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00억 달러 흑자, 미국이 그냥 둘까”

배현정 2026. 5. 2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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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이란전에 세계 경제 신음
석병훈 교수는 “관세 충격과 저성장 고착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한국 경상수지 흑자가 2000억 달러를 넘어서는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반도체 수출 호황이라는 ‘착시’에 안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곧 닥쳐올 ‘회색 코뿔소(예고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최근 중앙SUNDAY와 만난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의 장밋빛 전망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취약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는 1.7% 성장하며 속보치를 발표한 주요국 중 1위를 기록했지만, 석 교수의 전망은 낙관보다 우려에 무게가 실렸다.

최근 한국 경제는 주요 투자은행(IB)이 성장률 전망치를 3.0%까지 상향 조정할 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올해 성장률을 2.5%로 높여 잡았는데, 석 교수는 이 수치의 ‘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향 조정된 성장률의 절반 이상이 오로지 반도체 몫”이라며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전체 경제가 휘둘리는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가 18일간 장기 파업에 돌입할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대 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추가 성장분 상당 부분이 순식간에 상쇄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반도체 호황이 꺾이거나 예상치 못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경제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외발자전거’식 성장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이다. 석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를 “반도체만 질주하고 나머지 산업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K자형 성장’ 국면”으로 규정했다. 특히 그는 역대급 경상수지 흑자가 가져올 대외적 압박을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올해 1분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737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8배에 달한다. 그는 “미국은 자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에 관세를 매기기는 어렵겠지만, 대신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는 순간, 이들 주력 산업까지 관세 폭탄을 맞게 되면 한국 경제를 지탱할 축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석 교수가 꼽은 가장 심각한 본질적 문제는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다. 석 교수는 “반도체 랠리가 당장의 수치를 방어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성장의 힘이 급격히 빠지고 있다”며 “2030년에는 잠재성장률이 1%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잠재성장률이 2030년 1% 초반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충격적이다.
A : “성장률이 ‘현재 속도’라면 잠재성장률은 경제의 ‘엔진 출력’이다. 지금 한국은 엔진 자체의 힘이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노동, 자본, 생산성 세 축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데, 특히 인구 구조 변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것이 치명적이다. 기초체력이 고갈되는데 터보만 돌려 속도를 내는 상황,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Q : 숨겨진 리스크로는 ‘관세’를 주목했다.
A : “지금은 중동전쟁 이슈에 가려 관세 리스크를 잠시 잊고 있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이를 그냥 넘어가긴 어렵다. 상호관세가 위법 판결로 흔들리면서 미국은 무역법 301조를 통한 새로운 통상 압박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Q : 어떤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나.
A : “미국은 반도체보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을 새로운 통상 압박의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기간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방어 전략이 시급하다.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은 보조금 연명보다 미래 산업으로 과감하게 구조 전환해야 한다. 좋은 사례가 호주 질롱시다. 포드 자동차 공장이 철수하자 정부가 방위산업을 대체 산업으로 선정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을 유치했다. 기존 자동차 노동자들을 재교육해 장갑차 생산 라인에 투입한 것이다. 한국도 국가 차원의 정밀한 산업 전환 로드맵이 필요하다. 지방 산업과 일자리가 무너지면 인구는 서울·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결국 수도권 과열과 지방 소멸이라는 양극화가 심화한다.”

Q : 서울과 지방의 격차 해소 방안은.
A : “공공기관 몇 개 옮기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방의 생산성이 낮으니 기업과 일자리가 가지 않는 것이다. 정권마다 흔들리는 양해각서(MOU) 수준이 아니라 중앙·지방정부가 10년 이상 장기 재정지원 협약을 맺고, 지역 대학·기업·금융기관이 투자 방향을 주도하는 호주식 ‘시티딜(City Deal)’ 모델이 필요하다. 성과 평가에 따라 일자리 창출 지역에 재정을 차등 지원하는 인센티브 구조도 함께 가야 한다.”

Q : 반도체 초과 세수는 어디에 써야 하나.
A : “지금은 반도체만 질주하는 K자형 성장 국면이다. 일시적 초과 세수를 ‘국민배당금’에 쓰는 건 위험하다. 한국 정부 부채 증가 속도는 G20 선진국 평균의 3배 수준으로 매우 빠르다. 국가채무를 줄이고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데 우선 써야 한다. 동시에 한정된 재정은 미국 관세 압박에 노출된 기간산업과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Q :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인한 일자리 파괴는 어떻게 대비하나.
A : “AI는 숙련된 시니어가 아니라, 입사 5년 이내의 청년 일자리를 가장 먼저 대체한다. 정부는 기업이 청년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데 투자하도록 강력한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숙련 노동자로 성장할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Q : 해외 인재와 글로벌 자본 유치를 위한 정책은.
A : “단순히 비자 편의를 제공하는 수준으로는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기 어렵다. 자녀 교육, 가족 동반, 주거까지 포함한 ‘패키지형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 자본 유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몇 년 뒤 이윤이 나야 혜택을 받는 법인세 감면 방식은 매력이 떨어진다. 미국 IRA처럼 투자액 일부를 현금으로 즉시 돌려주는 ‘직접 환급제’를 도입해야 중국을 빠져나오는 글로벌 첨단 기업을 한국으로 끌어올 수 있다.”

Q : 환율 1500원 시대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A : “원·달러 환율 1500원이 뉴노멀이 된 시대다. 한국은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 낮고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어 원화 약세 흐름이 구조화됐다. 근본 해법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상이 한미 금리차를 줄여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하반기 고물가 압력까지 더해지면 금리 인상의 명분은 더욱 커진다. 통화정책 시차를 고려하면 선제적 인상이 불가피하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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