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 하청 단체교섭 소송, 9년 기다림 끝에 ‘패소’ 확정

어고은 기자 2026. 5. 2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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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 “구 노조법 적용, 단체교섭 의무 없어”
▲ 금속노조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현대중공업 단체교섭 청구 소송 대법원 선고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속노조>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원청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 전 사안의 경우 종전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다. 노동계는 "낡은 법리에 갇혀 노동3권을 외면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1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노조가 2017년 소송을 제기한 지 9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1·2심 원고 패소 판결

사내하청지회는 원청인 HD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며 2016년 5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런데 원청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2017년 1월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의 쟁점은 HD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지회에 대해 노조활동, 산업안전, 고용보장 등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였다. 노조는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한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하는 행위를 하면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의 대상인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1심(울산지법)과 2심(부산고법)은 모두 사용자쪽 손을 들어줬다. '부당노동행위 주체'와 '단체교섭 당사자'로서 사용자 범위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노동3권을 침해하는 지배·개입행위를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사정만으로 단체교섭을 포함한 집단적 노동관계 일반에 원청의 사용자성이 당연히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는 적어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야 한다"고 봤다. 하청업체의 독립성, 종속적 관계 여부, 임금 지급 실질적 주체 등을 토대로 HD현대중공업과 사내하청 노동자 사이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노조 상고로 사건은 2018년 12월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2024년 3월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관 8명 '종전 법리 타당'
4명 '종전 법리 변경해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구 노조법'이 적용되는 이번 사건에 종전 법리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대법관 8명의 다수 의견으로 종전 법리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청회사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해 지배·개입하지 않을 의무 등 소극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단체협약의 체결을 위해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 대법원은 "향후 개정 노조법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에 맞게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 개념을 해석하면 충분하다"며 "구 노조법 2조가 적용되는 2016년경 단체교섭 사안에 관해 종전 법리를 변경해 개정 노조법의 규정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법리를 창설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법관 4명은 종전 법리를 변경해야 한다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은 "수급근로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그 근로조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직접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평가되는 도급인과 직접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야 수급근로자의 노동3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할 수 있다"며 "종전 법리는 논리적 정합성이나 헌법 정신에 맞는 구체적 타당성 모두 상실했다"고 밝혔다.

"현실 외면한 채 원청 책임 부정"
하급심 다른 사건 영향 '우려'

이번 전원합의체 선고가 원청 사용자성을 다투는 다른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 노조법 시행 전부터 하급심에서 원청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CJ대한통운 사건은 택배노조와 원청이 교섭해야 한다는 취지의 2심 판결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한화오션, 현대제철, 백화점·면세점 등 사건도 1심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온 상태다.

노동계에서도 이날 선고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HD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을 대리한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노조법이 개정됐고, 변화된 노동환경에 맞춰 전향적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며 "대법원은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신장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해 왔는데, (이번 전원합의체 선고는) 낡은 노동 법리에 묶여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외면하는 판결을 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선고 직후 금속노조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은 오랫동안 하청업체 출퇴근, 휴식시간, 업체본공 인원, 물량팀 인원 활용, 잔업과 특근, 작업배치와 안전문제까지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해 왔다"며 "법원은 현장의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된 하청구조를 바로 보지 못한 채 원청의 책임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개정 노조법 2조의 취지에도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이미 사회는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가 사용자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노동현장의 현실을 법원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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