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증시’ 뒤 숨겨진 그림자
멜트업 구간 진입…작은 변수에도 ‘휘청’
증시는 뜨겁지만 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와 인플레이션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증시는 반도체와 유동성에 크게 의존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개인투자자의 ‘빚투’까지 빠르게 늘면서 작은 충격에도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반도체 업종 역시 노조·정책·공급망 변수 등 각종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평가다. 모건스탠리도 변동성을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5월 12일 발표한 2026년 한국 증시 하반기 전망 보고서에서 “코스피는 추가 상승 여력이 있지만, 하반기에는 시장 변동성이 다소 커질 수 있다”며 “향후 3~6개월 코스피 예상 범위를 6500~9500으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정책 불확실성에 중국 변수까지
증시를 이끄는 건 단연 메모리 반도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 13일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은 6423조3604억원이다. 이 중 삼성전자(1660조3431억원)와 SK하이닉스(1408조2998억원)의 시총 합산액은 3068조6429억원으로, 시총 비중은 47.7%에 달했다. 코스피 시총의 절반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인 꼴이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코스피 전체가 흔들리는 장세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반도체 과열 우려가 나온다는 점도 짚어볼 지점이다. 최근 반도체 랠리가 실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리 장세’ 성격이 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즈호증권은 최근 메모리 반도체를 두고 ‘멜트업(melt-up)’ 구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멜트업은 실적이 아닌 FOMO(소외 공포) 등 심리적 요인이 증시 상승세를 이끄는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선 작은 이슈에도 시장이 크게 반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은 지난 3월 실적 서프라이즈 이후 특별한 악재가 없었음에도 단기간에 30% 가까이 급락한 바 있다. 실적이 아닌 투자 심리가 증시 방향성을 결정하는 상태다.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언급 이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가 흔들린 사례도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AI 시대의 초과이윤이 사회 내부의 K자 격차를 구조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이를 반도체 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한 정부 정책 개입 가능성으로 받아들였다. 국민배당금 언급 당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강세에서 약세로 전환했다. 코스피도 급격히 하락해 7421까지 내려갔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한 고위 정책당국자가 AI 산업에서 발생한 세수를 활용해 국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고 전했다. 미국 금융 매체 배런스도 “지금 반도체 시장은 작은 악재에도 매도세가 터질 만큼 예민한 상태”라며 “한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만으로도 시장이 큰 폭으로 흔들렸다”고 설명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반도체 랠리가 지나치게 ‘공급 부족’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매크로 리서치 업체 가베칼리서치의 루이-빈센트 가브 최고경영자(CEO)는 5월 11일 배런스와 인터뷰에서 “향후 미국과 중국 간 희토류 공급과 반도체 장비 규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첨단 반도체 장비 접근권을 확보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반도체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은 네덜란드 ASML의 첨단 노광장비 수입이 제한된 상태다. 하지만 미·중 갈등은 완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9월 미국 국빈 방문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만약 반도체 장비 규제가 완화되면 중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은 예상보다 가파르게 개선될 전망이다.
범용 D램 부문에서는 이미 추격이 한창이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앞다퉈 증설 계획을 내놓고 있다. 창신메모리(CXMT)는 올해 D램 생산능력을 연간 30만장 수준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HP·델·에이수스 등 PC 제조사들은 CXMT 범용 D램 채택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수익원이 여전히 범용 D램이란 점을 고려하면, CXMT의 추격은 슈퍼사이클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리스크 ➋ 역대 최대 ‘빚투’ 잔고
조정 예상한 ‘하락 베팅’도 이어져
빚으로 주식투자를 이어가는 ‘빚투 랠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12일 기준 코스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5조403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기준 최대치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개인 투자자가 주식예탁금 등을 담보로 증권사에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이다. 신용거래융자를 활용하면 내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 상승장에선 더 큰 수익을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증시가 떨어질 때다. 손실뿐 아니라 빌린 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만약 정해진 기한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증권사는 투자자 의사와 별개로 담보로 잡은 주식을 시장에 매도해 돈을 회수한다. 이른바 반대매매다. 이 경우 투자자의 계좌는 빚만 남는 깡통 계좌가 된다.
신용거래융자의 가파른 상승에 금융감독원도 우려를 표현할 정도다.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은 5월 11일 자본 시장·회계 현안 브리핑에서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 부원장은 “신용융자는 차입을 활용한 투자여서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로 인해 손실폭이 커질 수 있다”며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매도 순보유 잔액까지 불어나고 있다는 건 유의할 지점이다. 공매도는 소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 먼저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사들여 갚는 방식이다. 공매도 순보유 잔액이 늘고 있다는 건 ‘증시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월 13일 기준 코스피 공매도 순보유 잔고는 21조3984억원이다. 한 달 전(16조2546억원)과 비교하면 31.6% 늘었다. 올해 초(12조2549억원) 대비 74.6% 증가했다.
대차 거래(Stock lending) 잔고가 늘고 있단 점도 눈에 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11일 기준 대차 거래 잔고는 182조9674억원이다. 한 달 전(155조7936억원)과 비교하면 3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대차 거래는 투자자가 주식을 빌리는 것을 가리킨다. 대차 거래는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지만 한국 증시에선 ‘공매도 선행 지표’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한국 증시는 무차입 공매도가 금지돼 있어 공매도 투자자는 사전에 주식을 차입하거나 차입 계약을 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공매도 투자자는 대차 거래 등을 통해 주식을 사전에 차입·확보해야만 공매도를 진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유 바닥에 ‘수요 파괴’ 우려
살얼음판인 매크로 환경도 불안 요소다. 이란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원유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어서다. 이는 유가 상승을 자극해 산업 생산과 물가, 소비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전쟁이 길어질 경우 글로벌 상업용 원유 재고가 6월 중순 무렵 ‘임계 수준(Operational Stress)’ 구간인 76억배럴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계 수준 구간은 원유 재고가 없어 물리적인 원유 흐름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을 의미한다. 올해 초 재고가 약 84억배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재고 감소는 유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는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요 파괴는 원유 재고 급감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면, 소비자와 기업이 버티지 못하고 소비 자체를 줄이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기름값 부담에 운전을 줄이거나, 항공·물류·화학 기업 등이 비용 부담 때문에 생산과 운송을 축소하는 식이다.
실질적인 지표 변화도 포착된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2월 말 2.9달러에서 5월 11일 4.5달러까지 치솟았다. 패트릭 드 한 가스버디 석유 분석 책임자는 “보통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달러에 도달하면 사람들이 운전을 줄이며 ‘수요 파괴’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유가를 비롯한 전반적인 에너지 상승은 AI·반도체 업종에도 치명적이다. 반도체는 공장 가동과 장비 운용에 막대한 전력을 쓰는 산업이다. 유가와 에너지 비용이 커지면 기업 성장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금리도 변수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중동발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긴축을 시사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 역시 지난 5월 4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금리 인하를 멈추고 금리 인상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언급했다. 금리가 오르면 외국인 자금 이탈 압력이 커지고 이자 부담에 증시 유동성도 위축될 수 있다.
김준영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시그널이 나오기 시작하면 시장은 조정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AI 투자 사이클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반기부터는 시장의 금리 민감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동전주 솎아낸다지만…‘해외 개미’가 말썽
외국인 통합계좌는 외국인이 국내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하지 않고 현지 증권사를 통해 한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2017년 도입됐지만, 계좌 개설 주체 제한과 즉시 보고 의무 등 규제 부담으로 활용도는 미미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정부가 개설 주체 제한을 풀고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각 증권사는 적극적으로 관련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삼성증권이 글로벌 온라인 증권사 인터랙티브브로커스(IBKR)와 손잡고 외국인 통합계좌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핀플루언서(금융+인플루언서) 계정을 통한 시세 조종 우려도 제기된다. 엑스(X·옛 트위터) 계정 팔로워가 30만명에 달하는 세레니티(Serenity)는 4월 30일 오로스테크놀로지를 언급했다. 이날 오로스테크놀로지 종가는 3만4500원이었다. 다음 거래일인 5월 4일 오로스테크놀로지는 종가 4만4850원으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5월 12일 종가 기준 3만2150원으로 하락했다. 필옵틱스도 마찬가지다. 5월 6일 세레니티는 자신의 계정에 필옵틱스를 언급했다. 그러자 전일 4만8650원이었던 주가가 장중 6만32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후에는 2거래일 연속 6% 넘는 하락세를 보였다. 해외 투자자 관심이 매수세를 자극했지만, 이후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며 주가가 되밀렸다.
인공지능(AI)이 초래할 금융 위기를 담은 ‘시트리니 보고서’로 이름을 알린 시트리니(Citrini) 사례도 있다. 5월 4일 X에 흥미롭게 보고 있는 한국 기업 리스트를 올리며 미코를 언급했다. 그러자 미코 주가는 전 거래일(4월 30일) 종가 2만2650원에서 장중 2만7900원까지 올랐으나 5월 12일 종가 기준 2만2550원으로 하락했다. 해외 개인 투자자의 단기 매수세가 붙으면 주가가 빠르게 치솟고, 이후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며 급락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중·소형주는 특히 수급 변화에 민감한 종목이다. 시가총액이 작고 유통 물량이 많지 않아 단기 매수세에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해외 리테일 자금은 ‘SNS 언급량 폭증 → 수급 집중’ 구조를 만들어 종목의 단기 변동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부 종목 쏠림이나 변동성 확대 등 투기성 자금에 따른 시장 영향이 나타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이채원 기자 lee.chaew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누구도 예상 못했다…K엔진 ‘르네상스’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다음 황제주는 ‘나야 나~’…LG이노텍 말고 또 있네- 매경ECONOMY
- 젠슨 황 한마디에 10배 뛴 광통신 ‘우리로’…반토막 어쩌나- 매경ECONOMY
- “현대모비스 90만원 간다?”...휴머노이드 수혜 기대 [오늘, 이 종목]- 매경ECONOMY
- “엔비디아는 이제 잊어라”…몸값 84조원 ‘세레브라스’ 나스닥 등판- 매경ECONOMY
- 스타벅스 ‘탱크 데이’ 후폭풍…여름 프로모션도 연기- 매경ECONOMY
- 중국인이 강남 아파트 싹쓸이?…국토부 “5명에 불과”- 매경ECONOMY
- “드디어 20억 찍었어”…반도체 훈풍 타고 동탄 집값 ‘껑충’- 매경ECONOMY
- 4년 만에 돌아온 양도세 중과…부동산 시장 유턴?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신세계 정용진, 한남동 단독주택 255억원에 팔았다...누가 샀나 봤더니-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