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상법이 삼성전자 성과급 난제 풀어…주주가 사실상 최종 결정 [홍길용의 화식열전]

삼성전자 노사가 마련한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의 내용의 숨은 의미가 눈길을 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성전자의 정교한 선택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안의 도화선이 된 SK하이닉스식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구조에서 제기될 수 있는 법적·회계적 논란을 상당 부분 피하면서도, 노조가 요구한 성과 공유의 취지를 일정 부분 수용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단체협약이 아니라 개별협정, 영업이익이 아니라 사업성과, 현금이 아니라 자사주다. 삼성전자는 성과급을 단순 현금 비용으로 풀지 않고, 자사주를 매개로 한 장기 성과참여와 주주환원 구조로 재설계했다. 이익잉여금을 사용할 수 있고 주주승인 과정도 거칠 수 있는 접근이다. 올해 개정된 상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번 합의가 다른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이정표적 사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1. 단체협약은 3년 제한…‘개별 협정’으로 10년까지
이번 갈등의 출발점은 SK하이닉스 노사가 지난해 합의한 ‘10년 성과급 고정 배분’ 구조였다. SK하이닉스는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이를 10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2조다. 노조법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제한한다.
①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사가 합의하여 정할 수 있다.
② 단체협약에 그 유효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경우 또는 3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한 경우 그 유효기간은 3년으로 한다.
경기와 산업 환경은 변한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업황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큰 산업이다. 법이 단체협약 기간을 제한한 것도 장기간 고정된 노사 약속이 산업과 기업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취지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 법령에 적용될 위험을 놓치지 않았다. 잠정합의서 말미에 “성과급 노사 합의는 단체협약과 구별되는 개별협정으로 유효기간을 별도 진행한다”고 명시했다. 단체협약 체계와 장기 성과보상 구조를 분리한 것이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10년짜리 성과보상 구조를 만들면서도, 이를 곧바로 단체협약 3년 제한 논란에 노출시키지 않는 장치를 마련했다. 동시에 향후 경영 환경이 급변할 경우 노사가 다시 협의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겼다.
2. 영업이익 대신 사업성과…재원도 이익잉여금
두 번째 묘수는 성과급 산정 기준이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의 몇 %’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DS부문 사업성과의 10.5%’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회계상 성과급은 영업외비용이 아니다. 현금으로 주든 주식으로 주든, 성과급은 영업이익을 계산하기 전에 차감되는 인건비다. 따라서 이미 산출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장기간 배분하는 구조는 자칫 이익처분 또는 이익배분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익배분은 주주 권익과 직결된다. 주주는 기업의 잔여이익에 대한 최종 청구권자다. 이미 계산된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노사가 장기 고정 배분 구조를 정하고, 이사회가 이를 추인하는 방식은 이사회의 자본배분 책임 및 주주 충실의무와 긴장을 일으킬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 지점을 비켜갔다. ‘영업이익’이 아니라 ‘사업성과’라는 별도 기준을 사용함으로써, 성과급을 단순 이익처분이 아니라 사업 성과에 연동된 보상 체계로 정리했다. 이 표현 하나가 회계·상법상 논란을 낮추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3. 현금 대신 자사주…주주환원· 승인 구조로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묘수는 지급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성과급을 현금이 아니라 전액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된 주식에는 최대 2년의 매각 제한도 붙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지급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회사가 이미 보유했거나 앞으로 확보할 자기주식을 임직원에게 교부하는 방식이다. 신주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자사주 매입의 재원이다. 세전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성과급 재원을 마련할 경우 주주의 이익배분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배당가능이익, 즉 이익잉여금 등 주주환원에 쓸 수 있는 재원을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금 대신 주식을 주는 일이 아니다. 성과급 지급을 위한 주식 확보 과정 자체가 자사주 매입, 주주환원, 주가 부양 효과와 연결된다.
특히 상법 개정으로 자기주식의 보유·처분에 대한 주주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현재 보유한 자기주식만으로 장기 성과급 지급 수요를 모두 충당하기 어렵다면, 향후 추가 자사주 매입 가능성이 크다. 결국 성과급 지급을 위한 자기주식 확보 자체가 주주총회 승인 안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성과급이 더 이상 노사 테이블 안에만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다. 자사주 지급 구조를 선택한 순간, 성과급은 노동 보상인 동시에 주주환원 정책, 자본배분 정책, 지배구조 이슈가 된다.
세제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다. 임직원이 주식으로 받은 성과급은 근로소득세 과세 대상이다. 고액 성과급일수록 상당한 소득세가 부과돼 국가 세수에도 플러스 요인이 된다. 반면 일반적인 국내 상장주식 투자자는 자사주 매입에 따른 주가 상승 이익을 누리더라도 직원들처럼 즉시 근로소득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노사 보상, 주주환원, 세수 효과를 하나의 구조 안에 묶은 셈이다.
4. 적자 사업부 차등…통상임금 논란도 낮췄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치열한 쟁점 중 하나는 영업적자가 난 사업부에도 성과급을 지급할지 여부였다. 노조는 DS부문 전체 성과급 재원의 상당 부분을 균등 배분하자고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적자 사업부에도 고액 성과급이 지급될 경우 성과주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고 봤다.
이 문제는 단순히 조직 내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통상임금 논란과 연결된다.
2024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통상임금 판단의 무게중심은 과거의 고정성 요건에서 소정근로 대가성, 정기성, 일률성으로 이동했다. 성과급이 성과와 무관하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향후 통상임금 논란으로 번질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분에도 안전장치를 뒀다. 잠정합의안은 당해 연도 적자 사업부는 공통 지급률의 60%만 지급한다는 페널티 구조를 명시했다. 첫해에는 적용을 1년 유예하는 타협을 했지만, 제도의 뼈대는 성과연동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 역시 중요한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성과급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면서도, 이를 완전한 고정급으로 굳히지 않으려 했다. 성과급이 정기·일률적 급여로 해석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설계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배분 딜레마는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일부 대기업 노조들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논쟁은 바이오, 자동차, 통신 등 다른 산업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삼성전자 잠정합의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전례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영업이익을 고정 배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별협정으로 단체협약 논란을 피하고, 사업성과 기준으로 이익배분 논란을 낮추며, 자사주 지급으로 성과급을 주주환원 구조와 연결했다.
물론 모든 질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질문이 시작됐다.
AI 시대가 만들어낼 거대한 초과이윤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미래를 위한 경영진의 투자 재량인가. 리스크를 짊어진 주주의 잔여이익인가. 아니면 현장에서 땀 흘린 노동자의 성과 참여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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