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삼성전자·SK하이닉스, 運을 실력이라 착각 말라

강천석 기자 2026. 5. 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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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받는 기업 임원
전체 숫자 1500명인데
두 회사 근로자 9만명이
그 이상 받는다니…
盛者必衰 법칙이
어김없이 찾아드는 IT기업
운명 잊으면 바로 몰락
삼성전자 노조에서 시작된 노조들의 성과급 요구는 40년전 민주화 시대의 노조 운동을 연상시키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가 지난 4월 23일 개최한 '투쟁 결의대회’. /장련성 기자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근로자가 주축이 된 노조가 파업 수단을 동원해 얻어낸 억(億)대 성과급 잔치에 왜 같은 처지의 근로자들이 더 분개하는 것일까. 메모리 부문 올해 영업 이익 가운데 10.5%에 해당하는 금액을 그 부문 근로자가 더 많이 챙겨가겠다고 나서는 것이 그렇게 분개할 만한 일일까. 일단 노조 편에 서서 이런 생각을 자락에 깔고 노사(勞使) 합의안을 들여다봐도 충분히 분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리 사업부 직원 2만7000여 명은 1인당 평균 5억6000만원의 성과급을 받는다. 반면 5만여 명의 모바일·가전 직원들은 상생(相生) 명목으로 1인당 600여 만원의 자사주(自社株)를 받는다. 두 부문 상여금 격차는 100대 1이다. 같은 삼성마을 주민으로서 ‘우리는 수익을 못 냈으니까...’라며 마음을 다잡기는 어렵다. ‘메모리 부문이 죽을 쑤던 시기 그들을 거둬 먹인 게 누군데’라는 생각이 겹치면 더 그럴 것이다.

한국 근로자 급여 지도(地圖)를 보면 메모리 부문의 탐욕(貪慾)이 분명히 드러난다. 자본시장법은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급여·상여·스톡옵션 포함)를 받는 임원은 사업 보고서를 통해 개인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임원은 옛 용어로는 중역(重役)이다. 서러운 밥 먹고 찬 서리 맞으며 수십 년 세월을 인내한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사람 숫자는 대략 1100~1500명 안팎이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임원급 근로자’ 숫자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국의 전체 임금 근로자 2241만명과 비교해 보자. 이들 평균 임금은 연(年) 4300만원(월 360만원)가량이다. 전체 근로자를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서 있는 사람 소득이 중위 소득이다. 한국 근로자 중위 소득은 연 3300만원(월 278만원)이다. 봉급 1억원을 받으면 상위(上位) 10%에 들고, 2억 1600만원 이상을 받으면 상위 1% 안에 든다.

메모리 돈벼락이 먼저 친 것은 SK하이닉스였다. 하이닉스가 영업 이익의 10%를 특별 상여금으로 지급하면 3만4000여 명에게 1인당 6억~7억원이 돌아간다.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에서 2만7000여 명이 5억~6억, 공통 조직(반도체 연구소 및 경영 지원) 부문 2만8000여 명은 4억~5억원의 특별 상여금을 받는다. 양사(兩社)를 합해 좁게 보면 6만1000여 명, 넓게 보면 8만9000여 명의 초(超)고액 봉급자가 탄생한다. 세계 IT 기업 역사에 없는 일이다. 중소기업 오너 가운데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보기 어렵다.

실력도 운(運)이 따라야 빛난다. 그렇다고 운을 실력으로 착각해선 곤란하다. AI의 폭발적 성장과 그에 따른 메모리 수요의 폭발적 증가는 실력이 아니라 운(運) 덕분이다.

반도체 산업은 ‘별똥별 산업’이다. 흥망(興亡)이 유성(流星)처럼 흐른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기업에도 반드시 쇠퇴의 운명이 닥치고 만다는 성자필쇠(盛者必衰)의 법칙이 반도체 산업만큼 어김없이 들어맞는 분야가 없다. 기자는 1980년대 말 일본 반도체 산업이 정상(頂上)에 오르는 장면과 추락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반도체, 특히 메모리 분야 세계 1위부터 7위까지 기업이 모두 일본 기업이었다. 당시 일본 반도체 업계 최고 기술 지도자가 니시자와(西澤潤一) 도호쿠(東北) 대학 총장이었다. 개인으로 반도체 기술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받은 그는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 여러 조언(助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시자와의 말이다. “보잉은 50년 후에도 항공기를 만들겠지만, 세계 1·2·3위 반도체 기업인 도시바·후지츠·니혼덴키 등이 10년 후에도 반도체를 제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로 항공기는 수십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지만, 메모리 산업에는 미세(微細) 회로 설계 기술 등 핵심 기술 몇 개가 성패(成敗)를 좌우하고, 막대한 자본을 적기(適期)에 투입하는 오너 기업인의 결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추격자(追擊者)에게 유리한 산업이란 걸 들었다. 세계 IT 기업 공원묘지에는 한때 세계를 제패했지만 탐욕 때문에, 혹은 운(運)을 실력으로 착각한 탓에 추격자에게 따라잡힌 인텔·텍사스 인스트루먼트·모토롤라·노키아·도시바·후지츠 등등 수십 개 기업이 묻혀 있다.

니시자와는 반도체 산업은 기술 탄생지 미국 30년, 기술 중흥국(重興國) 일본 30년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가게 되리라고 내다봤다. ‘한국 30년’은 이건희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다. 그가 든 한국을 뒤쫓을 다음 추격자가 중국이었다. 바짝 뒤쫓는 중국 발걸음 소리가 귓전에 소란스럽기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메모리 근로자들 상여금 잔치가 최후의 만찬처럼 더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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