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잠시 멈추거나 밀려났을 뿐, 무가치한 존재는 없어요"
과거 미완성작 해체·재조합한 신작 선보여
6월 5일까지 이상숙갤러리



"전시를 통해, 살면서 잠시 멈춰 있거나 밀려난 것들에도 저마다의 깊은 가치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민제 작가의 개인전 '레스큐(RESCUE)'가 이상숙갤러리(대구 남구 이천로32길 19-1)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신작 '헬로 어게인(HELLO AGAIN)' 시리즈는 과거의 미완성작들에 건네는 인사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받지 못하고 작업실에 남게 된, '작품이 되지 못한 작업'들을 다시 꺼내 해체하고 재조합했다. 조각들을 다시 연결해 하나의 전체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멈춰 있던 시간의 조각들을 엮어내는 듯, 새로운 서사를 짜내려간다.
특히 작가는 작업을 하며 어떤 인위적인 의도를 더하기보다 기존 작업이 품고 있던 본연의 물성과 시간의 층위를 그대로 존중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색을 칠하거나 덧입히기보다는 과거 작업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고유한 색감을 자연스럽게 살렸고, 조각들을 해체할 때 발생하는 불규칙한 실루엣을 억지로 다듬지 않았다는 것.
작가는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만든 형태들을 긴 띠 모양으로 직조하듯 연결해 '물질의 호흡과 운동성'을 날 선 상태 그대로 살려뒀다"며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된 조각들이 스스로 새로운 구조를 찾아가도록 길을 열어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사물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을 넘어, 오랜 시간 품어온 자신의 고뇌와 노동을 위로하고 예술가로서 한 단계 나아갈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작업실 한구석에 밀려나 있던, 끝내 선택받지 못해 '작품이 되지 못한' 과거의 흔적들을 다시 꺼내 마주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어요. 그것들은 어쩌면 저 자신의 실패와 한계의 기록들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치가 멈춰있던 그 흔적들을 외면하지 않고 내 손으로 다시 해체하고 엮어내는 행위를 통해, 저는 과거의 시간에게 비로소 안부를 건넬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을 채운 또 다른 시리즈 '만촌동'은 기계 바느질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패의 파편'을 재료로 한 작품이다.
작업 초반 미숙한 기술로 인해 실이 꼬이고 바늘이 부러지며, 천이 뜯겨나가는 반복된 실패 속에서 생겨난 잔재들이 작업의 발화점이 됐다. 바닥에 흘러내려 덩어리를 이룬 실 조각들은 시간과 경험이 응축된 상징적 물질로써,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캔버스 위에 회화적 형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는 이번 전시 제목을 '레스큐(RESCUE)'라고 지은 데 대해 "내게 구조는 단순히 버려진 물질을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멈춰버린 존재들의 가치를 현재의 시점으로 구출해내는 일을 의미한다"며 "유한한 시간 속에서 밀려난 사물과 과거의 흔적들에 새로운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예술적 언어로 다시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처럼 단지 시대나 상황에 의해 그 가치가 잠시 멈춰 있었을 뿐, 세상에 본질적으로 무가치한 시간이나 존재는 없다고 믿습니다. 관람객들이 전시장 문을 나설 때, 그동안 스스로 외면해 왔던 나 자신의 서툰 흔적들이나 삶의 주변부에 밀려나 있던 소중한 기억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고 구조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전시는 6월 5일까지 이어진다. 053-422-4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