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자기 생각 무시당한 아이, 가면을 쓰게 돼”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은 시작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를 거치며 인간관계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성의 발달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의 친구 관계>라는 책을 통해 아동기부터 익히는 공감능력과 자기조절 능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를 만나 사회성이 발달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가정과 사회란 어떠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 아동과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진료하는 한편 학교폭력 프로그램에도 장기간 참여한 경험을 ‘사회성’이란 키워드로 묶어 책을 낸 계기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 사회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는 경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로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고, 두 번째는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다. 둘 다 사회적인 관계나 공감,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아이들을 진료하고 교육하는 경험을 통해 영유아부터 시작되는 애착이나 아동기 초기의 자기조절 능력, 공감능력 발달에 어려움이 있으면 사회성 발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와 함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친구관계 형성에 대한 방법과 의미를 잘 소개해서 학교폭력 피해를 보거나 가해자가 되는 아이들을 위한 나름의 사회적 처방전을 내놓고 싶었다.”
- 사회성이란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사회성이 좋다’는 표현을 두고 그저 말을 잘하거나, 같이 다니는 친구 무리가 많다거나, 그 무리 안에서 돋보이고 인정받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게만 보는 건 오해일 수 있다. 사실 사회성이란 자기의 감정을 읽고 언어로 잘 표현해 그 감정을 타인과 잘 소통할 수 있는지까지 포괄하는 더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그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타인과의 관계도 감정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대인관계 안에서 감정의 인식과 교류가 잘 이뤄지려면 결국 공감능력의 발달이 따라와야 한다. 감정 인식이나 공감은 아이가 부모를 모델로 해서 배우기 때문에 발달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와 감정 교류와 소통을 하면서, 그리고 부모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며 공감능력을 배운다.”
아동기 자기조절·공감능력
발달 과정서 문제 생길 경우
사회성 발달도 어려움 겪어
의견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타인과 비교 평가받는 환경
자존감의 올바른 성장 저해
3세부터 규칙·규범 배워야
소통 따뜻이, 경계는 분명히
- 책에선 사회성 발달을 위해 자존감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 자신의 감정 인식 및 조절 능력,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합쳐져서 자존감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나도 소중하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가진 독립적인 사람이며 그들과 잘 소통하려면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운다.”
-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대표적인 양육 환경을 든다면.
“먼저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양육 환경이 제공될 때를 들 수 있다. 형제든 옆집 아이든 계속 비교하거나, 또는 뭘 잘했을 때만 인정을 받고 그러지 못하면 부정적인 대우를 받을 경우가 대표적이다. 부모의 사랑은 일단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그 위에 다양한 방식이 나와야 하는데, 사랑의 표현이 어떤 조건이나 활동의 성취도에 달려 있거나 타인과 계속 비교 평가를 받는 양육 환경은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 아이의 자존감을 북돋우는 환경의 중요성이 큰 것 같다.
“아이가 표현하는 현재 마음 상태와 감정이 무시당하는 환경도 문제다. 공상을 많이 하는 연령대의 아이가 자기 생각을 얘기할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반응하거나 어린 네가 뭘 아냐는 식으로 답하는 등의 경우다. 그렇게 생각을 무시당하면 아이 입장에선 내 감정과 생각이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올바른 활동을 하는 데 제약과 한계가 있다고 연상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너무 숨기려고 하는 등 가면을 쓰는 식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 양육자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을까.
“아이가 좀 엉뚱한 얘기를 할 때 대안이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주는 게 좋다. 아이들은 일직선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나선형으로 발달한다. 상황이 안 좋거나 어떤 영향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퇴행하는 경향도 있다. 그런 성장 곡선을 이해하면 아이가 불안을 느끼거나 도피하고 싶은 원인이 있는지도 균형 있게 살필 수 있다.”
- 최근에는 아이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양육 환경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서 첫돌 지날 무렵까지는 독립을 할 수 없는 상태니 아이가 중심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 뒤 부모와 소통이 조금씩 되면서 3세 무렵부터 자기조절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되면 규칙과 규범을 따르도록 가르쳐야 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원하는 거라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자기조절의 핵심이다.”
- 사회성을 제대로 습득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로 이어질 수 있나.
“공통의 규칙을 지키는 게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한 핵심이라고 배우지 못하면 자기중심성만 강해지면서 행동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런 아이들은 오히려 자존감이 높지가 않다. 집에서는 소황제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한 발자국만 밖에 나가 유치원,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하면 좌절을 훨씬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본인이 원하는 걸 참을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라 친구·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다. 규칙을 가르칠 땐 ‘따뜻한 경계’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정서 교류와 소통은 따뜻하게 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 하지만 규칙을 어기면 아이가 다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해선 안 된다고 경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 학교폭력 문제 역시 사회성 발달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짚었다.
“사회적 관계를 못 맺으면서 위계를 이용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가 위계의 상층부에 있게 되면 학교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체로 초등학교 5~6학년 올라오면서 점차 위계가 만들어진다. 그런 위계 속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정서조절,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상층부를 점유하면 가해 행동이 나오기 쉽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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