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간 셰프’의 사찰음식, ‘큰 스님’ 순례길… 비우고 채우는 마음 수행 여행
경남 산청으로 떠난
지리산 사찰 순례

요즘 “템플스테이 예약 난도가 거의 수강 신청 급”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가 ‘힙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템플스테이나 사찰 탐방이 힐링 여행의 하나로 인기를 끄는 때, 명찰(名刹)과 고즈넉한 암자들이 숨어 있는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으로 향했다. Wavve(웨이브) ‘공양간의 셰프들’에서 활약한 대안 스님의 사찰음식을 맛보는 ‘금수암’부터 ‘큰 스님’ 성철 스님의 뜻을 새기며 걷는 순례길까지, 소문난 사찰들이 그곳에 있다. 꼭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어도 숲이 가장 아름다울 시기이니 종교를 떠나 이즈음 숲속에 자리한 사찰 여행은 실패 없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잘 먹고, 천천히 걸으며 마음 수행한 하루.
◇‘맛절’로 소문난 ‘금수암’
“여기 진짜 ‘맛절’이에요! 강추합니다.” 산청 금서면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암자 ‘금수암’의 후기다. ‘맛절’은 ‘밥(공양)이 맛있는 절’이라는 뜻. 금수암은 절밥, 사찰음식으로 더 유명하다. 사찰음식 전문점인 ‘자연바루’를 직영하고 있어 누구든 편히 찾아 사찰음식을 쉽게 맛볼 수 있다. 총괄 셰프는 금수암의 주지인 대안 스님이 맡고 있다. 대안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이 사찰음식의 대중화를 위해 운영해 온 서울 견지동 사찰음식 전문 레스토랑 ‘발우공양’의 초대 총책임자이자 각종 강연과 전시, ‘열두 달 절집 밥상’ ‘대안스님의 채소밥’ 등 요리책을 통해 사찰 음식으로 소통해 온 인물. 사찰음식 대중화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19년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됐다. 2013년 KBS ‘인간극장’ 출연 후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해 지난 2월 ‘공양간의 셰프들’에서 사찰음식 대가 6인 중 한 명으로 출연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그래서 금수암을 검색하면 대안 스님과 자연바루, 사찰음식이 연관 검색어로 함께 뜬다.

◇사찰음식 명장의 작은 수행처
금수암에 닿으면 경내에 들어서기 전 자연바루부터 만난다. 소담스러운 한국 전통 정원을 축소해 놓은 듯한 연못과 오와 열을 맞춘 장독대를 낀 자연바루엔 다양한 손님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템플스테이를 하거나 사찰음식 전문점을 찾거나 배우지 않는 이상 접하기 쉽지 않은 사찰음식의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는 평소 스님의 뜻처럼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객, 브런치 모임을 하는 주부들, 인근 사찰의 스님들까지 어우러져 부담 없이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다. “(자연바루) 운영을 도맡았던 친구가 문을 연 지 열 달 만에 힘들어 그만두겠다고 해서 제가 직접 운영에 뛰어들었습니다.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야 적자를 면하게 됐어요. 운영해 보니 재료비에 인건비와 부대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 놀랐습니다. 이젠 1000만원 이하의 적자 수준이면 적자라는 생각도 안 들 정도입니다, 하하(웃음)!”
적자에 초연해진 외식 사업가처럼 말했지만, 공양은 본디 불교에서 음식을 베풀고 받는 과정을 통해 감사와 절제를 배우는 스님들의 수행법 중 하나. 대안 스님은 “자연바루는 일반 음식점이 아닌 40여 년 동안 사찰 음식을 들여다본 스님이 수행의 한 방법으로 운영해 가는 자그마한 수행처, 공양간 정도로 여겨주면 좋겠다”라고 정중히 소개했다. 금수암엔 대안 스님이 총 책임을 맡았던 시기의 ‘발우공양’을 추억하며 찾는 이가 많다. “먼 곳에서 찾아와 준 분들이 앉을 곳 하나 없어 그냥 돌아가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어요. 고요함 속에 머무르며 건강한 계절을 담은 밥상 한 끼 하고 가실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한 게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산야초 파스타, 피자… 금수암도 식후경
자연바루의 대표 메뉴 ‘연잎밥 정식’은 금가람 연잎으로 감싼 밥에 계절 채소를 주재료로 한 반찬과 부각이 한 상 차림으로 나온다. 연잎밥만 꼭꼭 씹어 먹어도 구수한데, 반찬을 곁들이니 입안에서 봄나물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듯했다. 금수암 부근에서 갓 채취한 가죽나물도 장떡에 쏙 들어가 있다. 직접 담근 전통장과 효소 양념도 곁들여진다. 반찬마다 계절이 녹아 있다. 봄엔 금수암 주변을 두른 각종 나물이 상에 오르고, 여름엔 오이와 장아찌들이, 가을엔 지리산 버섯을 활용한 반찬들이 채운단다. 모두 특별한 레시피를 가미하기보다는 대안 스님의 음식 철학에 따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 애 쓴 수고가 느껴진다. 담음새도 정갈해 식사가 나오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빼야 하는 사찰음식은 음식을 하는 이에겐 수행, 음식을 먹는 이에겐 명상을 위한 식사입니다. 일반 음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알아차림’이 있다는 것인데, 음식을 하는 이나 음식을 먹는 이나 음식을 통해 알아차림이 있다면 음식 하나로 수행이 된 겁니다.” 손님들 역시 수행하듯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분위기다.



‘연잎밥정식’ 외 ‘산야초 파스타’나 ‘웃음꽃피자’ ‘콩스테이크 정식’ ‘자연바루 샐러드’ 등 사찰음식 전문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색 메뉴도 눈에 띈다. 사찰음식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편견을 깨는 메뉴들이다. 대안 스님에 따르면 “고기가 들어가 좀처럼 양식을 맛보기가 쉽지 않은 스님들을 위해 사찰 음식 조리법에 따라 재해석해 내놓은 양식 메뉴들”이란다. 산야초 파스타는 곰취·다래순·오가피·두릅 등을 올리브유에 섞어 오일 페스토처럼 만들어 맛을 낸 파스타다. 루콜라를 풍성하게 올려낸다. 승복을 단정하게 입은 스님들이 피자를 손에 들고 즐기는 모습이 낯설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때마침 19일은 사찰 음식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지 1주년이기도 한 날, 약 40년간 사찰 음식으로 분주히 법문을 전한 대안 스님은 “불교 문화 콘텐츠의 하나인 사찰 음식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보람 있다”고 했다. 템플스테이 외 매월 ‘대안 스님과 함께하는 사찰 음식 만들기’ 강좌도 열어오고 있다. 맛과 프로그램이 보장된 덕분에 금수암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진행하는 템플스테이 중에서도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는 사찰로 통한다.

‘공양(식사)’ 전후 금수암을 둘러보는 건 필수다. 대안 스님이 “만 34년 전에 열일곱 가구의 땅을 사 73평에 터를 닦기 시작했다”는 금수암은 현재 5000평에 이른다. 절을 건립·조성하는 불사(佛事)와 도량 정리에만 꼬박 7년이 걸렸다고. “금수암은 일타 스님이 이곳의 산세를 보고 ‘금수강산 같다’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했다. 푸름을 자랑하는 나무 아래 인자한 얼굴의 나한상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계단을 지나면 법당 ‘대웅보전’이 나온다. 손으로 일일이 나무를 깎아낸, 투박한 듯 아기자기한 멋이 느껴지는 꽃문살이 금수암의 표정을 말해준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있지만, 산속에 자리한 금수암은 비교적 고요하다. 스님이 반려견인 ‘구름이’와 산책 다닌다는 절 안쪽 대나무 숲도 어느새 여름에 들어섰다. 해인사 국일암의 채공(菜供·절식과 제사에 쓰일 채소·부식물을 재배·보관·제공하는 일)으로 사찰음식에 첫발을 들인 후 ‘발우공양’의 총 책임, 연등회 국장, 조계종교육원의 불학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40여 년을 공양했다는 대안 스님은 대나무 숲길을 거닐며 나즈막하게 말했다.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흙탕물이 고요해지면 맑은 물만 남듯이 저에게도 이제 그런 시간이 왔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곳은 저를 불교적 인간으로 살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곳입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음식이라면, 음식을 통해서 ‘부처님의 법 안에서만큼은 누구나 삶이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계곡길 ‘대원사’, 순례길 ‘겁외사’
정성스러운 사찰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니 금수암을 시작으로 산청 사찰 순례 코스를 이어가 볼만하다. 대안 스님은 “산청에는 좋은 절이 많다”며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대원사’와 ‘길상선사’ 등을 추천했다. 금수암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 삼장면 지리산국립공원 내 천년봉 아래 있는 대원사는 길고 맑은 계곡을 곁에 두고 있어 이맘때부터 가을까지 계곡 피서나 지리산 산행 겸 찾는 이가 많다. 산청 9경 중 2경에 꼽히는 ‘대원사 계곡’의 계곡길은 대원사 주차장부터 대원사를 거쳐 ‘유평마을’까지 3.5km 정도 이어진다. 천년 고찰 대원사는 이 계곡길에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리한다. 신라 진흥왕 9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해 ‘평원사’로 불리다가 조선 숙종 때 운권 스님이 다시 세우며 ‘대원암’으로, 고종 때 구봉 스님이 중창하며 ‘대원사’로 불리게 됐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전소돼 탑과 터만 남아 있다가 1955년 ‘만허당’ 법일 스님이 비구니 참선 도량으로 중창하는 과정을 거쳤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조성한 보물 ‘다층석탑’이 눈에 띈다. 높이 6.6m의 화강암 석탑 안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58과가 봉안돼 있다. 대원사 바로 앞에 대원사 계곡길 진출입로가 있어 사찰 탐방 후 계곡길로 이어가기 쉽다. 잠시만 걸어도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덕분에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한쪽엔 ‘무장애탐방로’가, 다른 한쪽엔 지리산세를 최대한 살려 조성한 ‘계곡 탐방로’가 있어 골라 걸어볼 수도 있다.




분별과 집착이 없는 깨달음을 담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山是山 水是水·‘변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므로 산과 물을 탓할 필요가 없다)”라는 법어로 널리 알려진 성철 스님 생가터에 세워진 사찰 ‘겁외사’도 대원사에서 30여 분, 금수암에서는 30분 이내 거리에 있다. 대안 스님이 추천한 거림계곡의 아담한 산사 길상선사도 성철 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성철 스님은 평생 정진과 수도에만 전념했던 선승이다. 겁외사(劫外寺)란 이름은 ‘시간 밖의 세계’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의 절’이라는 뜻. 2001년 성철 스님 생가 복원과 함께 창건된 절 일대엔 대웅전 등 사찰 영역과 성철 스님 동상, 생가, 기념관이 모여 있다. 경내 곳곳에 스님의 법어를 새긴 비석이 있어 법어들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수행이 된다. 생가 앞엔 향나무와 백송나무가 스님을 대신하는 듯 맞이한다.

성철 스님 기념관에선 생전 육성이, 생가에선 성철 스님의 유품 ‘누더기 승복’과 낡은 고무신이 묵직한 감동에 이르게 한다. 겁외사에서 나서면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왕복 2.8㎞의 ‘성철 스님 순례길’이 이어진다. 겁외사를 시작으로 묵곡 생태 숲, 법륜암, 엄혜산, 문익점 목화시배지, 경호강 래프팅 포인트를 지나 단성교까지 연결되는 양천(엄혜산) 생태 길이다. 생가지인 묵곡마을은 ‘대나무로 1000냥을 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 숲이 좋다.

잘 가꿔놓은 묵곡 생태 숲엔 황토 맨발길도 600여m 조성돼 있다. 대원사 계곡에서 발 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은 맨발길을 걸으며 달래볼 만하다. 겁외사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와 가까워 오가는 길에 들러 보기에도 부담 없다.
◇이색 풍경 ‘수선사’, 전망 좋은 ‘정취암’
지리산 동남쪽 끝자락의 마지막 봉우리인 웅석봉 기슭에 자리한 ‘수선사’는 대안 스님의 금수암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로 가까워서 들러볼 만하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신비로운 풍경을 간직한 절로 소개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산청 필수 여행 코스로 등극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둘러싼 아담한 산사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꾸민 연못이 공간의 중심이 된다. 허술해 보이는 듯 정교하게 짜인 목책로는 SNS 인기 포토존이다. 수국이 만발하는 계절을 백미로 꼽지만, 안개가 피어오르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어우러져 나름의 운치가 있다. 인기 덕에 조용히 참선하거나 수행을 위한 발걸음보단 수제차나 옛날 팥빙수를 맛보며 쉬어가는 탐방객이 더 많은 분위기다.

지리산 자락 대성산(둔철산) 해발 500여m 기암절벽에 자리한 관음성지 ‘정취암’도 지나칠 수 없다. ‘하늘과 가까운 암자’라 불릴 정도로 높은 곳에 자리한 만큼, 산청 9경 중 8경에 꼽히는 수려한 전망이 기다린다. 원통보전 앞마당에 서면 ‘산청 뷰 맛집’이라는 애칭이 실감 난다.


의상대사가 ‘정취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는 정취암은 상서로운 기운이 금강에 버금간다 하여 ‘소금강’이라 불렸다는 곳. 내력에 비해 전각이 낡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고려시대에 중수, 조선시대에 소실과 중건을 거쳐 1980~1990년대까지 불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많다. 하얀 수국과 붉은색 작약, 자줏빛 달개비가 만발한 마당을 시작으로 원통보전에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산신각 부근에 조선 순조 때 그린 불화 ‘산청 정취암 산신탱’을 간직하고 있다. ‘거북바위 중에서도 쌍거북바위로,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하고 귀한 자손을 보게 하며 사업 번창 등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해준다’고 설명해 놓은 쌍거북바위(영귀암) 아래엔 보리수잎 모양의 소원지가 촘촘하게 매달려 있다.

정취암은 고지대에 있어도 산사 바로 앞에 아담한 주차장을 두고 있어 붐비지만 않는다면 노약자 동반 탐방도 가능하다. 단, 현재(22일) 출입로 부근에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당분간 최소 1km 정도는 걸어서 진입해야 한다. 종무소 관계자는 “‘부처님 오신 날’ 당일(24일)에 한해 ‘큰 주차장’에서 절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한다”고 전했다. 쌍거북바위에 소원지 하나 적어 두고 다시 ‘속세’로 향하는 길, 이상하게도 온종일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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