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걷어차고, 바이든이 못살렸다…美가 이란에 뿌린 ‘핵 문턱 국가’의 씨앗 [디브리핑]

정목희 2026. 5. 23. 11: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2018년 합의 파기후 날개 단 이란 핵 개발
“제대로 작동하던 협상 美가 탈퇴”…바이든도 복원 실패
이미 핵무기 10기 이상 제조 가능
이란에 생존 수단 된 핵…때로 협상 카드로도 활용
이란의 나탄즈 핵 시설을 촬영한 항공 사진. [A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북한은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아시아 순방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취재진에 한 말이다. 어쩌면 이란이 자국 명칭을 대입해 가장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인정 받는 것. 그만큼 이란에는 현재가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남은 ‘시련기‘이고, 미국에는 이란을 시급히 막아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트럼프가 합의 걷어찬 사이 핵 능력 쑥쑥 키운 이란

이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과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 10년간 구형 1세대 원심분리기만 사용해 우라늄을 농축하고 15년간은 무기화 할 수 있는 수준의 우라늄 농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각각 10년, 15년이라는 일몰조항이 있어,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면 재합의를 통해 이를 갱신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를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사실상 이란의 핵 개발 속도를 높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9일(현지시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를 인용해 이란이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대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축적했고,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거치며 핵 개발 속도를 더욱 높였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이란과의 핵 합의는 무의미하다며 이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로 돌아섰다. 이에 이란은 빠른 속도로 핵을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라늄 농축도를 4.5%까지 끌어올렸고, 핵 합의에서 금지됐던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서도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이후 포르도 시설 확장과 지하 원심분리기 생산시설 건설까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 퇴임 시점에는 이미 약 3t의 농축 핵물질이 축적된 상태였다. 이란은 현재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만으로도 핵 무기 10기 이상을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그 뒤를 이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핵 합의 복원과 더 강력한 후속 협정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란은 2022년 미국 측 복원안을 거부했고, 그 사이 핵 프로그램은 오히려 더 확대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이란과의 핵 협정에서 탈퇴한다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하고, 이를 취재진에 들어 보였다. [AFP]
‘핵 문턱 국가’ 된 이란…핵은 “체제 생존 수단”

이란 지도부는 오랫동안 핵무기 개발 의도를 부인해 왔다. 우라늄 농축 등의 움직임은 에너지 등 평화적 이용을 위한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IAEA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란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기술적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고 보고 있다. 현재 이란은 약 10t 규모의 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60%까지 농축된 우라늄은 약 440kg이다. 여기에 20% 농축 우라늄도 약 200kg 상당이 있다.

핵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천연 우라늄을 20~60% 수준까지 농축하는 과정인데, 이란은 이미 이 단계를 상당 부분 넘어선 상태다. 반면 60%에서 핵무기급인 90% 수준으로 추가 농축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현재 보유한 물질을 활용할 경우 수주 내 무기급 우라늄 생산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란이 이미 ‘핵 문턱 국가(threshold state)’ 단계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란은 핵을 협상 카드가 아니라 체제 생존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압박 속에서도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아직 공식적인 핵 보유 선언이나 핵실험에 나서지 않는 것은 전략적 계산 때문이라 분석했다. 실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개입 명분이 훨씬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란은 언제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핵 역량을 인정받아 체제 안전 보장의 기반이 될 수 있고, 전쟁 등 분쟁 상황에서는 협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전 이란 대통령의 모습. 바이든 집권 후 양국은 핵 협정 복원을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AFP]
막을 수 있었던 이란 핵 개발, 美가 길 내줬다

수 주 내에라도 핵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이란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오바마 행정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대량살상무기 전문가로 활동했던 게리 세이모어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첫 번째 실수는 트럼프가 제대로 작동하던 JCPOA를 탈퇴한 것이고, 두 번째 실수는 이란이 바이든 행정부의 복원 제안을 거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바이든 행정부 역시 초기에 더 강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며 “결국 양측 모두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핵 합의 협상과 바이든 행정부 시절 복원 협상에 참여했던 리처드 네퓨 전 미국 협상대표는 “트럼프가 합의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이란 핵 프로그램이 지금처럼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략은 사실상 핵 합의 조건을 다시 협상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란이 거부했을 때 이를 억제할 현실적 대안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란이 핵 문턱 국가라는 위치를 고수하며 협상에 임하는 상황이다 보니,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는 양측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양국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이란이 보유 중인 고농축 우라늄의 반출을 두고 충돌한 바 있다. 이란은 이날 고농축 우라늄을 해외로 반출해서는 안된다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미국)가 그것(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할 것”이라며 “아마도 파괴하겠지만 이란이 계속 보유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