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노봉법이 쏘아올린 공…AI·로봇 ‘올인’ 부추긴다 [biz-플러스]
인건비 리스크에 AI 도입 바람
삼성·SK, 2030 AI팹 구축 박차
현대차, 2028년 아틀라스 도입
조선·철강도 고위험 작업 대체
“노조, 채용 축소·AI 대체 빌미줘”

삼성전자(005930) 노사 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두고 노동조합의 투표를 시작했다. 투표가 가결되고 이번 성과급 보상 방식이 산업계 전반에 확산할 경우 향후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고 대신 인공지능(AI)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빌미를 주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시행까지 맞물려 인건비 압박이 거세진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사내 업무와 제조 현장에 AI와 로봇 도입을 서두르는 추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는 2030년 목표로 추진 중인 자율형 팹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통상 반도체는 정교한 공정을 요구하는 탓에 AI 도입이 까다롭다고 여겨지지만 생산 효율을 수십% 높여 메모리 공급 주도권을 쥐기 위해 양사 모두 AI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평택 1공장에 엔비디아의 피지컬(물리적) AI 플랫폼 ‘옴니버스’를 기반으로 반도체 제조 전 과정의 오차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조 프로세스 전체를 스스로 관리하는 ‘AI 기반 조율 시스템’을 확산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도 SK텔레콤·엔비디아와 협력해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2000여장 규모의 AI 인프라 ‘제조 AI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용인·청주 등 주요 팹의 AI 전환(AX)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자율형 팹 3대 기술인 오퍼레이셔널(운영) AI, 피지컬 AI, 디지털트윈을 개발 중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고 설비 유지 보수, 결함 분석 등 주요 작업의 처리 시간을 50%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월 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피지컬 AI를 주제로 열릴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회의 ‘GTC 타이베이 2026’에서도 관련 협력 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연구개발(R&D)에도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SK AX와 손잡고 도입한 ‘AI 물성 예측 시스템(AIPS)’의 정확도를 글로벌 최고 수준인 90%까지 높였다. AIPS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신소재 분석·발굴 시간을 기존 대비 75% 줄일 수 있는 솔루션이다. SK하이닉스는 또 SK텔레콤과 연계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의 반도체 연구 특화 모델을 개발 중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같은 협력을 통해 배터리 분석에 특화한 AI 모델을 연구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생산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투입 시점에 맞춰 연간 3만 대 이상의 양산 체계를 갖출 계획인데 이 중 2만 5000대 이상을 현대차(005380)와 기아 공장에 들인다.
현대차는 미국 전진기지인 메타플랜트(HMGMA)에 아틀라스를 우선 투입한 뒤 해외 거점 중심으로 투입 공장을 늘려갈 예정이다. HMGMA는 현대차가 지난해 3월 현지에 준공한 공장으로 다른 공장에 비해 가동률이 저조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크다. HMGMA의 올 1분기 가동률은 38.2%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아틀라스가 투입되면 공정 전반의 생산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아틀라스의 연간 유지 비용은 대당 14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의 인건비가 1인당 연간 1억 3000만 원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생산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아틀라스는 배터리를 교체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사실상 24시간 일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LG전자(066570)는 2030년까지 14개국 29개 공장을 AI 공장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동시에 엔비디아와 손잡고 내년 선보일 가정용 로봇 ‘클로이드’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관절) 양산도 준비 중이다.
막대한 설비와 거대한 노동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중후장대 업종에서도 AI·로봇 기반의 자동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는 고위험 현장의 인력 투입을 줄여 제조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가 전면에 내세워지고 있지만, 매년 반복되는 임금·성과급 협상 갈등이 심화할 경우 인력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인이 자동화 투자를 더욱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계는 빅데이터와 AI가 생산 공정 전체를 지휘하는 ‘지능형 조선소’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AI와 로봇 기술을 집약한 스마트 조선소 ‘FOS(Future of Shipyard)’를 2030년까지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디지털 트윈 구현을 위한 조선소 3D 모델 구축을 마치고 용접 로봇을 현장에 배치한 상태다. 향후에는 AI가 축적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력 배치부터 설비 운용까지 공정 관리 전반을 자동 제어하는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HD현대중공업은 FOS 완공 시 선박 건조 기간 30% 단축, 생산성 30% 향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스마트 야드 ‘에스야드(S-Yard)’를 중심으로 자동화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철판 플라즈마 절단·용접·도장은 물론 소조립·배관 라인까지 자동화 설비 구축을 완료했으며, 클라우드 기반 3D 통합 정보와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접목해 발주처와 검사원이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원격으로 품질 검사와 시운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작업 체계도 갖췄다.
한화오션은 AI·로봇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협동로봇’ 모델로 공정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숙련공이 도맡던 반복적·고강도 용접 작업은 협동로봇이 전담하고, 숙련공은 용접 품질 검사와 시스템 관리에 집중하는 구조다. 한화오션은 관련 설비를 지속 확충해 용접을 비롯한 핵심 기초 작업의 자동화율을 10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처럼 휴머노이드와 자율 로봇의 현장 유입이 빨라지면서 노동계의 고용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외국 인력 확대에 따른 일감 축소를 우려하던 근로자들로서는 로봇·자율화 시스템 도입이라는 새로운 불안 요소까지 더해지며 고용 위협에 대한 촉각이 한층 예민해지는 모습이다. HD현대중공업 노사가 최근 ‘K-조선 미래 항로 개척을 위한 노사 공동협의체’를 출범시킨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협의체는 로봇·AI 도입에 따른 인력 구조 변화와 노동자 배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3자 구도로 운영된다.
철강업계도 위험 감소와 작업 효율화를 명분으로 로봇·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포스코는 고열·유해가스가 발생하는 제철소 현장에 4족 보행로봇 ‘스팟’을 투입해 설비 점검을 맡기는 한편, 페르소나AI·에이딘로보틱스 등 전문업체와 협력해 코일 물류관리와 설비 점검 영역에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검증도 병행하고 있다. 현대제철 역시 밀폐 공간·가스 위험 구역을 중심으로 스팟을 운용해 유독가스 감지와 밸브 개폐를 자동화했으며, 지난해 11월부터는 당진 특수강 소형압연 공장 선재 코일 출하 라인에 ‘선재 태깅 로봇’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물류 자동화 영역도 확장하고 있다.
재계 4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이 일제히 AI·로봇 전환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노동계의 성과급 확대 요구가 겹치며 고용 구조 자체가 AI 중심으로 바뀔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AI 도입 기업의 청년 취업자 수는 챗GPT가 출시된 2022년 대비 2024년 92~93% 수준까지 떨어졌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앞으로 점점 더 사람을 고용하는 데 부정적으로 변하고 대신 AI 투자를 해서 인력을 줄이려 할 것”이라며 “최근 노조들의 성과급 논쟁이 노동 유연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노조의 성과급 요구가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고용 환경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기업이 AI 자동화를 확대해 인력을 대체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빌미를 줬다”고 말했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장현기 기자 luc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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