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자 일상’ ‘대치맘 루틴’… 자랑인 줄 알면서 오늘도 클릭
불편해도 눈 못 뗀다
선망을 파는 SNS 인기

직장인 김모(34)씨의 소셜미디어(SNS) 피드에는 요즘 ‘잘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자주 뜬다. ‘30살 반포맘의 주말 브이로그’ ‘연봉 1억 받는 30대 직장인의 일상’ ‘의사 와이프의 애 둘 독박 주말’ 등의 영상이다. 화면 속에서는 한강이 보이는 집, 파인다이닝, 백화점 장보기, 피부과 방문, 필라테스 등이 이어진다. 김씨는 “처음엔 위화감이 들었는데, 보다 보니 대리만족이 되고 자극도 받는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남의 잘사는 일상을 찾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랑이 심하다”며 눈총을 보내면서도 “정보가 된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호응한다. 불편해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부러워하면서도 다시 찾아본다. ‘자랑 구독 사회’의 풍경이다.
◇평범한 일상인데… 조회 수 수십만 회
지난 1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연봉 7억 30대 남자의 하루’라는 30초 분량 영상은 조회 수 78만회를 기록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일한 뒤 점심을 먹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평범한 동선 사이사이에 외제차와 말끔한 사무실, 고급 식당이 끼어 있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연봉 7억’이라는 제목이 조회 수를 높였다. 비슷한 영상들도 반응이 컸다. ‘억대 연봉 직장인 주말 일상 브이로그’는 58만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30대 직장인 부부 일상’은 47만회가 넘는 조회 수를 올렸다. 내용은 대체로 출근·식사·퇴근 같은 평범한 일상이다.
소득을 숫자로 드러내지 않고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의사·변호사처럼 고소득이 연상되는 직업, 서울 한강변 아파트나 부촌의 고급 주택 같은 주거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다. ‘워킹맘 강남 의사의 평일 하루 루틴’ ‘45세 대치맘 피부·치아 관리 브이로그’ ‘○○○○(고급 아파트)에 사는 98년생 하루에 얼마나 쓸까’ 등이다. ‘의사 남편’ ‘변호사 아내’ 등 배우자의 재력을 암시하는 문구들도 이 같은 영상 제목에 자주 쓰이는 문구. ‘전문직 남편과의 결혼 생활’ ‘치과의사 남편이 있으면 좋은 점’ ‘영앤리치 남편을 둔 전업주부 일상’ 등이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유료 상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나는 어떻게 의사와 결혼했는가’라는 인터넷 강의 예고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9만9000원짜리 이 강의의 목차에는 ‘의사라는 직업을 이해해야 결혼이 보인다’, ‘의사의 인생 사이클 완전 분석’ 등이 포함됐다. 이 강의는 이달 1일 공개 예정이었으나, 논란이 일면서 아직까지 서비스되고 있지 않다.
‘서울대 박사과정생의 브이로그’ ‘24시간이 모자란 의대생의 하루’처럼 학벌을 강조하는 콘텐츠도 같은 맥락이다. 영상 속 내용은 도서관 공부, 운동, 식사 등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이지만, ‘서울대’ ‘의대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보의 탈을 쓴 ‘자랑 콘텐츠’
이러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이다. 영상에 나오는 고급 아파트와 외제차, 명품 가방이 실제 본인 소유인지, 연출된 이미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회 수가 곧 영향력과 수익으로 이어지는 SNS 생태계에서 선망을 자극하는 요소는 강한 클릭 유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인기 영상 속 피부과·성형외과 방문은 협찬인 경우가 많고, 의류나 화장품도 공동 구매나 브랜드 연계 판매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워너비 일상’ 자체가 상품이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콘텐츠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진단한다. 과거에도 부와 학벌을 과시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지금은 과시 행위가 팔리는 ‘콘텐츠’로 재생산된다. 한 유튜브 채널 운영 대행사 관계자는 “‘의사 남편’ ‘억대 연봉’ ‘서울대’ 같은 키워드는 조회 수를 끄는 흥행 공식”이라며 “다소 작위적이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많은 자랑 콘텐츠가 ‘루틴 공유’나 ‘자기 관리법’의 형식을 띤다. 과시성 콘텐츠가 ‘유익한 정보’라는 프레임을 입으면서 대중의 반발심은 누그러진다. 적지 않은 구독자들은 “대리 만족과 자극을 동시에 얻는다” “실제 삶에 유익한 정보가 된다”고 반응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를 콘텐츠 제작자의 과시 욕구와 구독자의 동조 소비가 맞물린 현상으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은 여유 있어 보이는 이들을 선망하고 그들의 소비나 일상 중 일부를 모방하길 원한다”며 “과시성 콘텐츠는 이 심리를 잘 파고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재벌가나 연예인의 삶이 TV와 잡지를 통해 소비됐다면, 지금은 ‘잘사는 일반인’의 일상이 스마트폰 화면 위로 쏟아진다. 완전히 동떨어진 부유층의 삶이 아니라, 닿을 듯한 삶이기에 선망은 더 구체적인 소비 욕구로 이어진다. SNS 알고리즘은 이런 소비를 더 강화한다. 관련 영상을 한두 번만 봐도 비슷한 콘텐츠가 계속 추천되며 이용자를 ‘자랑 구독’ 흐름 속에 머물게 한다.
이 교수는 “이런 콘텐츠를 볼 때는 기본값이 광고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또한 SNS를 통해 유통되는 제품은 질이 낮거나 검증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보랏빛 라일락… ‘신의 형벌’ 당뇨병을 이겨낸 구원의 서막
- “힘든 건 견뎌도 아픈 건 참지 마라”…부상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아니, 근데요”를 “No, but…”이라고 했다가는…
- 통증은 발바닥에서 시작된다… 발바닥 코어 살리는 운동
- ‘윤어게인’과 ‘이재명 리스크’… 山風蠱 괘에 갇힌 우리 정치
- 벨벳 케이스 속의 진실
- 유비·관우·장비의 화려한 데뷔전, 대흥산 기슭의 혈투
- 나치·소련과 타협하지 않은 쿠벨리크…미국에서 ‘신세계’ 발견
- 가끔 정장 입는 남자를 위한 ‘실패 없는’ 넥타이 고르는 법
- 지방선거 최대 변수 ‘무당층’…그들이 투표하면 과연 누가 유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