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뉴스타파] 전력 오판 15년, 감춰진 청구서 : '개미지옥'이 된 발전소

조원일 2026. 5. 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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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실패가 낳은 비극, 멈춰 선 석탄 발전소 

대한민국의 에너지 대계인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2년마다, 15년 뒤의 미래를 예측해 수조 원대 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는 국가 전력 운영의 핵심 설계도다. 정부는 늘 '전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공포를 앞세워 대형 화석연료 발전소들을 끊임없이 지어 올렸다. 그러나 다큐 뉴스타파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수도권 전력 공급과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장밋빛 청사진 속에 지어진 동해안의 석탄 발전소인 강릉에코파워와 삼척블루파워. 수조 원이 투입된 이 거대한 민간 석탄 발전소들은 가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송전망 부족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발전소 건설 당시 정부가 경고했던 전력 부족사태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건설 붐이 꺼진 후 지역 상권은 썰물처럼 무너졌고, 천둥 같은 굉음과 새까만 석탄 분진 만이 남아 주민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지역 경제가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이 악순환을 주민들은 ‘개미지옥’이라 부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멈춰 선 이 석탄 발전소들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적자, 이른바 ‘미정산금’의 실체다. 송전망 부족으로 발전기를 돌리지 못해도, 전력 당국은 민간 발전사들의 적자는 물론 고정비와 이윤까지 보전해 주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매년 수천억 원 규모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이 '미정산금'은, 결국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전기요금 청구서’에 스며들어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게 된다. 

석탄의 빈자리를 채우는 가스(LNG) 발전의 덫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노후 석탄발전소 28기를 폐지하는 대신, 그 자리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로 1대1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전환의 길목에서 또 다른 거대 화석연료 설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현장이 바로 전남 여수 석유화학 국가산업단지다. 이곳에는 전기본을 통해 확정된 2기의 LNG 발전소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산업용 열병합 발전소의 규모를 뛰어넘는 500MW급 거대 민간 LNG 발전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장기 침체로 공장 가동이 줄어들고 있지만, 발전소는 자꾸 늘어만 간다.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대형 LNG 발전소 건설이 불러올 참사를 강력히 경고한다. 부풀려진 최대 전력 수요(피크) 수치만 들이밀며 설비를 과잉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데이터조차 2036년경 전국 LNG 발전소의 연간 이용률이 10%대로 곤두박질칠 것을 자인하고 있다. 1년 365일 중 330일 가동을 멈춰야 할 거대 화석연료 발전기를 짓기 위해 수십조 원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일단 발전소를 짓기만 하면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는 발전 산업계의 낡은 불문율과 그 관성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현재 이재명 정부가 준비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향해 전문가들의 짙은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대전환을 약속했던 새 정부조차, 앞선 정부가 억지로 끼워 맞춘 신규 대형 원전 건설과 무분별한 LNG 전환 기조를 사실상 계승하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밀실의 계획,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큐 뉴스타파는 그 원인을 소수의 관료와 학자들이 주도하는 '밀실 행정'에서 찾는다.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 회의실 안에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과장된 숫자와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얽혀 대한민국의 미래를 재단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전기'를 외치며 산업 발전을 핑계 삼아 대형 발전소들을 맹목적으로 짓고 있다. 발전소 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학계 전문가들이 가리키는 메시지는 하나다. ‘정부의 계획이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이제는 낡은 관성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밀실에서 만들어진 숫자에 계속 끌려다닐 것인가, 아니면 실패한 계획이 낳은 현실의 비용을 직시할 것인가. 이 거대한 위험과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결국 평범한 우리 국민들이다. 이제는 빗나간 예측을 멈춰 세우고, 이 비극적인 오판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매섭게 따져 물어야 할 때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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