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공급망·AI가 힘… 이젠 경제동맹 시대”
美 4대 싱크탱크의 국제정세·동맹 진단

미국 싱크탱크 소속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은 앞으로도 세계 제1 강국으로서 압도적 군사력을 유지하겠지만 모든 곳을 다 챙기진 않을 것”이라며 “한국의 역할도 대북 중심에서 벗어나 더 크게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랜드(RAND)·브루킹스·허드슨 등 미 4대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20~21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의 4차례 연쇄 세션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한·미 동맹 등과 관련, 이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ALC 연사로 참여한 믹 멀베이니 전 트럼프 대통령 비서실장도 “‘아메리칸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정치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이후에도 이 구호가 내포한 미국의 비(非)개입주의적 대외 정책 기조는 표현 방식만 미묘하게 달라질 뿐 초당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냉전 이후 약 30년간 유지된 미국 패권주의가 ‘패권 유지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 SK·코리아재단 석좌는 “미국은 동맹의 가치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중시하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비용과 효율을 보다 따지면서 경제 안보·공급망 파트너로서 동맹과 힘을 합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조셉 윤 전 주한 미 대사대리도 “한미 동맹은 진화 중이고 그래야만 한다”면서 “한미 동맹은 더 이상 대북용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했다. 마크 코자드 랜드 선임 안보정책 연구원은 “한미 동맹은 글로벌 안보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 동맹과 안보의 개념이 군사적인 영역에서 경제·과학기술로 이동하는 점도 강조됐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 아태안보석좌는 “반도체, 희토류, 공급망, AI(인공지능) 인프라는 더 이상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가가 사용하는 힘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경제와 기술의 안보화로 동맹의 개념이 바뀌면서 형성되는 ‘상호의존성’은 동맹 간 유대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경쟁 세력을 억제하는 힘의 지렛대 역할도 한다”고 했다. 한미가 반도체·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협력망을 구축할 경우 안보적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하이노 클링크 랜드 국제국방 연구원은 “동맹은 가치나 이념보다 실질적인 국가 이익과 경제안보 중심으로 재정의되고 있다”며 “경제, 기술, 정치적 성과를 창출하는 동맹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미의 대북 정책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했고,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했다”면서 “북한은 더 이상 예전의 북한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부터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이루겠다는 동일한 접근을 지난 30여 년간 반복해왔다”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비핵화만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긴장 완화 위기 관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국제 관계에서 서사는 매우 중요한데, 무단으로 핵 개발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고, 버티면 미국이 수용할 것이라는 서사가 생긴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면서 “북핵을 군축으로 접근하면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적과 군축이라는 수단이 전도(뒤바뀜)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미 국가정보국 대북 담당관 출신인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고문도 “북한은 한미를 위협할 능력을 원하는데, 군축이든 뭐든 그걸 줄이고 없애려 한다면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군축도 쉽지 않고 북한의 협박과 공갈에 시달릴 것”이라고 했다.
마크 리퍼트 CSIS 선임고문은 “북한 문제는 워싱턴에서 뒤로 밀리고 잊혔다”면서 “현재 중국, 중동, 우크라이나 그리고 국내 정치 등이 더 우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7차 핵실험, 치명적인 대남 타격 등 세 가지 레드라인만 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방위 기술에 혁명을 가져다줄 AI, 양자 컴퓨팅, 드론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 미·중 패권 전쟁, 그리고 한반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크로닌 석좌는 “이란은 중국을 정치적 방패와 경제적 생명줄로 보고 있다”면서 “중국은 미국의 압박으로부터 이란을 보호하는 후원자 역할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고 했다. 코자드 연구원은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사이의 관계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면서 “이들도 군사뿐 아니라 기술·경제·정치적 지원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대만 해협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이 현재로서 가장 큰 곳”이라면서 “중국이 여러 나라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한미 동맹 강화와 일본과의 3자 안보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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