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갑질보다 더한 ‘계급질’의 나라가 온다

괜찮은 영화제작자인 고혜진(강말금 분)이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무죄라고 믿는 최필림 대표에 대해 치를 떨며 하는 말이다. ‘갑질’ 아닌 ‘계급질’이라는 대사에 주목하시라.

계급질은 다르다. 하늘의 위임이라도 받은 듯 피지배자 위에 함부로 군림하는 것이 계급질이다. ‘모자무싸’ 속 용감무쌍한 고혜진처럼 깨질 각오 없으면, 맞서기 어렵다.
요새 누가 감히 계급질을 하느냐고? 무슨 건국세력도 아니면서 1980년대 대학 다니며 민주화운동했다는 이유만으로(한심한 야당 만났다는 행운과 더불어)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택군(擇君)부터 이번 6·3 선거까지, 임기 마치면 근 30년이나 계급질을 계속하겠다는 86그룹을 두고 하는 소리다.

그랬던 그가 정무수석을 거쳐 강원도지사 출마라니? 다음 세대에 기회를 준다는 건 빈말이었단 말인가?
강원도를 ‘양보’한 같은 86그룹 이광재가 추미애의 경기도지사 출마로 공석이 된 경기 하남갑에 전략공천된 것도 가볍게 보기 어렵다. 선거캠프 개소식에 등장한 우상호는 “지지율 조사에서 이광재가 저보다 앞섰는데도 도지사 자리를 양보했다”며 이광재 지지를 호소했다.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 그럼 이광재는 왜 양보했단 말인가?

그는 석달 후 돌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6월 패하는 기행을 자행하기도 했다(덕분에 송영길의 지역구를 넘겨받은 이재명 대통령이 보궐선거에서, 그리고 작년 대선에서 승리했음은 모두가 아는 바다).
‘돈봉투 살포’ 의혹 등 혐의로 재판받던 송영길은 올 초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음), 검찰의 상고포기로 무죄가 확정됐으며, 이번 보선에서 인천 연수갑에 전략공천됐다. 대한민국 지역구가, 지역주민이, 86그룹 맘대로 챙겨주고 챙겨 받는 전략상품이라도 된단 말인가.

우상호는 군에서 제대한 1987년 초 연세대 학생운동 지하지도부 소속 후배가 찾아와 총학생회장 선거에 회장 후보로 출마할 것을 권유하더라고 ‘민주당 1999~2024’ 책에 썼다(지하지도부가 학생회장을 찍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길). “1980년대 학생운동권 지도부 출신 청년 일부는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진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해 말 그들이 출범시킨 정치단체가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이다. 참여회원 중 정치권에 정착한 사람이 무려 37명이다(책에선 38명이라고 했으나 아무리 세어봐도 37명).

여기서 단연 눈에 띠는 이름이 김경수와 이화영, 그리고 정원오다. 이유는 좀 심란하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저지른 김경수도 그랬다. 서울대 주사파 지하조직 자민통 출신인 그는 2022년 말 ‘복권 없는 사면’ 대상으로 거론됐을 때도 ‘가석방 불원서’를 통해 “무죄를 주장해 온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건”이라며 건방을 떨었다.
선고대로라면 김경수는 향후 7년간인 2028년까지 출마할 수 없다. 그러나 2024년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고, 이번에 경남도지사 후보로 다시 공천됐다. 김경수처럼 유죄가 확정된 86그룹은 본인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계급질에도 불구하고 재판과 처벌을 피하진 못했다. 최근에 등장한 예외 사례가 송영길이다(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양보했기 때문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 후 상상초월 계급질이 등장했다.

그는 꼭 1년 전 경기도가 북한에 주기로 약속한 대북 사업비용과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통령의 방북비용 등을 쌍방울이 북한 인사에게 대납하게 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7년 8개월의 유죄가 확정된 사람이다.
4월 국정조사에서 이화영은 “뭐 (대법원) 판결이 하느님 말씀입니까?”하고 차원 높은 유들유들함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조만간 풀려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습이었다.
정원오가 구청장에서 단박에 서울시장 후보로 등극한 것도 이제야 납득된다. 막강한 86네트워크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30여 년 전 폭행 사건을 놓고 5·18 때문이었다고 해명한 것은 상당히 86스럽다. 2000년 ‘제3의 힘’의 광주 ‘새천년NHK’ 사건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 처벌받지 않는 ‘대통령계급’은 反헌법적
국정조사가 끝나자 민주당은 ‘조작기소 특검법’을 발의했다. 여기 앞장선 민주당 의원 박성준은 “시민 열 명 중 8~9명은 ‘공소취소’ 뜻을 잘 모른다”고 했다. 거의 ‘국민 개돼지’급 발언이다(궁금한 독자를 위해 밝히자면 박성준은 86그룹 아닌 아나운서 출신이다).

이 대통령은 특검법안 처리 시점 숙의 등을 당부했지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전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 김건희였듯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사법리스크인데, 대통령이 노할까봐 누구도 특검법안의 반(反)헌법성에 대해 말을 못한다는 소리가 청와대에서 새어나온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합의안 반대” DX조합원 1만명 늘자… 초기업노조 “투표 제외”
- 이스라엘 공항에 공중급유기 최소 50대…“군사력 증강 계속”
- 머스크 하고 싶은 거 다 해! 세계 시총 6위, 스페이스X가 온다[딥다이브]
- “은퇴 뒤 뭐라도 되겠지? 도전 멈추면 도태됩니다”[은퇴 레시피]
- “하늘에서 빛나는 선형 물체 봤다”… 음모론에서 검증 영역으로 옮겨온 UFO 파일
- 김선태, 유튜브 석달만에 1억 기부…“내 돈이라 약간 아깝다”
- 김규리 자택 강도, 옷-신발 전부 어두운 색…계획범죄 묻자 “죄송”
- “국민성장펀드 파격 稅혜택” 은행 판매 시작하자마자 오픈런
- ‘尹관저 이전 의혹’ 김대기·윤재순 구속…종합특검, 첫 신병 확보
- 中지도에 靑-대통령 관저 등 보안시설 무더기 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