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스파이처럼, AI 안경 쓰고 레드카펫…칸 영화제, 올해 화두는 AI[지금 칸에서는]

전지현 기자 2026. 5. 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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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기간인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마제스틱 호텔 ‘메타 하우스’에 레이벤 메타 글래스가 진열되어 있다. 전지현 기자

미국 빅테크 기업 메타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의 공식 스폰서다. 영화제는 2022년부터 이어온 ‘틱톡’과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올해부터 메타와 다년간의 계약을 맺었다.

틱톡과는 영화제 콘텐츠를 활용한 ‘숏폼’(짧은 영상)을 생성해 젊은 관객층 유입을 꾀했었다. 틱톡이 그 정도에 머물렀다면, 메타와의 협업은 보수적인 칸 영화제의 풍경을 보다 기술 친화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사건이다. AR(증강현실)·AI(인공지능) 등 메타가 사업 확장을 꾀하는 분야들이 영화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말이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의 공식 스폰서인 메타가 지난 12일(현지시간)부터 8일간 프랑스 칸 마제스틱 호텔에 마련한 ‘메타하우스’ 내부 전경. 전지현 기자

메타가 프랑스 칸 중심가에 있는 마제스틱 호텔에 12일(현지시간)부터 8일간 연 ‘메타 하우스’에서 그 단초를 엿볼 수 있었다. 영업 마지막 날이었던 19일(현지시간) 바닥과 조명이 메타의 상징색, 파란색으로 꾸며진 공간을 찾았다. 단상에는 AR 안경인 ‘레이벤 메타 글래스’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관심을 보이자 직원이 안경 착용과 체험을 도왔다. 안경 안쪽에 착용자에게만 보이는 작은 화면이 떠 지도, 메시지, 번역 등 기능을 선택할 수 있었다. 손에 특수 밴드를 착용하면 간단한 손가락 움직임으로 이를 조작할 수 있다. 영화제와 관련이 깊은 기능은 카메라다. 영화 속 스파이들이 쓰는 안경마냥, 손동작 한 번으로 시야에 보이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동영상도 가능한데, 촬영 중일 때는 상대가 알 수 있도록 안경테 상단에 하얀 불빛이 깜빡였다.

레이벤 메타 글래스는 동영상 촬영 중일 때 안경테 상단에 하얀 불빛이 깜빡인다. 전지현 기자
레이벤 메타 글래스로 찍은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시연 영상. @raybanmeta 인스타그램.

이 안경이 올해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활약했다. 메타는 감독, 사진가, 셀러브리티, 틱톡커 등에게 안경을 씌워 레드카펫 위와 무대 뒤의 모습을 촬영·공유하도록 했다. 칸 뤼미에르 대극장의 유명한 레드카펫에서 ‘셀카’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극장에 진입하려면 레드카펫을 밟아야 하는 구조이기에, 현장 가드들은 병목 현상을 막기 위해 “카메라로 찍지 말고 빠르게 이동할 것”을 요구한다.

칸의 성역과도 같은 레드카펫에서 스마트 안경을 이용한 촬영이 허가됐다는 것은 비록 프로모션일지라도 색다른 변화다. 체험을 도운 메타 하우스 관계자는 “현장에서 찍은 영상을 활용해 짧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번 프로모션은) 단순히 안경이 아닌 새로운 창의성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메타 지원받은 소더버그 다큐, 논란 중심에 서다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 그것을 영화에 활용하는 것이 괜찮을지, 어디까지를 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수십 년 전 CG(컴퓨터그래픽)를 둘러싼 논란이 그러했듯 이제는 생성형 AI 활용에 관한 문제가 현재 영화계의 화두다. 칸 영화제에서도 이 논쟁이 불붙었는데, 그 중심에도 메타가 있다.

앞서 지난 1일 미국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 측이 내년 개최되는 시상식에 AI 캐릭터나 챗봇이 쓴 시나리오를 수상에서 배제한다는 규정을 발표하며 이 논쟁은 다시금 점화됐다. “오직 인간이 실제로 수행했고 그 배우의 동의를 받은 연기만 연기상 후보 자격이 있다”거나 “각본상은 인간이 집필한 각본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존 레논: 더 라스트 인터뷰> 한 장면. 칸 국제영화제 제공, ⓒ Kishin Shinoyama

이런 흐름에서 개최된 칸 영화제에서는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다큐멘터리 <존 레논: 더 라스트 인터뷰>에 관심이 집중됐다. 1980년 존 레논이 피살되기 직전, 레논과 오노 요코가 진행한 (마지막일 줄 몰랐던) 인터뷰 음성을 활용해 존 레논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다. 소더버그 감독이 메타의 지원을 받아 메타 AI를 활용해 일부 영상을 구성했다는 것이 사전에 알려지며 비판 어린 관심이 잇따랐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소더버그 감독은 음성 인터뷰가 철학적인 주제들을 다룰 때 ‘어떤 영상’을 사용해야 할지 고심하던 끝에 AI를 활용했다고 한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결국 시간과 돈이 바닥났다. 그 때 메타가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소더버그 감독은 영화의 약 10%를 차지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AI로 만들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16일(현지시간)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존 레논: 더 라스트 인터뷰> 포토콜을 위해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외신에서는 존 레논의 마지막 인터뷰라는 깊이 있는 내용에 비해 AI 이미지가 “흥미롭지 않고 의미 없다”(가디언)는 비판이 나왔다. 하나 소더버그 감독은 “아직까지 창작자로서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진 사람이 AI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내놓고 사람들의 반응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신기술을 영화에 접목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소신을 전했다.

칸 영화제는 AI 활용을 제한하는 규정을 아직까지 두고 있지는 않다. 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개막 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예술가들, 시나리오 작가들, 배우들, 성우의 편에 있다. 인공지능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중인 메타와는 사뭇 다른 방향의 입장이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칸과 스폰서십을 시작한 메타가 어떤 절충점을 만들어갈지는 더 지켜볼 문제다.

칸 |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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