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가루 골목에서 예술로, 문래동의 변신기

손유지 2026. 5. 2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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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스케일업]
철강 산업 쇠퇴 속 비워진 공간의 시작과 변화
예술가 유입으로 형성된 문래창작촌의 탄생 배경
공장과 카페 공존하며 확장된 문화 상업 생태계
도시재생과 개발 사이 문래동의 미래 갈림길
[지데일리] 서울의 한 구석, 잿빛 철강 냄새와 쇳가루가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골목 한복판에 어느 날부터 화가의 물감 냄새와 카페 바닐라향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철공소 간판 옆에 페인트로 칠한 ‘작업실’ 문이 하나 둘 붙기 시작하던 그 시점, 문래동은 더 이상 ‘쇠붙이를 만드는 동네’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드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했다.  
문래동은 철강 공업지대가 쇠퇴하면서 비워진 공장을 예술가와 청년 창업가가 채우며 문화·상업 공간으로 재탄생한 동네다. 손유지기자

문래동은 1930년대 군소 방직공장이 들어오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계옥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방직·제조업이 이어지면서, 1960년대부터는 소규모 철공 업체가 줄지어 들어오며 서울의 핵심 철강 골목으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에는 각종 기계부품을 생산하며 “못 만드는 것 없다”는 별칭까지 얻을 만큼, 한국 제조업 성장의 숨은 엔진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중국산 부품이 대량 유입되고, 산업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문래동 철공소들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주택영단 주택단지가 철강 골목으로 변모한 뒤 50년 가까이 이어 온 철강 산업의 숨결이 점차 끊어지며, 공장은 하나 둘 문을 닫고 빈 공간이 늘어났다. 쇳가루만 남은 차가운 공장 건물 사이로, 주변 지역은 ‘쇠퇴한 산업 유산’이라는 이미지 속에 방치되는 듯했다.

이렇게 비워진 공장들에 첫 번째로 눈독을 든 것은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이었다.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와 높은 천장, 넓은 홀 구조를 갖춘 공장은 사실상 최적의 창작 공간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화가, 조각가, 공연예술가, 디자이너 등이 문래동을 찾아들기 시작했고, 2003년경에는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붙을 만큼 공식화된 예술 집적지로 자리 잡았다.

2010년 기준으로 문래동에는 약 70개에 달하는 창작실과 소규모 공연장, 연습실, 전시공간이 밀집해 있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유입되며, 시각예술뿐 아니라 공연예술, 시나리오, 문화기획, 전통 예술 등 장르가 섞인 ‘복합 예술 생태계’가 형성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철공소와 예술가의 공방이 한 골목에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모습은 서울 도시 풍경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배치였다.

빈 공장이 예술가의 공간으로 채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수요가 생겼다.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 전시를 보러 오는 예술 애호가, 예술가들과 만나고 싶어 하는 일반 시민들이 문래동을 수시로 찾게 되었고, 이들은 카페와 식당, 편의시설이 필요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녹이 슨 철강소 옆에 레트로 감성의 카페와 독립서점, 빈티지 소품을 파는 라이프스타일 샵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공장 외벽에는 벽화와 페인트칠로 꾸며진 간판이 붙었다. 이처럼 공장과 예술, 상업이 섞인 풍경은 각종 매체에 소개되며 ‘도시 재생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았다. 문래동은 철강산업의 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상업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공간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2020년대 들어 문래동은 또 한 번의 변화 다리 위에 서 있다. 영등포구는 문래동 일대를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하며, 대선제분 공장 부지를 비롯한 구조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대선제분이 리모델링된 복합문화센터는 전시, 공연, 회의, 결혼식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가능한 공간으로 설계되며, 주변 철공소 지역과의 연계가 강조되고 있다.

또한 문래동 일대에 지식산업센터가 건립되거나, 주거·업무 복합단지 조성 등 개발 호재가 예상되면서, 지역의 유동인구와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추세가 관측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래창작촌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는데, 2010년대 이후 예술가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문래동 예술가 170여 명의 현황을 공론화하고, 창작공간 유지와 지원 정책을 논의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오늘날 문래동은 더 이상 ‘산업 구조 변화의 희생양’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인 끝에 스스로를 새롭게 재편한 지역의 대표 사례로 읽힌다. 공장이 빈 공간을 예술로 채우고, 예술이 다시 사람과 상업을 끌어모으면서, 문래동은 철강 산업 50년의 역사와 20여 년의 예술·문화 생태계를 한 번에 품은 도시 공간이 되었다.

미래의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산업 유산을 다룰지 고민할 때, 문래동은 ‘철공소와 카페가 함께 서 있는 동네’라는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한다. 철강은 식어가지만, 그 자리를 새로운 감성과 활동으로 채워 넣는 과정 속에서 문래동은 서울의 다른 지역들이 추구하는 도시 재생의 한 가지 완성형 답안으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