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기립박수, 사실은 '박수부대'가 있다?...끝없는 기립박수에 담긴 비밀

라제기 2026. 5. 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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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프'의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왼쪽부터)와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인성, 황정민, 나홍진 감독, 배우 테일러 러셀, 정호연이 지난 17일(현지 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영화 '호프' 공식 상영회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AP 뉴시스
당신이 잘 몰랐던 칸영화제<2>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양손에는 사진이 들려있었다. 배우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그는 사진을 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해 내보인 후 레드 카펫을 걸었다.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배우들에 대한 예우를 담은 행동이었다. 라술로프 감독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어려 있었다. 그는 이란을 탈출해 칸국제영화제에 어렵사리 참석한 상황이었다. 레드 카펫을 함께 밟지 못한 배우는 이란에 남아있었다.

라술로프 감독이 2024년 5월 24일 칸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영화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었다. 2022년 발생한 이란 히잡 시위를 소재로 했다. 시위대를 처벌하는 수사판사 아버지와 시위를 지지하는 딸들의 갈등을 통해 이란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 영화였다. 반체제 영화답게 결말이 파격적이기도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환호가 이어졌다. 기립박수는 14분 동안 계속됐다. 탄압을 받으면서 영화를 만든 라술로프 감독을 향한 존경이 담긴 갈채였다. 어렵게 만든 영화를 칸영화제에서 첫 소개하기 위해 이란을 극적으로 탈출한 과정 역시 박수를 불렀다.

2024년 5월 24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열린 '신성한 나무의 씨앗' 공식 상영회가 끝난 후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칸=라제기 기자

상영 후 관객 반응으로만 보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2024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22편 영화 중 가장 뜨거웠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특별’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원래 시상이 예정됐던 상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안위를 걸면서까지 영화로 체제를 비판한 라술로프 감독의 용기에 대해 별도 상까지 만들며 헌사를 바친 것이었다.

202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미국 감독 션 베이커의 ‘아노라’가 수상했다. ‘아노라’는 공식 상영회에서 7분 30초 가량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기립박수 시간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반 정도에 불과하다. 기립박수 시간이 수상과는 그리 밀접한 관련이 없음을 보여준다.

'판의 미로'(2006)는 칸국제영화제 사상 가장 긴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다.

칸영화제 역사를 돌아보면 기립박수가 수상과 무관함을 알 수 있다. 지난 19일 미국 연예매체 인디와이어는 역대 칸영화제에서 가장 오랜 시간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 25편을 선정했다. 1위는 ‘판의 미로’(2006)였다. 2006년 칸영화제 첫 공식 상영이 끝난 후 22분 동안 기립박수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판의 미로’는 칸영화제에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대신 상영 20주년을 맞아 올해 칸영화제에서 4K 복원판이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됐다. 인디와이어 선정 25편 중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영화는 ‘화씨 9/11’(2004) 단 1편이다. ‘화씨 9/11’은 2004년 칸영화제에서 첫 공식 상영됐을 때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역대 2위 기록이다.

수상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데도 많은 이들이 칸영화제 기립박수에 집착한다. 언론 대부분은 기립박수 시간을 기사 제목에 넣는다. 국내외 언론을 막론하고다. 관련 영화인들도 기립박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영화팬들도 관심이 크다. 칸영화제 기립박수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있을까.


변수가 너무 많은 기립박수 시간

배우 김신록(왼쪽부터)과 신현빈, 지창욱, 전지현, 구교환, 연상호 감독이 지난 15일 밤(현지 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군체’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레드 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AP 뉴시스

지난 12일 개막한 제79회 칸영화제에는 한국 영화 3편이 초청됐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경쟁 부문에,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정주리 감독의 ‘도라’는 감독주간에서 각각 상영됐다. ‘호프’와 ‘군체’는 공식 부문 초청이라 칸영화제의 심장이라 할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첫 공식 상영을 했다. ‘도라’는 칸 시내 극장 테아트레 크로와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투자배급사 쇼박스에 따르면 ‘군체’(15일 심야 상영)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7분 가량 기립박수를 받았다.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호프’(17일 오후 상영)가 기립박수를 7분 정도 받았다고 밝혔다. 두 투자배급사에 따르면 우연하게도 두 영화가 비슷하게 기립박수를 7분쯤 받은 것이다.

기립박수 시간으로 따지면 두 영화는 관객으로부터 똑 같은 평가를 받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립박수의 질이 같을 수는 없다. ‘군체’가 받은 기립박수는 대체로 균일하게 이어진 반면 ‘호프’는 중간에 잠시 끊겼다가 이어졌다. 기립박수의 내용만 보면 ‘군체’가 ‘호프’보다 나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군체’가 ‘호프’보다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화 상영 중 관객 반응은 ‘호프’가 ‘군체’보다 더 뜨거웠다. ‘군체’는 15일 뤼미에르대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된 영화였고, ‘호프’ 뒤에는 다음 영화 상영이 예정돼 있었다. 티에리 프리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군체’ 때보다 ‘호프’ 상영 때 마음이 급해 보였다. 기립박수가 좀 잦아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틈을 놓치지 않고 마이크를 잡고 나홍진 감독의 소감을 들었다(프리모 집행위원장은 칸영화제 주요 공식 상영회 사회를 맡는다). 기립박수가 더 이어질 수 있으나 다음 영화 상영 지체를 막기 위해 끼어들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운데) 감독이 2024년 5월 16일 제7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메갈로폴리스'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레드 카펫을 밟으며 모자를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칸=로이터 연합뉴스

칸영화제에서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영화가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는다. 기립박수 시간은 여러 변수에 의해 달라진다. 감독이 마틴 스콜세이지처럼 나이든 거장이라면 존경의 의미로 박수가 쏟아지고 지속 시간이 길어진다. 유명 노장 배우가 출연해 공식 상영회에 왔다면 역시 기립박수가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4년 미국 영화 ‘메갈로폴리스’는 칸영화제에서 7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상영 후 언론에서는 혹평이 쏟아졌다. ‘메갈로폴리스’는 ‘대부’시리즈로 유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신작이었다. 코폴라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옥의 묵시록’(1979) 이후 45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 레드 카펫을 밟았다. 기립박수 7분은 당시 85세 감독을 향한 예우였던 셈이다.


세계적 영화제에서 나온 첫 반응 상징

지난해 9월 1일 베니스국제영화제 '더 테스터먼트 오브 앤 리' 공식 상영회에서 배우 어맨다 세이프리드(가운데)가 기립박수에 감격하고 있다. 베니스=라제기 기자

기립박수 시간을 억지로 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식 상영회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들이 박수 부대로 곳곳에 배치돼 기립박수가 끊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때가 많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더 테스터먼트 오브 앤 리’는 상영 뒤 15분 30초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경이로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기립박수 늘리기에 의한 결과였다. ‘더 테스터먼트 오브 앤 리’는 노르웨이 감독 모나 파스트볼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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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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