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자영업자, 소진공 이사장 됐다… 인태연이 바꿀 소상공인의 미래[중기+]

홍석희 2026. 5.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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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인태연 이사장은 지난 1월 30일, 대전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중앙시장활성화구역에 방문해 설 민생안정대책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전통시장 상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는 것으로 첫 행보를 시작했다. 인 이사장은 이후 취임 100일 동안 40차례 현장을 찾았다. [소진공]
청와대 자영업비서관 출신 인태연, 취임 100일 간담회
‘S-GDP’ 도입·부동산원과 MOU…데이터로 매출 변화 추적
‘소상공인의 가치, 소진공이 같이 만듭니다’ 새 슬로건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코로나19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2021년 봄. 소상공인진흥공단 직원 한명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매일 수십만 건씩 쏟아지던 자영업자 지원금 신청을 처리하느라 토·일요일을 반납해온 소진공 직원이었다. 당시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이던 인태연은 대통령 위로금을 들고 전주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환자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환자의 아버지가 인태연 비서관을 만났다. 전주에서 공무원을 지냈다는 아버지는 인 비서관에게 “공직자의 운명이다. 나라가 힘들 땐 몸을 갈아서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흘러 그 때 인 비서관은 지금 소진공 이사장이 됐다. 올해 1월 이사장 직 공모가 뜨자 인 전 비서관은 지원서를 넣었다. 경쟁도 있었다. 이를 뚫어 낸 것은 과거 소상공인 정책을 청와대에서 담당하며 느꼈던 바, 30여년의 의류판매 자영업 경력, 그리고 현장에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일을 벌여 나가야 한다는 비전을 잘 설명했기 때문일테다. 인 이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이 소진공 이사장직에 지원서를 넣은 이유에 대해 “현장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 소진공 직원들과 일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인 이사장은 취임 후 100일 중 약 40일을 현장에서 보냈다. 업종별 협·단체 간담회만 40회 이상 진행했다. 공휴일을 빼면 절반 가까이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서 보낸 셈이다. 그는 “현장에 있으면 오히려 사물을 보는 데 집중이 된다. 시간이 빠듯하니 아주 집중해서 서류 업무 처리를 하게 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SNS에 “민원은 국정개혁 과제들이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같은 결이다. 인 이사장의 현장행보는 이 보물창고를 직접 캐러 다닌 시간에 가깝다는 게 공단 내부의 평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인태연 이사장은 지난 2월 10일, 설 명절을 맞이하여 대구의 서문시장과 칠성시장을 방문했다. [소진공]

인 이사장의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의 핵심은 ‘데이터’였다. 그는 “사업을 했는데 그 결과 매출이 늘었는지, 매출로 가는 징검다리가 됐는지가 자영업자들에겐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며 “얼마를 줬다고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권에 도움이 됐는지를 따지는 사업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책을 폈으나 현장 상인들이 그 정책을 ‘매출’로 느낄 수 없었다면 그 정책은 결국 실패한 정책이라는 것이 인 이사장의 생각이다.

소진공 관계자도 “과거에는 ‘몇 명에게 얼마를 지원했다’처럼 공급 중심 실적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폐업률이 얼마나 감소하고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중심으로 정책 성과를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카드매출 데이터와 공공 데이터를 연계해 지원받은 소상공인의 폐업률 감소 추이와 매출 향상도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성과평가 체계도 시범 운영한다.

데이터 기반 정책의 정점에는 ‘소상공인 총생산지표(S-GDP)’가 있다. 그 동안엔 한해 수조원 규모의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그 지원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후속 평가는 없었다. 소진공은 올해 소상공인이 창출하는 총부가가치, 골목 안전망, 지역문화 자산 보존 등 사회·문화적 기여까지 반영한 지표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소진공 관계자는 “헤도닉 프라이싱 등 이미 공표된 방법론을 도입해 학계와 공동으로 측정 모형을 만들고 있다”며 “오는 9월 중간 발표, 연말께 종합 공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도닉 프라이싱(Hedonic Pricing)은 상품 가격을 그 상품을 구성하는 속성별 가치의 합으로 분석하는 가격 산정 방식이다. 예컨대 아파트 한채의 가격이 20억원인 경우 이를 세분화해서 전용면적, 입지, 역세권, 학군, 한강 조망, 브랜드, 신축 여부, 층수, 커뮤니티 시설, 녹지 접근성 등으로 쪼개 그 의미를 숫자화 계산법이다. 소상공인을 ‘헤도닉 프라이싱’에 대입하면, 소상공인이 있을 때의 관광객 유입수, 유동인구, 지역경제 영향 등을 수치화 계량화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매출만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소상공인의 다층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해, 정책 설계와 예산 논의의 기초 근거로 삼겠다는 취지다.

소진공은 지난주 한국부동산원·지역상권학회와 3자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상권 공실 문제를 풀기 위한 첫걸음이다. 인 이사장은 “전국 평균 상권 공실률이 11%가 넘고, 큰 상권은 20~30%까지 가는 곳이 있다. 거의 궤멸 직전”이라며 “부동산 데이터와 학술 연구, 정책 집행을 한 테이블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빈 점포에 또 다른 상점을 유치하는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프랑스 파리시가 출자한 기구 ‘세마이스트(Semaest)’가 빈 점포를 사들여 재개발한 뒤 임대하는 사례를 영감의 출처로 들었다.

세마이스트는 파리시가 출자한 혼합경제회사로, 쇠퇴하거나 특정 업종으로 쏠린 상권의 점포를 파리 시가 직접 매입·개보수한 뒤 동네에 필요한 독립상점과 장인, 생활서비스 업종을 유치해 임대·관리하는 상권 재생 실행기관이다. 보조금 지급에 그치지 않고, 공공이 상가를 확보해 업종 다양성과 근린상권을 관리한다는 점에서 파리식 골목상권 정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인태연 이사장은 지난 4월 24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병권 중소벤처기업부 제2차관과 함께 인천광역시 부평르네상스 상권구역 일대를 찾아 4월 동행축제와 연계해 열린 ‘부평블랙데이’ 현장을 방문했. [소진공]

소상공인의 실질적 부담을 줄이는 사업도 속도를 낸다. 연매출 1억400만원 미만 약 230만명을 대상으로 25만원 한도의 경영안정 바우처를 지원하고, 점포 철거비 지원 한도는 기존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올렸다. 소진공 관계자는 “올해 경영안정 바우처는 전체 예산 5379억원 가운데 94%가 이미 집행됐다”며 “추가경정예산 편성 시 국회에 증액을 적극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점포 철거비는 올해 추경에서 208억원이 추가돼 지원 건수가 3만건에서 3만3000건으로 늘었다.

인 이사장이 간담회 막바지에 가장 힘을 준 대목은 직원 처우 개선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11개 기관 중 소진공의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5600만원 수준으로 사실상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인 이사장은 “최근 재정 당국 인사들을 세 차례나 만나 직원들이 일하는 양에 비해 너무 박봉이라는 점을 설명했다”며 “능력 있는 직원이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빛나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겠다”며 “응분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직원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뛰겠다”고 말했다.

한편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도시 재개발 현장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을 응시한 소설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골목과 시장에서 비슷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소상공인이다. 한 해 폐업 신고가 100만건을 넘어선 시대에 점포 한 곳의 불이 꺼지는 일은 한 가구의 생계가 꺼지는 일과 같다. 인 이사장이 슬로건을 ‘소상공인의 가치, 소진공이 같이 만듭니다’로 다시 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호받아야 할 약자라는 시선 위에, 지역의 경관과 안전망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주체’라는 좌표를 한 칸 더 얹는 작업을 인태연이 시작하고 있다.

인태연 소상공인진흥공단 이사장은 지난 20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했다. 인 이사장은 ‘소상공인의 가치’를 계량화해 우리 사회에 소상공인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실측하는 지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홍석희 기자. 그래픽=챗GPT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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