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래는 결코 슬프지 않다” 엄마이자 기록자, 장윤경 [취재후]

이수연 2026. 5. 2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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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경 작가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또 부지런합니다. 무얼 묻거나 요청하면 얼마나 빨리 응답이 돌아오는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제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분명 중학생 아이를 돌보며, 전시회도 관리하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새로 낸 책의 '저자와의 대화' 준비도 하고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바쁠 텐데도, 언제나 친절하고 부지런한 목소리로 응답했습니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 양예준 군을 키우며 겪어온 세월의 무게가 그 부지런하고 담담한 목소리에 녹아 있습니다.

어머니 장윤경 씨와 인터뷰하는 동안, 예준 군은 뒤에 보이는 책상에 앉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를 펴낸 저자 장윤경 씨.

이 책은 천재 아들을 자랑하는 책이 아니라, 그 아들을 키우고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고단하고도 눈물 어린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미술학원에서도 장애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가득한 시선에 부딪혀야 했고, 상처받고 흔들렸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고 맞서 싸워온 기록. 가히 '전투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삶과 죽음을 경험한다. 특히나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처음에 교사, 치료사, 혹은 의사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동반해야 할 운명의 단어이다. (<색연필을 흔들던 아이는 어떻게 천재 화가가 되었을까> 중에서)

자유로운 형태 표현과 독특한 색감을 구사하는 화가 양예준 군. 자신을 ‘마음을 그리는 화가’라고 소개한다. (사진=장윤경 작가)

예준 군이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사실, 자폐성 발달장애에서 오는 '상동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약물치료를 하다 부작용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손에 색연필을 쥐여준 게 시작이었습니다.

연필을 계속 흔든다면, 그 행동을 없앨 게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면 어떤가, 하고 색연필을 쥐여주고 벽에 종이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8살 예준 군은 적게는 3시간, 많게는 6시간 이상을 꼬박 앉아서 색연필을 흔들며 그림을 그렸고, 예술 작품이 피어났습니다.

아빠가 읽었던 논문도 붙여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렸고, 악보도 붙여 그렸습니다.

아빠가 본 논문 위에 그린 〈외할머니와 엄마〉(2022). 울고 있는 엄마를 안아주는 외할머니를 그렸다고 한다.


색이 가벼워 색깔을 내기가 힘들고, 색을 내도 고정이 쉽지 않은 색연필. 보통 화가들이 쓰지 않는 재료이지만, 예준 군은 그 색연필로 칠하고 또 칠하며 오묘하고 독특한 색감을 표현합니다.

교육으로는 얻을 수 없는, 천재적인 감각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쌓인 시간은 기적을 낳았습니다.

2022년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데 있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영국의 사치 갤러리 공모전에 당선된 겁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오랑우탄〉(2022) 작품으로 2022 영국 사치갤러리 전시 공모전에 당선됐다.


우리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는 오랑우탄의 눈동자와 남다른 색감이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듭니다. 공모전의 심사위원 6명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하네요.

당시 11살이었던 양예준 군. 이 공모전에 당선됐다는 의미는, 어엿한 현대미술 작가로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는 뜻입니다.

"오랑우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걸 표현했어요. 오랑우탄은 울지 않아요. 우리를 보고 있어요. 이건(오랑우탄 주변에 있는 눈 모양) 오랑우탄을 보는 우리의 눈이에요." 양예준 화가가 직접 해준 작품 설명입니다.

지금까지 공모전에 70여 차례 당선됐고, 이 가운데 13번이 대상이었다고, 엄마 장윤경 씨는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공모전에 낼 때는 예준군이 가진 장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직 작품으로 평가받길 원했기 때문이죠.

양예준 화가가 가장 좋아한다고 소개한 작품 ‘엄마는 천사’(2023).


학교에서는 비장애 학우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게 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아들 곁에서 싸워온 엄마 장윤경 씨.

예준 군의 눈에 비친 엄마는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제목도 '엄마는 천사'입니다.

예준 군은 이 그림에 대해 "나를 지켜주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를 표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림에서 엄마는 나무입니다. 몸통은 든든한 나무 기둥으로 표현하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것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날개가 달린 천사,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편집기자로 일하기도 했던 장윤경 씨. 지금은 아들의 매니저이자 장애 전문 인터넷 매체인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아이가 자폐성 발달장애라는 판정을 받고 '장애도'라는 섬으로 숨어들었다가, '아이 덕분에' 다시 세상에 나와 칼럼을 쓰고 책까지 내게 된 어머니 장윤경 씨.

아이가 장애인이면 부모도 장애인 취급을 당하는 현실에 무릎이 꺾이는 경험도 많았지만, 장애를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당히 장애를 인정하고 발언하는 것이지요.

더 많은 사람이 장애를 이해하고, 장애가 배척의 이유가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장애인들이 낯선 것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결국은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비장애인들과 조금은 다른 행동을 해도, 그냥 늘 있는 친구야 그럴 수 있어,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윤경 작가)

그리고 "젊었던 자신을 응원해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삶을 놓지 않고 잘 살았고, 잘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또 본인과 같은, "제2의 제3의 예준이 엄마와 같은 삶 사시는 분들한테, '당신도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 우리의 미래는 결코 슬프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눈물이 나는 순간이었지만, 장윤경 씨는 끝까지 담담하고 꿋꿋했습니다. 그림 속의 나무처럼 말이죠.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헤쳐갈 세상은 아직 멀고 험할 수 있겠지만, 그 하루하루에 평온하고 잔잔한 햇살이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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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 흔드는 아이’에서 천재화가로…“그 길은 전투였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64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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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기자 (isuy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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