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다음은 ‘양자컴퓨터’…천재 물리학자에 한국 현주소 물었더니
美서 성공시킨 후 한국 복귀
양자 스타트업 ‘오큐티’ 창업
새로운 방식 양자컴 개발 도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보기술(IT) 업계조차 양자컴퓨터를 ‘영원한 유망주’로 취급했다. 하지만 2019년 구글이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걸릴 연산을 200초 만에 끝내는 ‘양자 우월성’을 증명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 양자컴퓨터는 몇 년 내 누가 먼저 상용화할 지를 다투는 전장이 됐다.
기술 패권 전쟁의 한가운데에 대한민국 딥테크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냈다. 작년 1월 카이스트(KAIST) 연구소 스핀오프로 설립된 ‘오큐티(OQT)’다. 오큐티는 국내 최초로 ‘중성원자(Neutral Atom)’ 기반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회사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직접 통합 설계한다.
창업자인 김동규 오큐티 대표(KAIST 물리학과 교수)는 글로벌 양자컴퓨팅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이력의 소유자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세계 최초로 256큐비트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글로벌 기업 큐에라(QuEra)의 창업 멤버로 중성원자 상업화를 주도했다.
김 대표는 대중을 상대로 양자 역학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질문하는 태도를 이야기해주고 싶다”며 “왜 컴퓨터는 계산을 할 수 있을까, 왜 자연은 이렇게 움직일까, 왜 작은 세계에서는 우리가 보는 세상과 다른 일이 일어날까와 같은 질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결국 양자역학과 만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오큐티가 하는 일도 결국 그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미래의 기술로 연결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던 그가 한국행과 창업이라는 길을 택한 이유는 한국에서 시작해 세계가 함께 사용하는 양자컴퓨팅의 기술과 시장 표준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에서다.
김 대표는 “양자컴퓨팅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난제 중 하나지만, 이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우리 세대가 유일할 수 있다”며 “반도체가 지난 수십 년의 산업 패권을 결정했다면, 양자는 다음 세대의 패권을 결정할 기술이기 때문에 이 변곡점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설계자가 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오큐티가 핵심으로 내세우는 기술은 ‘중성원자’ 방식이다. 현재 양자컴퓨터 구현 방식은 초전도체, 이 온트랩, 중성 원자 방식 등으로 나뉜다. 이 중 구글·IBM 등이 투자하는 초전도체 방식이 금속 회로를 칩 위에 인위적으로 깎아 만들어 외부 환경에 민감하다면, 중성원자 방식은 자연이 만들어낸 완전히 동일한 입자인 원자 하나하나를 정보의 단위(큐비트)로 사용한다.
김 대표는 “큐비트를 인공적으로 제작한다기보다 이미 자연에 존재하는 동일한 원자들을 빛(레이저)으로 붙잡아 원하는 형태로 정밀하게 배열하고 제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극저온 환경에서 빛을 이용해 무선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대규모 확장성과 전력 효율 측면에서 압도적인 장점이 있다.
소비자 아닌 설계자 되게 할 것”

이를 위해 오큐티는 하드웨어를 완성한 뒤 소프트웨어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방향 방식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양자처리장치(QPU)의 물리적 구조와 상호작용 방식을 실시간으로 재구성하는 ‘양방향 설계(Co-design)’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했다. 김 대표는 “양자컴퓨터를 단순한 범용 계산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약 개발, 소재 탐색, 인공지능 연산 등 특정 산업의 복잡한 문제 구조에 맞춰 물리적 특성을 조정함으로써 실질적 활용 가능성을 앞당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붓는 글로벌 빅테크들 사이에서 한국의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을까. 김 대표는 오히려 지금이 적기라고 자신했다. 시장의 표준이나 활용 방식이 확정되지 않은 초기 단계이기에 거대 자본보다는 맹점을 꿰뚫는 깊은 물리적 이해와 빠른 실행력이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말하는 ‘양자 주권(Sovereign Quantum)’은 단순히 비싼 장비를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핵심 인프라와 기술을 해외에 의존하면 우리는 단순 사용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새로운 산업 표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양자컴퓨팅은 직접 시스템을 만들고 실패를 경험하며 쌓아야 할 ‘학습량’이 매우 큰 분야라 지금 기술을 축적하지 않으면 훗날 경쟁력을 갖추기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폈다.
그는 “오큐티의 비전은 미래 컴퓨팅 인프라를 혁신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양자컴퓨팅 시대에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핵심 기술을 직접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산업을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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