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SMR 시대 원자력 안전규제, 사전검토제도의 의미

지난 5월 12일 신규 원자로에 대한 선제적 인허가 준비와 핵연료 물질 사용 현장의 안전관리 역량 강화를 골자로 한 개정 원자력안전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 핵심에 ‘사전검토제도’가 있다.
사전검토제도란 건설허가 또는 표준설계인가 신청 이전에 기술적 불확실성이 큰 쟁점을 규제기관이 선제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다. 안전규제 전문가들이 본 심사에 앞서 설계 정보를 확보하고 핵심 기술 이슈를 검토함으로써 설계 초기 단계부터 안전 기준에 맞지 않는 요소를 걸러낼 수 있다.
기존 방식이 설계를 완료한 뒤 수만 페이지의 서류를 사후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제도는 ‘나중에 고치는’ 비용과 위험을 줄이고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도록 유도한다. 미국, 캐나다, 영국이 이미 시행 중인 제도이기도 하다.
이 제도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시대와의 친화성 때문이다. 오늘날 원자력 이용 확대는 세계적 추세이며 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SMR이 개발되고 있다. 기존 경수로처럼 물을 냉각재로 쓰는 방식 외에도 액체금속이나 헬륨 같은 기체를 활용하거나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혁신 원자로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스 냉각 SMR은 고온을 이용한 수소 생산에, 액체 연료 SMR은 선박 추진 동력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전례 없는 신기술에 기반한 SMR일수록 기존 심사 틀만으로는 안전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 사전검토제도가 여러 SMR 선도국에서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이 제도의 실효성은 이미 확인되고 있다. 미국은 ‘사전 인허가 검토 협의’를 SMR의 건설허가 또는 표준설계인가 심사의 전 단계 절차로 운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공급자 설계 검토’ 제도를 통해 자국뿐 아니라 타국에서 개발 중인 SMR에 대해서도 규제 검토 의견을 제공한다. 유럽 SMR 개발의 선두주자인 영국 역시 3단계 안전규제 심사 과정 중 1단계에서 SMR의 설계 안전성을 선제적으로 검토한다.
우리는 지금 에너지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2022년 발발해 현재도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의 중동 전쟁은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은 ‘에너지가 곧 국력’인 시대를 열었다.
사전검토제도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기술 개발과 안전규제를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의 관계로 재정립하는 제도적 틀로서 우리나라 원자력 안전규제를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원자력 안전규제가 국게적 흐름에 발맞춰 한 단계 도약하는 ‘규제의 진화’인 셈이다.
다만 제도의 도입이 곧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신기술을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역량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또한 사전검토와 본 심사 간 유기적 연계를 구축하되 최종 안전성 확인에는 어떤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규제의 유연성은 오직 안전의 철저함 위에서만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원자력 이용에 대해 더욱 책임 있는 안전 확인을 가능하게 하는 견고한 기틀이 될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dwjerng@cau.ac.kr]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