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사주에게 언론인 정체성 없다면 편집권 독립 가능한가?"
[토론회] 과거 정권으로부터 독립 외쳤지만, 최근 자본 침투 빈번해져
"언론사 사주도 저널리즘 원칙 학습하고 내면화해야" 당부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중요한 건 사주가 언론인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편집권 독립이 과연 작동할 수 있나? 좋은 사주가 있나? 좋은 자본이 있나? 언론사 사주도 마치 기자들처럼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걸 학습하고 체화, 내면화시켜야 한다.”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태영건설, 유진기업, 호반그룹, 중흥그룹, 동화기업. 각각 SBS, YTN, 서울신문, 헤럴드경제, 한국일보를 인수한 건설업 등을 하는 기업들이다. 최대주주가 기업인 언론사들이 사주로부터 편집권 독립이 가능할까?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주최로 지난 18일 열린 <국내외 언론의 편집권 독립 현황과 과제> 특별세미나에서 “20세기 논의된 언론의 자유는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방어적 성격이 강했으나, 미디어 기업의 자본화와 상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제는 경제 권력과 사회 권력, 주주, 이익단체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권리 보호가 더 중요해졌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언론인과 미디어학자들은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며 좋은 기사를 보도하기 위해서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법적 장치 등과 같은 제도도 필요하고, 언론사 사주가 저널리즘 원칙을 학습해 체화해 내면화해야 하고, 편집국 내부에서 편집권 독립을 위한 싸움의 필요성 등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언론사 사주가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낸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은 “워싱턴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의 경우 경영진으로서 어떤 판단을 했나. 언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판단해 기사를 내자는 결정을 한 것”이라고 운을 뗐다. 2001년 고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은 시카고대 졸업 후 포스트 기자로 일한 뒤 46세에 신문경영을 맡게 됐는데, 자신이 회장일 당시 1971년 미국 베트남전 개입을 다룬 국방부 기밀문서(펜타곤 페이퍼) 폭로나 1974년 닉슨 대통령을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했다.
김 실장은 “반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의장 제프 베이조스가 친트럼프 정부 성향 사설, 오피니언으로 바꿨다. 사주의 결정을 두고 편집권 독립하자고 할 수 있나? 저널리즘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 경영인의 결정이니 편집권 침해”라고 설명한 뒤 “한국일보가 자격 기준이 가장 명확한 편집강령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과 전혀 맞지 않다. 편집국을 뉴스룸으로 바꿨는데, 편집강령은 아직도 편집국으로 돼 있다. 그뿐 아니라 실제로 편집국 밖에서 뉴스룸 콘텐츠가 생산된다. 뉴스룸국장이 전혀 결정할 수 없는 콘텐츠다. 편집규약 우회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요한 건 사주가 언론인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게 과연 작동할 수 있나? 깊은 의문이 있다. 경영은 신경 쓰지 말고 신문만 잘 만들자는 게 아니다”라며 “좋은 뉴스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그런 경영적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 저널리즘 원칙과 상관없이 사세, 매출만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나? 또는 본래의 사업을 지키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철학을 갖고 있나? (사주의 생각에) 따라 현실이 많이 달라질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사주가 있나? 좋은 자본이 있나? 언론인 사주도 마치 기자들처럼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걸 학습하고 체화, 내면화시켜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자본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언론사를 왜 소유할까.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수익 경제적 목적보다 건설업이나 전경련 클럽 내에서 차별적 지위를 갖게 된다. 지역 언론이나 방송을 인수한 회장이 그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님이 된다. 정부 행사에 가면 인사 순서가 달라진다. 이런 방식의 차별적 지위를 요구하는 게 언론사 인수의 목적이라고 본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더 어려운 문제는 소유 경영 분리 이야기하지만 쉽지 않다. 지분을 가진 사주가 책임 다해 투자하나. 그렇지 않다. 소유주가 할 걸 경영진이 대신하고 더 나아가서는 경영진이 해야 할 영업이나 기타 수익 활동을 편집국이 대신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편집국에 있는 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대관 등 영업 활동하고 인센티브를 부여받는다”며 “특정 지역은 기자가 받는 월급보다 인센티브가 더 많다. 사주나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을 저널리즘 업무에 충실해야 할 기자들이 맡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책으로 언론사를 인수하고자 하는 곳은 인수목적 등을 담은 편집제작운영계획서 제출 의무화 및 정부광고집행 기준 변경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성호 MBC 저널리즘책무실국장은 “MBC의 경우 국장 책임제다. 보도본부장은 경영진이라 간섭할 수 없다. 제가 국장하면서 개별 기사 넣고 빼라 본부장 사장한테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사장, 본부장이 훌륭했지만, MBC가 제도를 갖고 있어 충분히 가능했다”며 “각국의 역사, 맥락을 따라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 규율이 있을 텐데 한국 언론도 각자가 싸워온 역사에 따라 그런 게 만들어진 것 같다. 투쟁의 역사가 있어서 편성규약, 단체협약 제작가이드라인 등 언론 자유에 관한 중복 보완적 명시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데스크와 기자들의 치열한 논쟁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는 “편집권 침해라는 말에 담을 수 없는 게 있다. 재벌 회장 아들의 기사가 사라진 것을 두고 언론사 사장이나 광고 국장이 편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지시를 따르는 편집국장이나 부장이 편집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인가?”라고 물으며 “애초에 독립되어있지 않은 편집권을 독립으로 이해하는 건 무모하다. 외부의 침해 때문에 기사가 사라지고 논조가 바뀌는 게 아니라 애초에 편집권을 쥐고 있는 데스크들이 그런 요구를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정환 대표는 “광고 때문에 기사가 빠지고 기사를 마사지하는 경우가 꽤 많이 벌어진다. 상당수 언론사에서 경계가 분명하지 않거나 알아서 빼거나 알아서 견디지 않는 상황으로 데스크가 순응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편집권 독립이 아닌) 편집독립성이라고 부르는 걸 제안한다. 편집권은 원래 독립돼 있지 않다.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순간 오류에 빠진다. 데스크의 권한을 존중하되 일상적인 감시와 견제를 누군가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판단은 불가침 영역이 아니라는 걸 조직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편집의 독립성이 확보된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친트럼프 보도지침 논란' 워싱턴포스트 구독자 대량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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