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만 남은 듯한 앙상한 몸, ‘뼈말라’가 자기 관리의 증표라고?

정시행 기자 2026. 5. 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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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신체 인식 왜곡하는
‘뼈말라 인증’ 열풍
여배우들이 급격하게 마른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뼈말라 인증' 열풍이 불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스포츠조선

극단적 저체중, 일명 ‘뼈말라(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다)’ 열풍이 불고 있다. 위고비·마운자로 같은 고가의 비만 치료제 확산으로 단기간 감량이 쉬워지자, 유명인 등이 마른 몸을 과시하는 것이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유행하는 것이다. 뼈말라가 미(美)와 부(富), 영향력의 상징처럼 되면서 대중에게 왜곡된 인식을 퍼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요즘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SNS와 온라인 매체의 연예 기사는 ‘뼈말라 인증’으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앙상한 팔다리에 갈비뼈와 골반뼈가 도드라지고 병색마저 감도는 배우, 가수, 인플루언서 등을 찬양하는 표현이 넘쳐나면서다.

‘리즈 갱신한 50대 ○○○ 뼈말라 몸매 美쳤다’ ‘30㎏ 빼고 44㎏ 뼈말라 대열 합류, 자기 관리 깜짝’ ‘뼈말라의 정석 △△△ 여신미 폭발’ ‘모태 마름에 뼈팔까지, 얼굴 소멸 직전’ ‘40대 애 엄마 맞아? 뼈말라 되더니 아이돌 비주얼’….

뼈말라는 위험할 정도로 마른 이들을 우려하는 표현으로 5~6년 전 처음 등장했다. 거식증(anorexia·신경성 식욕 부진)을 동경해 물과 소금으로 연명하거나 먹고 토하는 소위 ‘프로아나’ 집단을 가리키는 비속어였다. 그런데 이 말이 1~2년 전부터 ‘날씬하다’ ‘가녀리다’는 말의 대체어가 됐고, 요즘은 ‘예쁘다’ ‘자기 관리를 잘한다’ ‘프로답다’는 칭찬처럼 쓰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고열량 식품과 잉여 칼로리가 넘쳐나면서 날씬한 몸이라는 희소한 가치에 대한 동경은 계속 커져 왔다. 그런데 지금 ‘뼈말라’ 열풍은 연예계 외모 기준이 K팝 아이돌에 맞춰지고, 비만 치료의 게임 체인저인 GLP-1 계열 약물 확산, 시각적 중독에 기반한 SNS 특유의 바이럴(viral·빠른 유행) 문법이 결합하면서 그 강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K팝 아이돌 산업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이들이 연예계의 영향력 패러다임을 바꾸고, 미의 기준도 '발육이 덜 된 10대 소녀'의 모습으로 혹독한 몸 관리를 받는 걸그룹의 모습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룹 블랙핑크의 공연 모습. /YG엔터테인먼트

뼈말라의 기준은 키(cm)에서 몸무게(kg)를 뺀 수치가 120 이상이라고 한다. 키 165㎝라면 체중이 45㎏ 이하라는 얘기다. 아이돌 걸그룹은 이 비율을 유지할 것을 소속사에서 강요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정도로 작고 가늘어야 스마트폰 속 SNS와 숏폼에서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K팝 산업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이들이 인기와 소득 면에서 연예계를 압도하자, 미의 기준 역시 ‘신체 발육이 덜 된 10대 아이돌 외모’로 통째 이동했다.

여기에 위고비·마운자로의 국내 상륙으로 뼈말라 열풍에 불이 붙었다. 정상 체중이거나 날씬한 편이었던 이들, 40~50대 중년 연예인과 인플루언서까지 비만치료제를 사용하고 단기간에 걸그룹 몸매로 변신하는 게 ‘자기 관리 챌린지’처럼 퍼졌다. 30대 기혼 가수 현아는 지난해 다소 체중이 불어난 채 무대에 섰다 악플이 달리자 “뼈말라 좋아했잖아”라며 다이어트를 공개 약속했는데, 한 달에 10㎏ 넘게 뺀 부작용으로 공연 도중 실신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서울 종로5가 한 약국에 '마운자로 전 용량 품절'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종로구는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비만치료제의 성지로 불린다. /조선일보DB

앞서 비만 치료제가 도입된 해외에선 그 정신과적 부작용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초기에 ‘오젬픽 얼굴’ ‘오젬픽 엉덩이’ 같은 외모 변화에 시선이 쏠렸다면, 이제는 만사에 의욕이 없는 ‘오젬픽 인격’이 논란이다.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하는 GLP-1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식욕뿐만 아니라 기존에 즐기던 취미나 외부 자극에 호기심과 기쁨을 갖는 능력, 사회적 성취욕, 성욕까지 억제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불안·초조, 무기력과 무감각 등 만성적 기분 장애가 흔하고 일부 자살 충동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비만치료제를 이용한 연예인 뼈말라 열풍이 일반인,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청소년건강행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 여학생 중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하는 비율은 절반에 육박하고(43.8%), 거식증 진단율도 매년 늘고 있다. 거식증 환자의 93%가 10대 여성이다. 거식증은 각종 신체 기능 부전은 물론 우울증·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사망률도 정신 질환 중 가장 높다.

한 20대 인플루언서의 '뼈말라' 인증샷. 키 170cm에 41kg이라며 "예뻐지면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한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한국 여성의 25%가 자신을 실제보다 더 뚱뚱하다고 생각한다”며 “집단의 평가에 민감한 아시아인은 미디어에 반복 노출되는 체형을 보면서 왜곡된 체형 인식을 갖기가 쉬워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뼈말라 인증’을 유해 콘텐츠로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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