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산’ 살리는 김신영의 힘···욕구 소거하는 ‘자기관리’보다 욕구에 충실한 ‘자기돌봄’이 더 빛난다[이진송의 아니근데]

이진송 2026. 5. 2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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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나 혼자 산다’에 새 활력 불어준 김신영
MBC 예능 <나혼자 산다>에 출연한 코미디언 김신영. 유튜브 갈무리

<나 혼자 산다>(MBC, 이하 ‘나혼산’)에 새로운 활력이 불어온다. 4월 10일 코미디언 김신영이 방송에 처음 등판한 후, 뜨거운 반응을 업고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집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먹고, 청소를 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김신영의 모습에 대중은 열광했다. 유튜브의 다시 보기 영상이 300만회를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두 번째 출연 역시 업로드 하루 만에 100만회를 기록했다. 그런데 출연자가 일상을 잘 꾸리는 모습은 그간 <나혼산>가 숱하게 방영했던 장면이다.

관찰 예능이 범람하고 일반인의 일상조차 쉽게 노출되는 브이로그와 릴스의 세상은 종종 ‘천하제일갓생대회’처럼 느껴진다(그 이면에는 세상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시도로서, 다소 극단적인 ‘폐급인생전시회’가 함께 한다).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방송 내내 외출 한 번 하지 않고 종일 집에만 있는 김신영의 일상은 조금 단조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신영의 한 끗은 무엇이 달랐는가 하면, 그의 태도가 내세우는 적극적인 ‘자기돌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기돌봄의 그 중요성이나 의미는 꾸준히 언급되었으나 미디어에서는 자기관리 담론이나 손절 담론과 구별되지 않은 채 모호하게 다루어졌다. 예를 들어 마른 몸매의 연예인이 토끼 밥 같은 음식을 절제하며 먹는 장면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끊어내라는 조언이 ‘나를 챙기는 삶’을 대표하는 식으로. 김신영이 실천하는 자기돌봄은 그런 전철과는 결을 달리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있다.

김신영의 <나혼산> 출연을 둘러싼 두 가지 반응을 살펴보자. 먼저 ‘살림을 진짜 잘한다’라는 감탄이다. 뚝딱뚝딱 만드는 요리, 깔끔한 주방 상태, 각 잡힌 옷, 잘 정돈된 각종 수집품의 상태에서 살림 고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김신영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오가며 바닥을 쓸고 닦는다. 옷을 좋아하는 만큼 수준급의 재봉틀 실력을 뽐내며 직접 옷이나 신발을 리폼하고 먹고 싶은 것도 손수 만들어 먹는다. 내 눈앞의 밥그릇은 그대로 둔 채, 남의 일상 속 깔끔함을 보며 감탄하는 것이 관찰 예능의 맛.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잘 먹는 것’에 대한 감상이다. 흰 쌀밥을 경건하게 모시다시피 하고, 좋아하는 당면을 모든 음식에 때려 넣는 장면이 요리 만화처럼 호쾌하다. 여자 연예인에게 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시청자들은 기어이, “그런데 다시 살이 찌니까 보기 좋고 행복해 보인다”라는 말을 참지 못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여자들의 삶은 이미 최화정과 이영자가 어느 정도 개척해놓은 영역인데도 김신영이 이토록 화제가 된 것은 몸의 변화와 밀접하다. 아무래도 김신영이 유명한 다이어트의 아이콘이었으니까. 강호동을 흉내 내는 여자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던 김신영은 건강상의 이유로 40㎏이 넘는 체중을 감량한 후 오랫동안 유지해 왔고 최근 몸무게를 복구한 참이다.

MBC 예능 <나혼자 산다>에 출연한 코미디언 김신영. 유튜브 갈무리

여자 연예인의 살 여부가 화제가 되는 세계는 아니꼽다. 동시에 이 출연이 그동안의 살과 요요, 자기관리를 둘러싼 인식을 교묘하게 흔들어 놓는 것도 사실이다. 김신영은 <나혼산>출연에 앞서 2월에 출연한 <아는 형님>(JTBC)에서 요요가 왔다며 그동안 억눌러 왔던 만큼 먹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살을 뺐으면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 아래 ‘다이어터’보다 어려운 게 ‘유지어터’라는 말이 있다. 살찐 몸과 요요는 관리 실패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김신영은 10년 동안 유지어터로 살았어도 ‘그때 그 신영이’, 88㎏일 때의 식욕과 먹성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호방하고 무심하게. 김신영에게 지금의 몸은 관리 실패나 역풍이 아닌, 그저 행복하게 먹은 결괏값이다. 김신영은 <나혼산>에서 다시 음식을 즐기기 시작한 계기로 존경하는 스승이었던 故 전유성과의 추억을 언급한다. 투병 중이었던 스승이 혹독하게 관리하던 신영을 보며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내가 지금 못 먹잖아. 아끼지 말고 맛있게 먹어. 먹고 싶은 거 먹고 살아”라고 한 말이 가슴을 울렸다고 한다. 관리가 자신의 욕구를 제압하고 특정한 기준에 몸을 맞추는 행위였다면 자기돌봄은,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것이다.

자기돌봄은 팬데믹 이후 돌봄이 전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번아웃과 ADHD 진단 같은 현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등장했다. 자기 자신을 돌본다고 하면 잘 자고, 잘 먹고,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는 언뜻, 한때 유행했던 ‘웰빙’ 담론을 떠오르게 한다. 2000년대 초반 신체와 정신 건강, 행복, 삶의 만족을 중시한 웰빙(참살이) 담론은 ‘힐링’의 인기를 이끌었다. 여기에는 압축성장을 한 한국 사회가 그간 외면했던 삶의 질과 내적 치유에 눈길을 돌렸다는 의의가 있으나, 질 좋은 제품을 소비해야 웰빙이라는 소비주의의 한계와 표면적 힐링이 오히려 구조적 부조리를 은폐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유통기한이 끝났다. 20여 년이 지나 돌아온 자기돌봄이 웰빙이나 힐링은 물론, 현대인의 금과옥조가 된 자기관리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 목적과 실천 방식에 있다. 오드리 로드는 자기돌봄을 ‘자기보존’이자 ‘정치적 투쟁 행위’로 보았고, 사라 아메드는 자기돌봄이 ‘나’를 ‘나’로 존재하기 어렵게 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자기돌봄은 건강하고 평화로운 몸과 마음을 추구하는 힐링이 아니라, 개인을 소진하고 상처 입히는 구조적 폭력과 부조리를 직면하고 이로부터 회복되고자 일상을 재편하는 것이다. 전쟁이 나든 이웃이 쌀이 떨어지든 나 혼자만 편안하고 잘 살면 끝인 게 아니라 ‘나’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 역시 자기돌봄을 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연결되는 행위다. 나를 잘 경영해서 최적의 생산성을 내고, 휴식조차 최적화를 위한 도구로 접근하는 자기관리 담론이나 더 나은 성과를 얻으려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믿음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마른 몸=자기관리=자기를 사랑하는 일’로, 살찐 몸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른 몸이 자기돌봄의 부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잘 논의되지 않았다. 연예인들의 가혹한 다이어트, 이를테면 종일 김밥을 한 알 먹는다거나 샌드위치 반쪽을 두 끼에 나눠 먹는다거나 하는 비법이 정말 관리일까? 자기돌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사회의 미적 규범에 맞추고자 나를 굶기고 학대하는 일이다. 나의 욕구를 소외시키고 자신의 몸을 부정하며, 건강에 위험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저체중이 유발하는 문제는 말하지 않는 사이, 건강을 근거로 살을 빼라는 간섭만 날개를 단다. 캐롤라인 냅은 자신의 거식증 경험을 고백한 저서 <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북하우스, 번역 정지인, 2021)에서 세상이 여성의 욕구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폭력을 논한다. “욕구는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삶에서 풍요의 감각과 가능성을 느끼고자 하는, 쾌락을 경험하고자 하는 더욱 깊은 수위의 소망에 관한 것”(18쪽)이지만, 여성은 언제나 “넌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33쪽)이라는 이분법에 가로막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를 굶기로 내몰았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두려움과 감정, 압박에 시달려보지 않은 여자가 있을까.”(31쪽)라는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것이다. 캐롤라인 냅의 통찰에 따르면 여성의 식욕을 통제하는 것은 곧 여성의 욕구를 통제하는 효율적인 기술이다. 여성들은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 먹으면 안 되는지, 먹으면 어떻게 될지를 고민하느라 정작 삶의 중요한 영역에 쓸 힘을 소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기 자신을 정성껏 대접하고, 신나게 먹으며 “옛날에는 막 예민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뭐. 누가 밟고 지나가도 화 안 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김신영에게는 여유가 넘친다. 위고비와 마운자로의 등장으로, 이제 살찐 몸은 ‘약까지 있는데 감히 살찐’ 몸이 되었다. 인간의 체형과 생활 습관은 원래 다양하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마른 몸만을 올바른 표준으로, 살찌지 않는 생활 양식을 규범으로 삼는 세계에서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저항이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사람은 내적 힘이 생긴다. <나혼산>의 두 번째 출연에서 김신영은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면서도 열심히 집안일을 하며 말한다. 아파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내 삶은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 두 다리로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아프더라도 우리 살아가야 하잖아요?” 내가 나를 챙겨야 타인에게 나의 삶을 맡기지 않고, 타인을 착취하지 않고, 상대의 자기돌봄도 지지할 수 있다. 관리라는 명목을 내려놓은 자리에, 새로운 자기돌봄의 씨앗을 뿌릴 때가 됐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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