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름 빼고 딱 공약만 봤더니…경남 유권자 ‘정책 공약 블라인드 테스트’

최석환 기자 2026. 5. 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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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경남 후보 공약 평가
시민들 공약만 보고 좋은 공약 선별
돌봄·의료·교육 정책 등 높은 관심
“정책중심 토론 문화 계속 이어져야”
마산YMCA를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20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대원동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 대회의실에서 2026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이 직접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유권자 정책·공약 블라인드 테스트 행사'를 열었다./김구연 기자

지난 20일 저녁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 대회의실을 찾은 김미지(26·창원시 마산회원구) 씨 눈앞에 종이 카드 더미가 펼쳐졌다. 각 카드에는 창원시장·경남도지사·교육감 후보 공약이 한 문장씩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종이 카드 어디에도 6.3 지방선거 출마자 이름이나 정당명은 없었다. 김 씨는 누가 내놓은 것인지 모를 정책들을 하나씩 읽어가며 좋은 공약을 골라냈다.

"이 공약, 좋은 정책 목록에서 뺄까요?" 토론 진행자가 질문하면 김 씨는 초록·노랑·빨강 신호등 카드를 들어 의견을 표시했다. 초록은 동의, 노랑은 유보, 빨강은 부동의였다. 색깔을 바꿔가며 카드를 추켜들던 김 씨 시선은 어느새 책상 위 청년 정책 카드 앞에 멈춰 섰다. 청년 대상 공약 수 자체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 나온 정책도 내용이 빈약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씨는 "청년 정책 수 자체가 워낙 적고, 그나마 있는 공약도 채택되기 어려웠다"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인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돌봄·의료 분야 공약을 두고는 "돌봄 공백이나 지역 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은 눈에 들어오는 게 꽤 있었다"며 "후보 이름이나 정당보다 정책 자체를 놓고 보니 어떤 공약이 실제 시민 삶과 연결되는지도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남지역 6.3 지방선거 출마자 이름과 정당을 모두 가린 채 정책·공약만 놓고 시민들이 직접 평가하는 이색 토론회가 창원에서 열렸다. 마산·창원YMCA, 마산·창원·진해YWCA,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청만행웅이 마련한 '제9대 지방선거 정책·공약 블라인드 테스트 유권자 토론회'다. 이 자리는 특정 정당이나 인물이 아닌 정책 중심으로 선거를 바라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온라인 공개모집으로 뽑힌 창원시민 43명이 함께했다.

이름·정당 가린 채 공약만 놓고 토론

주최 측은 각 후보 캠프에서 받은 공약으로 블라인드 공약 카드를 제작했다. 제공자는 도지사 후보 김경수·박완수·전희영, 창원시장 후보 송순호·강기윤·강명상, 교육감 후보 송영기·오인태·김준식 등 9명이다. 권순기 교육감 후보 공약은 따로 받지 못해 시민단체가 언론 보도 등 공개 자료를 토대로 취합했다.

공약 선별은 토론 진행자가 공약 카드를 하나씩 읽어주면 참석자들이 신호등 카드로 의견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실현 가능성 △지방정부 권한 여부 △선심성 공약 여부 △구체성 △지역 문제 해결 가능성 △공공성 △지속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공약을 검토했다.
시민 패널이 뽑은 후보자별 좋은 공약. / 우보라 기자

1차로 정책을 걸러낸 뒤에는 다시 좋은 정책·공약을 선정하는 과정이 추가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붙임쪽지와 투표 스티커를 활용해 중요 정책을 추려냈다. 같은 선거를 맡은 테이블끼리 다시 모여 최종 공약을 정리했다. 참가자들은 마음에 드는 정책을 붙임쪽지에 적어 전지에 붙였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선거별 좋은 공약을 20개로 압축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최종적으로 좋은 공약이 선별되고 나서 후보 이름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정책이 어느 후보 공약인지 뒤늦게 확인했다. 그 결과를 보면, 이날 시민 선택을 받은 좋은 공약은 도지사 선거 기준 김경수 후보 8개, 전희영 후보 7개, 박완수 후보 5개로 집계됐다. 교육감 후보는 송영기 후보 공약이 10개로 가장 많이 선정됐다. 그다음은 오인태 후보 5개, 김준식 후보 4개, 권순기 후보 1개 순이었다. 창원시장 후보는 송순호 9개, 강기윤 후보 6개, 강명상 후보 5개였다.

돌봄·의료·교육 공약에 높은 관심

시민 패널이 뽑은 좋은 공약에는 돌봄·의료·교통·교육 분야 정책이 다수 포함됐다.

김경수 후보 공약 가운데서는 '출생 미등록 아동 제로화', '30분 내 필수 의료망 구축', '경남 온 동네 돌봄맵', '10분 내 응급처치 안전망 구축' 같은 돌봄·의료 정책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전동킥보드 GPS 반납관리와 신고소 운영을 담은 '걷기 좋은 경남', '4대 광역철도망 구축', 남해안 우주항공 산업벨트 조성 정책도 호평받았다.

박완수 후보 공약 가운데서는 손자 돌봄 지원사업과 생애주기별 맞춤형 연금 정책, 거가·마창대교 통행료 부담 완화 정책 등이 선정됐다.

전희영 후보 공약은 공공의료원 확충과 공공책임돌봄, 아픈 아이·긴급 돌봄 센터 건립, 주민참여 예산제 확대 같은 공공·복지 정책이 주목받았다.

교육감 후보 공약에서는 기초학력 보장과 정서위기 학생 지원, AI·디지털 교육 강화, 교사 행정업무 경감 정책 등에 표가 쏠렸다.

송영기 후보 공약은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 추진, 교실행동중재지원 체계 구축, AI 기반 진학상담 시스템 구축 등이 선정됐다.

오인태 후보 공약 중에서는 모든 학교 위클래스 구축과 지역연계 교육 강화, 장애학생 지원 확대 정책이 포함됐다.

김준식 후보 공약은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와 교사 행정업무 40% 감축, 문해력 교육 강화 등이 좋은 공약으로 꼽혔다.

토론회 참석자 배수연(34·창원시 의창구) 씨는 "후보 이름을 가리고 보니 지지율과 공약 수준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지율이 낮은 후보 가운데서도 좋은 정책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공약 중에서도 공공의료원이나 어린이병원 같은 의료 공약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정당보다 정책 중심으로 후보를 판단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지영(40·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아이를 키우는 처지라 아동 관련 공약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며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정책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출생 미등록 아동 제로화' 같은 아동 보호 정책도 의미가 컸다"며 "낙선 후보 공약이라도 좋은 정책은 당선자가 이어받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정림 마산YMCA 정책기획국장은 "정책·공약 블라인드 토론회는 2024년 총선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라면서 "유권자가 단순히 투표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후보 공약을 직접 검증하고 평가해보자는 생각으로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을 넘어 어떤 정책이 시민 삶에 실제 필요한지 함께 살펴보자는 의미도 담겼다"며 "앞으로도 정책 중심 토론 문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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