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해협, 美 아닌 韓 국익과 직결…에너지 문제,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美 원유·셰일가스 활용 전략과 연계 검토 필요”
“선박 공격 당했는데 정부 수동적 대응…국제사회에 만만하게 보일 수도”
(시사저널=김종일·강윤서 기자)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중동 사태는 해결될 기미 없이 장기화하고 있고, 격화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 한국을 향한 압박 수위도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당장 우리 경제에 크나큰 위협으로 작동 중이고, 미·중 사이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만 문제를 두고 양측 모두 한국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따져 묻고 있다. 안보와 경제를 둘러싼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지만, 이를 풀기 위한 좌표가 뚜렷하게 안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에 대한 중간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5월20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좌표가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탄력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효율'보다는 '안정'에, '경제'보다는 '안보'에 상대적으로 더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동치는 국제질서 속에서 '죽고 사는' 문제보다 시급한 것은 없다는 진단이다. 신 전 대사는 이란 사태, 특히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한국의 국익과 직결된다며 적극적인 대처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에너지 안보와 관련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에너지 문제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며 "에너지는 국가의 피와 같다. 피가 제때 제대로 흐르지 않으면 국가가 마비된다"면서 에너지 문제를 단순히 산업적 차원을 넘어 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해 백년대계의 전략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전 대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1·2차관을 역임한 40여 년 경력의 외교 베테랑이다. 주일대사도 역임해 일본통으로도 통한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한국에도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큰 악재다.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은 국제법의 기본원칙일 뿐만 아니라 무역국가인 우리의 핵심 이익이다. 즉 호르무즈해협은 미국과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동맹국인 미국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우리 국익을 위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 에너지와 자원, 교역 등이 다 걸려 있는 문제다. 따라서 이란이 해협 봉쇄 등으로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한국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일본·호주·유럽 등 입장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국제 연대를 통해 적극 대처해야 한다."
유가가 출렁거린다. 급선무는.
"우선 에너지 이슈를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국력이 커진 한국이지만 우리는 높은 무역 의존도, 분단국가, 열강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3대 취약 요소를 가진 나라다. 경제안보에 대한 인식을 더 철저히 하고, 관련 계획 수립과 액션플랜을 모두 강화해야 한다. 이란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문제도 단순히 산업적 측면에만 국한시켜서 볼 게 아니다. 안보 문제로 접근해서 봐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확보가 장기적으로 어려워질 경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지금부터 하나씩 다 따져봐야 한다. 가령 한국은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중동 의존도가 높다. 정유 시설은 대부분 중질유 중심이다. 미국산 경질유를 들여온다고 해도 곧바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처럼 에너지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철저히 점검해 봐야 한다."
최근 우리 선박이 공격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크게 보면, 이란 사태 전반과 관련해 원칙적으로 미국에 협조하는 방향을 설정하되, 우리의 제반 현실을 설명하며 '이것은 할 수 있고, 이것은 할 수 없다'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게 바로 동맹 외교다. 그런데 정부·여당에서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번 우리 선박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 정부·여당은 마치 오히려 이란을 두둔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대응도 수동적이었다. 이란 대사 초치를 항의가 아닌 협의로 포장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을 스스로 취약국가로 만드는 행위다. 미국은 물론 서방에 한국 외교의 방향을 의심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부정적 인식도 커질 수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번 회담은 큰 흐름에서 살펴봐야 한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은 최소 2030년대까지 이어질 상당히 긴 과정이다. 그 흐름 속에서 양국은 상황에 따라 '경쟁' '협력' '갈등'이라는 3요소 비율을 바꿔가면서 관계가 움직이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경쟁보다는 관리에 중점을 두고 '전략적 안정'이라는 관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패권 경쟁이 일시적 휴지기에 접어든 셈인데, 이런 흐름이 미·중 데탕트의 시작일지 잠깐의 휴전일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올해만 해도 앞으로 세 번의 미·중 회담이 더 남아있다. 그 결과를 봐야 이후 상황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왜 '전략적 안정'이라는 선택지를 취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에 비해 불리한 전략적 환경 속에서 회담이 열렸다. 11월 중간선거가 있는데, 이대로 가면 하원과 상원 모두 잃을 가능성이 크다. 선거 전에 이란 전쟁을 끝내고 싶지만,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20%가 막혔고,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반면 중국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상당한 대비를 해뒀다. 여기에 미국에 대해 희토류 카드나 농산물 수입 등 강력한 통상 레버리지도 갖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과거 관세전쟁을 통해 중국을 몰아세웠던 때보다 거래 조건이 불리해졌다."
현재 미국이 중국보다 수세라는 뜻인가.
"중국의 상대적 전략 환경이 낫다는 것이지 미국이 마냥 수세적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 되는 것이 미국에 불리한 것은 맞지만, 중국도 경제 위기 등 약점이 많다. 한국은 중국의 한쪽 면(혁신적 모습)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면(모순적 모습)도 만만치 않다. 4차 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부동산 침체와 엄청난 부채 등 경제사회적 내부 모순이 매우 심각하다. 이런 상황 속 시진핑 주석이 내건 중국몽을 실현하려면 안정화된 미중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 역시 지금의 미중관계를 '경쟁은 하되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려는 모습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한 중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중국의 기본 대미관은 '쇠퇴하는 미국'이다. 시진핑은 중국이 3가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 타키투스 함정, 중진국 함정이 바로 그것이다.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밀려 발전 경로가 훼손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에게 미중 전략 경쟁은 트럼프 임기를 넘어서는 장기전이다. 지금 미중 간 전략적 휴전을 통해 시간을 벌고, 그 사이 힘을 키워 격차를 해소하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맞먹는 G2 시대를 열고,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세력권을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됐다고 본다. 우리로서는 굉장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까.
"중국이 도전하지 않는 한 미국이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 중국의 무력 침공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경우 뒤따르는 경제적 타격, 대규모 실전 경험이 많지 않은 중국군의 상황, 최근 중국군 수뇌부의 잇따른 숙청 등을 감안하면 그렇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과 호주, 필리핀 등과 다(多)영역 작전 훈련을 통해 통합억지력을 상당히 구축해가고 있다. 최근 이란과의 전쟁을 보며 중국이 학습효과도 거뒀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기존의 육해공 능력을 넘어 인공지능(AI)과 우주 사이버 능력, 드론 등을 결합시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대만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반도 방위에 주력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인정하되, 한반도의 대북 억지·방어 능력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만 사태가 터지면, 중국이 북한을 활용해 양동작전을 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이 모험주의적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보급 등 협조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즉 이렇게 한국이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미리 정리를 해둬야 한다. 우리 사회는 관련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전략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대만 문제는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력 재편, 한미 동맹 조정 등이 모두 연결돼 있다. 우선 사회적 공론화부터 해야 한다."
미국이 이번에 대만 무기 판매를 협상용 카드로 꺼내 들었다. 이에 자강론에 대한 이야기도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전후 한국을 지탱한 두 축은 바로 한미동맹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만이 아니다. 막대한 부채 등 미국이 더 이상 내부 모순 등에 맞닥뜨려 종래의 관용적 패권국 역할을 하며 동맹국에 너그럽게 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동맹의 책임은 더 커졌고, 기존의 동맹 체제가 이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수록 한국의 자강과 연대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동맹 방기의 위험을 피하려면, 미국의 안보기제로 쓰이는 전략적 제조업 등을 더 키워야 한다. 아울러 '포스트 트럼프'를 염두에 둔 장기적 시야를 갖고 동맹 관계의 조정을 헤쳐 나가야 한다. 동시에 일본과 유럽연합, 동남아 국가 등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동맹 변화의 리스크를 헤징해야 한다."

한미 간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대미투자특별법, 방위비 분담금 등의 문제를 풀 방향은.
"최근 체결된 한미 통상합의(팩트시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개인적으로 우리 국력을 넘어서 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키기로 약속했다면, 이제부터는 국익에 어떻게 결부시키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미국의 원유와 셰일가스를 활용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미국에 끌려다니며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한국이 동맹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게 중요하다. 또 한국이 우라늄 농축과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 이전, 핵추진잠수함 사업을 실현한다면 통상합의 내용을 감당할 수도 있다고 본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은 어느 시장에 집중해야 할까.
"현실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한국 제품은 더 이상 중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고 있다. 중국의 기술 굴기로 한국이 비교우위인 제품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중간재 수출 방향도 한중에서 중한으로 바뀌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대중 수출·투자를 규제하면서, 한국으로선 미국 시장 접근에 대한 보호막을 제공받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구도 속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가령 반도체와 바이오, 전력 등 미국에서 제조하기 어려운 한국의 전략적 주력 분야의 강점을 더 활용해야 한다. 한미 간 합의인 팩트시트를 충실히 이행하며 미국 시장을 더 확보하고, 중국 시장은 중간재 공급선을 다변화해 지켜나가는 병행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점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그 인프라의 상당수가 중국산이다. 경제안보적 차원에서도 고민을 같이 해야 하는 지점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북·중, 북·러, 중·러 관계는 역사적으로 굴곡이 많고 불신도 깊다. 즉 '반미'라는 상황적 편의에 따라 가까워진 것이지, 한·미·일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는 아니다. 그러니 경계는 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평가해 우리의 전략적 자원을 허투루 쓸 필요도 없다. 정부는 한일 관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긍정적인 면이다. 한일 간 협력할 분야는 아직 훨씬 더 많기에 이를 더 추동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를 평가한다면.
"실용외교의 근간은 실질적 국익의 확보라는 점에서 명분이나 수사만이 아니라 성과를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국익의 기축인 한미 동맹과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바탕으로 움직이면서 전술적으로 국익 확보를 최대한 추구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외교의 레버리지도 생긴다. 그런데 실용이라는 명목하에 이런 가치와 원칙을 버리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만만한 나라로 인식될 것이다. 그때그때 상황 타개나 상황 관리에만 몰두하면,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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