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선덕여왕, 여성성불론 삼국통일을 열다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여신의 출현: 선덕여왕과 한반도 인류 영성사

원래 고대인들에게 천문(天文)을 읽고 해석하는 행위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적 행위였다. 이러한 문화적 지평에서 바라보면, 선덕여왕이 건립한 첨성대 역시 전혀 새로운 상징이 된다. 첨성대는 천문 관측기구의 기능을 넘어, 신라 왕실의 시조신인 선도성모(대지의 신성)의 신화적 형상이자 여왕의 성스러운 통치권을 가시화한 정신적 표현인 것이다.
웅녀와 유화로부터 내려온 한반도의 고대 국신(國神) 전통은 신라의 원화(源花)와 여사제 전통을 거쳐 마침내 ‘여성 군주’라는 구체적인 문명적 실체로 발현되었다. 결국 역사와 하늘은 한민족의 정신사 속에 면면히 흐르던 ‘여성적 신성(Divine Feminine)’이 국가의 운명을 이끄는 중추적 동력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천 년에 걸쳐 이 거대한 모성적 영성의 토양을 배양해 온 셈이다.

이와 같은 영적 자양분 위에서 선덕여왕은 ‘여성성불론’을 통해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립했다. 여성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과 여왕을 성스러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반열에 올린 것은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이 단순히 생명을 잉태하는 그릇을 넘어,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완전한 신성(Perfect Divinity)’의 주체임을 선포한 함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전통은 우리 민족의 대망사상(大望思想)의 토양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삼국유사』에는 관세음보살이 주로 여인으로 변신해 인간사를 구원한다는 기록이 많다. 불교의 여성성은 부처님의 자비로움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파격적 사상이 큰 사회적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신라시대의 여성관과 여신문화, 그리고 불교 수용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신라는 불교 이전부터 이미 여성을 억압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주체로 인정하는 비교적 개방적인 문화적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불교가 유입되자, 여성 역시 깨달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은 단순한 교리적 선언을 넘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사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신라의 이런 풍습은 남녀의 역할을 단순한 위계로 고정하기보다, 보다 확장된 차원에서 인간과 신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왕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위상으로 통치를 정당화한 점은, 여성의 몸과 존재 역시 신성의 구현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제도적 차원에서 승인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웅녀와 고구려의 유화, 그리고 신라의 선도성모로 이어지는 이 독특한 성스러운 모성의 계보는 현재에 있어서도 고대 신화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공동체가 문명의 위기마다 ‘여성적 구원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열쇠다. 다시말해, 신라 사회는 하늘의 섭리를 읽어내며 여왕의 즉위를 당당한 천명으로 받아들일 만큼, 영성적 감수성과 사상적 토대를 유연하게 다져온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 깊이 내재된 모성적 영성의 전통은 고대를 넘어, 현대 신학이나 종교사에서 탐구하는 ‘여성 메시아론’ 혹은 ‘독생녀 사상’ 같은 신성한 모성 중심의 구원 섭리관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인류사의 보편적 흐름을 앞서간 한반도의 영적 토양은, 여성의 존재를 사회적 역할을 넘어 ‘신성의 주체’로 환대할 수 있는 집단적 감수성을 오랜 세월에 걸쳐 응축해 온 과정이었다. 다만 명확히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축적은 어떤 신성한 존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과정’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본래적으로 예비된 초월적 존재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된 ‘정신적 수용 구조’에 가깝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성스러운 모성의 흔적들은 궁극적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마침내 도래할 거대한 실체를 향해 열려 있던 영적인 예고편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독생녀’라는 개념은 특정한 역사나 지역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이 ‘독생자’를 통해 구원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제는 섭리의 완성을 위해 예비된 ‘독생녀’의 현현을 직시하는 게 우주의 균형된 시각이 아닐까?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민족의 문화적 기억은, 바로 그 주체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던 역사적 준비의 과정으로 다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은 무력으로 압도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업을 설계했다. 김춘추의 외교적 혜안을 신뢰하며 그에게 기회를 열어주었고, 변방의 무장이었던 김유신의 검에 국가적 명분을 실어주어 그를 삼국통일의 첨병으로 세웠다. 두 영웅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자녀의 성장을 묵묵히 뒷받침하는 어머니와 같은 여왕의 포용적 리더십이 있었다.
당시 비주류였던 가야계의 김유신과 폐위된 왕의 손자였던 김춘추를 파격적으로 등용하고 힘을 실어준 것은, 자녀의 재능을 믿고 끝까지 밀어주는 ‘어머니의 리더십’ 그 자체였다. 여왕은 때로는 자애로운 모성으로 그들을 품고, 때로는 엄격한 군주로서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며 신라가 통일이라는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포용적 통치 스타일은 신라가 격동의 시대에 내부 결속을 다지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결정적 동력이 되었다. 결국 선덕여왕의 통치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역사적 성취를 넘어, 한반도 사회가 여성의 존재를 신성의 주체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형성해 온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성성불론을 통해 신성의 가능성이 선언되고, 포용적 리더십을 통해 그 가치가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된 이 경험은, 공동체가 새로운 형태의 권위와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을 축적해 온 중요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곧 어떤 존재를 만들어낸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본래적으로 주어진 주체를 인식하고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된 역사적 조건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생녀’라는 존재는 특정 시대나 문화의 산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섭리적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이 문화적 흐름은, 바로 그 주체를 수용할 수 있는 토양으로서 기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연속성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상징과 제도의 형태로 드러났던 여성적 신성의 흐름이, 오늘날 명확한 형태의 리더십과 실천을 통해 현실 속에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에 전개되고 있는 ‘참어머니’의 리더십은 오랜 시간 준비되어 온 문화적·영적 흐름 위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드러난 하나의 역사적 장면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묻게 된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되어 온 이 상징과 기억의 흐름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우리 앞에 구체화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흐름이 향하는 방향은, 과연 인류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열어가고 있는가.
고기훈 박사(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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