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좇아 500km 봉하까지 걷고, 또 걷고... 일흔다섯 '할매'의 고백

이성진 2026. 5. 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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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탄생 80주년·노무현 순례길 10주년... 순례단과 5월 1일 서울서 출발해 22일 봉하 도착한 정년옥씨

[이성진 기자]

푸르른 5월, 노란색만 보면 자체 발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5.23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진보 진영에게 노란색은 슬픈 현대사가 맞물린 잔인함과 깨치고 나가야 할 과제가 교차하는 상징색이기도 하다.

그 중 유독 별종들이 있다. 5월이 되면 노란색 중독에 빠진다는, 노무현에게 미쳐 노무현 순례길을 걷는 자들!
▲ 올해도 힘차게 출발~ 5월 1일 13시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노무현 서거 17주기 노무현 순례길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5월 1일 한강대교를 지나며~ 순례자들이 한강대교를 지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5월 ▶1일 서울 광화문~국회의사당(13.4km) ▷2일 국회의사당~판교(27km) ▷3일 판교~동탄(24km) ▷4일 동탄~평택지제(26km) ▷5일 평택지제~두정(26km) ▷6일 두정~전의(23.2km) ▷7일 전의~조치원(17km) ▷8일 조치원~신탄진(25km) ▷9일 신탄진~대전(22.7km) ▷10일 대전~옥천(18.6km) ▷11일 옥천~심천(19.7km) ▷12일 심천~황간(29.1km) ▷13일 황간~김천(25km) ▷14일 김천~구미(25km) ▷15일 구미~왜관(21km) ▷16일 왜관~서대구(26km) ▷17일 서대구~경산(32.8km) ▷18일 경산~청도(26km) ▷19일 청도~밀양(27km) ▷20일 밀양~삼랑진(18.5km) ▷21일 삼랑진~진영(24km) ▷22일 진영~봉하마을(6.1km)까지.

또 ▶17일 부산 토성역~부산역~사직구장(16.7km) ▷18일 사직구장~구포(17km) ▷19일 구포~물금(14km) ▷20일 물금~삼랑진(21km) ▷21일 삼랑진~진영(24km) ▷22일 진영~봉하마을(6.1km)까지, 아울러 ▶16일 울산~22일 봉하마을(81.65km)까지, 나아가 ▶16일 광주송정~18일 5.18 행사(20km)까지.

순례자들은 매년 수도권, 대구경북권, 동남권, 부산권, 울산권, 호남권을 잇는 총 700km의 '깨어있는 시민들의 릴레이 국토대장정-노무현 순례길'에 올라 지역민들과 잇고 이어서 5월 22일 봉하마을에 이른다.

모두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꺼억꺼억 응어리진 가슴을 부여안은 채, 이 중 일부는 하루만, 누군가는 열흘을, 또 누군가는 주말만을, 또 누군가는 억지로라도 한 두 시간이라도 걷는다.

이것만으로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다며 올해 서울에서 봉하마을까지 500km를 하루도 쉬지 않고 완주한 정년옥(여)씨(노무현 순례길에서는 서로를 대장으로 칭하므로, 아래에서는 정년옥 대장으로 표기한다).
▲ 좀 쉬었다 갑시다~ 500km 대장정 완주를 시작한 정연옥 대장이 순례길 도중 피곤한 발을 풀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당신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2일 순례자들이 서울국립현충원에서 순국선열들에게 참배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 저는 어떠요~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누가 더 이쁘냐며 꽃과 씨름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정 대장은 1952년생, 75세라는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출발해 산 넘고 물 건너, 따가운 햇살과 묵직한 빗살도 맞으며, 걷고 걸어 22일 오후 3시경 노무현 대통령이 잠든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결단코 용서할 수 없어, 불의에 맞서 싸웠던 용감한 노무현을 그리기 위해" 지난 7년간 매년 이 길을 품 닿는 대로 걸었단다. 하지만 올해는 노무현 탄생 80주년, 노무현 순례길 창단 10주년, 그리고 25년 단위로 인생의 굵직한 전환점을 맞닥뜨려 온 당신의 75세라는 인생 4막을 맞아 22일간 500km의 대장정 순례길에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는 정 대장은 "2019년 5월 우연한 기회로 순례길에 첫 참가했다"며 "평소 노무현을 잊고 살다가도 5월만이라도 생각해 보자는 다짐에서 매년 참가했고 그게 벌써 8년차"라고 말했다.
▲ 나라사랑, 국토사랑~ 정연옥 대장을 포함한 순례자들이 천안 두정에서 전위로 가는 도중 '자유평화의 빛' 탑 아래서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5월 8일 순례자들이 조치원에서 신탄진을 향해 서둘러 걷고 있다. 맨 앞이 500km 대장정 완주를 도전한 정연옥 대장, 가운데 기자도 함께 걷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힘차게 갑시다~ 5월 9일 순례자들이 신탄진에서 대전을 향해 걷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윤영희
▲ 대전 시내를 지나며~ 10일 순례자들이 대전광역시 도심을 지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우리 함께~ 10일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과 순례자들이 폐지수집 수레를 밀어 주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노무현이 어떤 존재이기에 가슴 한 곳에 저토록 품고 있는지를 묻는 말에, 정 대장은 "노무현은 정의를 추구하고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한 사회를 만들고자 발버둥쳤던 정의로운 사람이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어느 연설에서, 기득권에 치우친 현실을 나무라며 모난돌 비유와 조선왕조 5백년 동안 서민들의 억눌린 역사를 말할 때 공감이 컸고 그 정의로움에 매료됐다"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단호함이 참 좋았고 그 이후로 점차 알수록 더 마음에 들었다"고 고백했다.

정 대장은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못된 세력들에 의해 스스로 생을 버려야만 했던 당시 상황과 안타까움이…"라며 차마 말문을 닫지 못했다. 그녀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하얀나비'로 불린다. 그녀의 충남 아산 시골 농막 입구에는 '하얀나비집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벌은 꿀을 머금기 위해 꽃에 앉지만, 그런 목적조차 없는 나비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해서 지은 별명이란다.

그런 그녀가 노무현이라는 사람과 그의 가치라는 덫에 걸려 매년 순례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일치한다"는 정 대장은 "더럽고 아니꼬운 꼴 보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서로가 위로하고 또 즐거움은 함께 나누는, 소소한 사람들도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 안전하게 걸어세요~ 5월 11일 순례자들이 경찰의 안전지도를 받으며 충북 심천을 향해 걷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아름다운 심천역~ 11일 저녁, 순례자들이 충북 심천역에 도착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추풍령을 넘으며~ 12일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과 순례길 이강옥 대표가 추풍령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칠곡 호국의 다리를 건너며~ 5월 15일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이 순례자들과 함께 경북 칠곡군 호국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김영민
▲ 순례길도 폼나게~ 5월 16일 순례자들이 경북 칠곡군 지천면을 지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김영민
주변 텃밭을 일굴 때도 노란색 '노무현 순례복'을 입는 터라 보수색이 짙은 동네에서도 소위 '노무현' 할매로 소문이 자자하다. 노무현의 생각과 가치에 빠져든 그녀는 어느덧 투사가 됐다.

2023년 9월 검찰이 백현동, 대북송금, 위증교사 등의 혐의로 (단식 투쟁 중이던)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국회는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정 대장은 삭발까지 했다고 귀띔했다. "저 사람은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단식까지 하는데..."라며 속상해하며 당시 전라남도 보성 율포항으로 마음달래기 여행을 떠났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탓에, 그곳 미용실에서 한 올 남기지 않고 머리를 바싹 깎았다. 미용사가 만류했지만, 노란 노무현 순례길 티를 입은 할매의 단호함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정 대장은 평소 단체 가입도 안 하는 체질이다. 어느 단체든 마음에 들면 후원은 할지언정 가입은 하지 않아 왔다. 그런 그녀가 윤석열 탄핵 촛불집회단체에 가입했고 최근에는 안중근 기념사업회에도 가입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노무현 대통령의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스며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단다.
▲ 많이 피곤하세요~ 19일 순례자들이 경남 밀양을 향해 청도군을 지나며 잠시 피로를 풀고 있다.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이 신발을 고쳐메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아름다운 대한민국~ 19일 순례자들이 경남 밀양시를 향해, 경북 청도군을 지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여기저기 물집이~ 19일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이 경북 청도군을 지나며 잠시 발의 피로를 풀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빗속에서도 걷는다~ 20일 오전 9시 밀양역 앞, 비를 맞으며 삼랑진으로 걷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민철기
▲ 우중 순례길~ 20일 500km 대장정 완주에 오른 정년옥 대장과 순례자들이 비를 맞으며 경남 삼랑진을 향해 걷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민철기
▲ 거의 다 왔습니다~ 경남 진영읍에 도착한 노무현 순례자들이 22일 오후 1시, 진영역 앞에서 봉하마을로 출발했다. 불과 6km만 걸으면 도착한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정 대장은 심지어 고희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울보 할매다. 노무현만 생각하면 눈물을 흘린다는 그녀는 "노무현은 62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가셨다. 올해로 80세일 텐데... 그분이 지금 살아계시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까..."라며 목이 메인다.

올해 작심하고 서울에서 봉하마을까지 22일간 모든 일을 내동댕이치고 순례길에만 오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무현, 순례길의 의미 있는 주년과 더불어 당신의 75세가 맞물리면서 여생을 덤으로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화두를 뚫기 위해서였다.

"나를 찾아보려 완주에 나섰다. 지난 살아온 세월, 앞으로 살 세상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았는데, 과거를 되돌아 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깊은 생각에 빠지는 모습은 진지함을 더했다.

지난 1일부터 먼 길을 걸으며 참으로 많은 순례자를 만나고 여러 사연도 겪었다. "경북 청도군 지역을 지나는데 한 지역민이 우리를 향해 '야, 이 빨깽이 xx야'라고 힐난했는데, 다행히 재치 있게 상황을 잘 피했던 것 같다"며 속상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다. "다행히 몇 발짝 지나지 않아 '수고한다'며 '자신도 봉하마을을 몇 번 다녀왔는데, 음료수라도 사 주고 싶다'고 친절을 베푼 85세분도 만났다"며 미소를 띠었다.

경북 칠곡군을 지나면서는 고등학생 3학년 학생 3명을 만났다. "집회도 다니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선거운동도 한다는 그 학생들은 매우 열정적이었다"며 "교내에서도 상위권 성적에 들지만 정치는 정치고, 우정은 우정이라서 진보, 보수 사이 교우관계도 좋다고 깔깔대던 모습들이 생생하다"고 기억을 전했다.

경남 밀양시 지역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최연소 당원이라며 지역정치인을 꿈꾸는 청년도 특히 생각이 나고 그 외 자신들은 함께 걷지는 못하지만 음료수 등을 사 주며 응원해 준 지역민들도 꽤 만났단다. 그러면서 "과거보다 매해 이런 긍정적인 응원자들이 늘고 있는 듯해 좋았다"며 흐뭇해했다.
▲ 사람사는 세상,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22일 15시, 봉하마을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노무현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평안하소서! 22일 15시, 봉하마을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노무현 묘소에 꽃을 봉헌하고 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 함께 걷자! 사람사는 세상으로~ 22일 15시, 봉하마을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노무현 묘소 참배 후 봉화산 아래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향한 결기를 다지고 있다. "모두 고생들 하셨습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매일 평균 23km, 22일간을 걷는다는 것은 20대 젊은이들에게도 버거운 대장정이다. 완주 소감을 묻는 말에 정 대장은 "우선 건강이 허락해 줘 고맙다. 큰마음 먹고 완주 결심했는데,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텐데 다행히 무탈하게 봉하마을에 도착했다"며 "그동안 함께 걸은 동지들이 너무 감사하고 좋았다. 내가 뭐라고... 걷는 내내, 너무나 많은 동지 순례자가 후원, 격려해 줘서 고맙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이지 않나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이 길은 노무현이란 이름을 걸고 만나는 사람들이라 더없이 좋다. 처음 만나도 서로 통하는, 한 곳을 바라보는 좋은 사람끼리 모여서 더 좋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확장성이 있다"면서 "그 '사람 사는 세상'을 딴 데서 찾을 게 아니라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느끼고 만족하면 좋겠다"며 내년 노무현 순례길에서도 더 많은 깨어있는 순례자들을 만나길 소망했다.
▲ 즐겁고 행복한 순례길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한 정년옥 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2일간 고생하셨습니다!"
ⓒ 노무현순례길 서영석 작가
한편, 1일부터 출발해 릴레이로 걸어 22일 봉하마을에 도착한 연인원 500명의 노무현 순례단은 이날 노무현 서거 17주기 추도식과 해단식을 가졌다. 23일에는 노무현재단에서 개최하는 공식 추도식에도 개별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로 열 번째로 걷는 '노무현 순례길'(대표 이강옥)은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면서 대한민국 중심 철도인 경부선의 철도역을 따라 지역민들이 릴레이로 걸으며 민생을 체험하고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시민들의 민생 여행이자,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려는 여정이다. 노무현의 시대정신 '사람 사는 세상'과 '평화'를 지향하며 사회적 캠페인을 펼친다. 매년 5월 서울 광화문에서, 울산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봉하마을까지 700km의 '봉하 가는 길'과 9월 하순 광화문에서 임진각까지 230km의 '평화로 가는 길'을 걷는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네이버 밴드에서 '노무현 순례길'을 검색하면 된다.

노무현 순례길의 구호는
"함께 봉하가는 길,
사랑한다면 노무현처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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