옥에 갈 사람은 감옥에 갔다는 내용은 90년 전의 작품과 같다.
고 연출은 원작의 흐름을 숨기거나 비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한편, 흰 도화지 같은 무대를 만들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원색의 배우들로 작품을 채웠다.
배우들은 요즘 연극 무대에서 기본값이 돼버린 배경음악과 마이크도 없이 노래와 춤으로 무대를 채우고, 쩌렁쩌렁한 발성과 올곧은 발음으로 공간을 메운다.
그렇게 택한 정공법은 조금만 지루해도 집중이 깨질 수 있는 원작의 시놉시스를 새롭게 탄생시켰고, 관객들은 몰입과 탄성으로 반응했다.
이날 홍도 역을 맡은 예지원은 신파 특유의 억울하고, 처절한 모습이 아닌 질기고 강한 인물을 연기했다. 오빠를 위한 헌신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홍도는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온갖 수모와 치욕을 받지만, 예지원은 이 모든 상황을 담담하고 묵묵하게 버텨내며 지나 보낸다.
광호 부 역할의 정보석도 눈에 띈다. 답답한 줄거리의 한 줄기 빛이자, 관객의 심정을 대변하고 해소하는 인물로 큰 비중 없이도 이날 관객의 가장 많은 박수와 환호를 이끌었다.
110분의 공연 중 시작부터 100분까지의 내용이 원작에 대한 헌사였다면, 마지막 10분은 지금 이 시대에 신파극을 보러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 대한 찬사다.
사람을 죽인 죄로 경찰인 오빠 손에 이끌려 수갑을 차고 무대를 떠나는 내용은 원작과 같지만, 작품의 모든 등장 인물이 장치가 돼 홍도의 마지막 길에 붉은 꽃을 흩뿌려주며 경외하는 모습은 2026년 다시 태어난 '홍도'를 함축하는 장면이다.
사필귀정과 정의구현에 대한 갈증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할까. 100년이 지난 미래에도 환호 받을 수 있을까. '홍도'는 이에 대한 의문과 실험이다.
'홍도'는 23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2회차 무대를 마치고, 경기도에서는 다음 달 19~20일 안성맞춤아트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이준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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