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안 읽는데"…소주병에 '이것' 새기자 제대로 터졌다 [트렌드+]

박상경 2026. 5. 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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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어도 지갑 연다…'북 감성' 담은 소주 잘팔리는 역설
책 읽는 사람 줄지만…'지적 여유' 상징성 강화
출판 시장 침체에도 민음사, 영업익 72% 급증
책, 브랜드 마케팅 자산으로 가치 부각
29CM에서 선보인 '진맥소주×민음사' 스페셜 에디션. /사진=29CM


책을 읽는 사람이 줄었다지만 책을 앞세운 마케팅은 늘고 있다. 향수 매장에는 화장품 공병 대신 시집이 놓이고, 소주병 라벨에는 고전문학 속 문장이 새겨진다. 가구 팝업스토어에서는 소비자가 소파와 침대에 누워 시를 읽는다.

독서율 30%대 시대에 유통업계가 책을 꺼내 든 것은 역설적이다. 책이 그저 '읽는 물건'에 머물지 않고, 취향과 지적 여유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독서 인구의 회복이라기보다, 책과 문학이 가진 '이미지'를 브랜드 경험에 접목하려는 흐름으로 보고 있다.

19일 서울 이솝 한남 스토어에서는 이소희 시인의 시집 『오오』로 북 익스체인지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진=박상경 기자


이달 19일 오후 찾은 서울 이솝 한남 스토어에는 시집들이 진열돼 있었다. 이솝이 지난해 8월 첫선을 보인 뒤 지난달 6일부터 국내 10개 매장에서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한 '이솝 북 익스체인지' 현장이다. 고객이 소장하던 시집을 가져오면 이솝이 큐레이션한 시집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한남점에서는 이소희 시인의 시집 '오오'로 북 익스체인지를 진행하고 있다.

유통가가 주목하는 것은 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다. 책은 소비자에게 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디지털 피로감이 커진 환경에서는 아날로그적 안정감과 취향의 깊이를 보여주는 소품으로 기능한다. 과거 책이 지식 습득의 도구였다면 최근 유통 현장에서는 브랜드 세계관을 설명하는 장치로 쓰이는 셈이다.

출판시장 전체로 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요 단행본 출판사 22곳의 총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6.9%, 11.9% 감소했다. 주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4개사 매출 합계 역시 3.1%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성인 독서율이 38%까지 낮아진 것으로 집계했다. 성인 10명 중 3명만 책을 읽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일부 출판 브랜드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민음사는 지난해 매출 206억원, 영업이익 4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3.8%, 72.7% 증가한 수치다. 올해 유료 멤버십 '민음북클럽'은 모집 첫날 접속자가 몰리며 홈페이지 서버가 과부하를 겪었고, 2만5000명 규모의 회원 모집도 조기 마감됐다.

이는 특정 출판사와 문학 콘텐츠가 팬덤형 소비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통업계 입장에서는 이런 출판 브랜드의 팬덤과 문학적 이미지를 상품·공간·경험에 접목할 유인이 커진 셈이다.

사진=일룸 인스타그램 갈무리


무신사가 운영하는 29CM는 민음사와 협업한 '진맥소주X민음사'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였다. 민음사가 큐레이션한 고전문학 속 글귀를 소주 라벨에 담은 한정판 상품이다. 퍼시스그룹의 생활가구 브랜드 일룸도 지난달 성수동 팝업스토어 '더 모션 클럽'에 시 낭독회와 시집 큐레이션 공간을 마련했다. 단순히 가구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앉고 눕고 읽는 체험 공간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책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이라기보다 '브랜드의 결'을 설명하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향수 브랜드는 시집 교환을 통해 사색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주류 브랜드는 문학 문장을 통해 제품에 이야기를 입힌다. 가구 브랜드는 시를 읽는 장면을 통해 휴식과 여유의 감각을 구체화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중들 사이에서 책과 문학이 주는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가치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며 "정서적 만족을 추구하는 웰니스 트렌드와도 맞닿으면서 소비자들이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안정감과 차별화된 취향을 동시에 얻으려 한다"고 진단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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