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농업 미래를 일구다] “젖소 팔고 사과 심었더니”…주말마다 700명 찾는 명소로

노현숙 기자 2026. 5. 2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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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족농 부가가치를 쥐다
독일 ‘라이자흐 과수원’의 변신
해발 720m 과수농사 도전
재해 대비 우박 방지망 설치
채소·딸기 등 전략작물 재배
직판장·카페·민박 한자리에
먹고 사고 즐기는 재미 가득
가족단위 수확 체험도 인기

독일 바이에른주 오스탈가우 마우어슈테텐. 알프스 설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해발 720m 고지대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전통적인 낙농 지대 한가운데 젖소 목장 대신 사과나무가 줄지어 섰고, 그 사이로 딸기·채소밭이 이어졌다. 라이자흐 과수원 직판장 주차장엔 차들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고지대에서 과수농사가 되겠느냐”던 이웃들의 의구심은 이제 주말이면 하루 700명이 찾는 지역명소가 됐다.

나무 골조 천장 아래 신선한 채소와 가공식품이 가득 진열된 직판장에서 방문객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4월11일 낮 12시 무렵, 과수원 직판장 문을 열자 달콤한 과일 향이 코끝을 스쳤다. 정갈하게 진열된 여러 품종의 사과와 채소, 수제 잼과 증류주 병들은 동네 판매장이라기보다 도시의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을 연상케 했다. 인근 주민 모니카 위르겐스씨(59)는 “일주일에 한번은 꼭 이곳을 찾는다”며 “지역에서 난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직판장 안쪽 카페에선 80대 세 자매가 창밖으로 펼쳐진 알프스를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햇볕이 좋고 경치가 아름다워 자주 온다”는 이들은 식사를 마친 뒤 달걀과 채소, 과일을 한가득 사 들고 나섰다. 이곳에서 손님은 단순히 물건만 구매하는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풍경을 감상하고, 음식을 맛보고, 농장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장바구니를 채운다.

농장의 역사는 1965년 1대 농장주 부부가 젖소 60마리를 키우고 딸기 한 이랑을 심으면서 시작됐다. 일대 전환점은 2010년이었다. 가족은 낙농업을 과감히 접고 과수 중심으로 체질을 바꿨다. “소가 없으면 제대로 된 농부가 아니다”라는 지역의 오랜 통념을 거스른 선택이었다.

농업 마이스터 자격을 갖춘 3대 마르틴 니더타너씨(31)가 2019년 농장을 이어받으면서 변화는 더 가팔라졌다. 2020년 직판장을 신축하고 베이커리를 열었다. 2022년 카페와 농가 민박, 2023년 오일 가공이 차례로 더해졌다. 현재 농장규모는 약 80㏊. 사과·배(12㏊), 딸기(10㏊), 채소(20㏊), 곡류(30㏊) 등을 전략적으로 재배한다. 사과는 13∼14개 품종을 생산해 절반은 즉시 팔고 나머지는 저장해 연중 공급한다. 상추·토마토·콜라비·당근 등 100여종의 채소를 2주 간격으로 순환 재배하는 것 역시 치밀한 설계다. 그는 “소비자가 사계절 내내 다양한 제철 농산물을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라이자흐 과수원 농장주인 마르틴 니더타너씨가 접혀 있는 ‘우박 방지망’ 아래 사과 과수원에서 재배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고지대 과수 농사의 가장 큰 적은 기상재해다. 그는 “알프스발 우박 한 차례면 사과가 대부분 망가진다”며 “우박 방지망은 품질을 지키는 보험이자 필수 투자”라고 말했다.

5월 중순 이후 나무 전체를 덮었다가 수확이 끝나면 접어두는 이 망 덕분에 사과의 상품성이 유지된다.

흠집 난 과일은 잼과 주스, 식초로 재탄생해 부가가치를 높인다.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과일로 만든 윌리엄스 배 브랜디, 마가목 열매 브랜디 등 다양한 증류주도 인기다. 베이커리에선 하루 빵·케이크 1000개가 팔려나가고, 알프스 전망을 품은 농가 민박 3실은 호텔 못지않은 시설로 연중 예약이 이어진다. 고객이 달걀을 찾자 닭 900여마리를 들여 이동식 양계장을 운영할 정도로 시장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한다.

소비자를 농장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강력한 유인은 ‘수확 체험’이다. 6월 딸기를 시작으로 7월 체리·라즈베리·자두, 8월 사과와 채소로 이어지는 체험은 가족단위 방문객을 밭으로 불러 모은다.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딸기를 따는 동안 부모는 직판장에서 식재료를 고르고 가족은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다. 농장은 2023년부터 지역 유치원과 학교에 농산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 이곳 사과를 맛본 아이들이 자라 다시 찾아오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판장·카페·숙박·창고가 한 마당에 들어선 라이자흐 과수원 전경으로, 농장 뒤 알프스 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니더타너씨가 농장 운영에서 내세우는 가치는 ‘신선함, 지역성, 따뜻한 환대’ 세 단어로 압축된다. 직접 재배한 것의 매력, 밭에서 바로 장바구니로 이어지는 신선함이 이 농장의 전부다. 우박 방지망으로 사과를 지키고, 흠집난 과일을 잼으로 바꾸고, 손님 말 한마디에 닭장을 들인 모든 과정이 쌓여 지금의 농장을 만들었다.

그는 “우리 농장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생각할 수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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